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by진경수

정년이라는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오랫동안 맡았던 일을 내려놓고 한 시기를 마무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온라인 게임에는 정년이 있다. 직바카라에도 끝이 있다. 언젠가는 명함에서 직함이 하나씩 사라지는 때가 온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에는 정년이 없었으면 좋겠다. 배우는 일이다.



나이는 숫자보다 습관으로 먼저 늙는다


사람은 언제 늙을까. 흰머리가 늘어날 때일까. 걸음이 느려질 때일까. 예전처럼 기억이 빠르지 않을 때일까. 몸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젊었을 때와 같다고 말할 수 없다. 한번 읽은 것을 금세 기억하던 때와 달리 같은 페이지를 다시 펼쳐야 할 때도 있다. 외운 것이 슬그머니 빠져나가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몸의 나이보다 더 경계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제 알 만큼 안다”는 마음이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사람은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찾는다.


낯선 생각은 번거롭고, 새로운 기술은 불편하며, 젊은 세대의 방식은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때 생각이 먼저 늙는다. 그래서 나는 나이를 거스를 수는 없어도 생각이 굳는 속도는 늦추고 싶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공부다.



다시 학생이 되는 즐거움


시험장에 가면 나는 다시 학생이 된다. 이것이 좋다. 평소에는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판단해야 할 일이 많지만 공부할 때는 반대다. 내가 모른다. 그러니 읽는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시 본다. 필요하면 묻는다. 학생에게는 완성된 사람인 척할 필요가 없다. 몰라도 된다. 틀려도 된다. 다만 다시 배우면 된다. 그 자유가 참 좋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에게는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사람의 자리에서 내려와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앉아보는 자리. 그곳에서는 직함보다 연필 한 자루가 더 중요하다.



새로운 공부는 삶의 방 하나를 더 만든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마다 처음에는 낯설다. 용어부터 어렵다.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선 말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때 느끼는 기쁨이 있다. 마치 집 안에 없던 문 하나를 발견한 것 같다. 문을 열어보니 내가 모르던 방이 있고, 그 방의 창문 너머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나는 그래서 공부를 좋아한다.


공부는 나이를 되돌려주지는 않지만 삶의 면적을 넓혀준다. 시간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은 오히려 넓어질 수 있다. 이것이 나이 들어 공부하는 즐거움이다.



젊은 사람에게 배우는 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일이 많아진다. 경험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건넨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계속 가르치기만 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내가 가진 것만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자리를 바꿔야 한다.


젊은 사람에게 묻는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요즘 사람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 왜 필요한지. 그들에게 배우다 보면 내가 살아온 시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방식만이 유일한 길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대가 다르다는 것은 서로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을 보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내가 지나온 길을 들려주고, 그들이 바라보는 길을 듣는다. 그 사이에서 생각은 조금 더 넓어진다. 노자는 물을 자주 이야기했다. 물은 자기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글어지고, 좁은 틈을 만나면 몸을 낮추어 흐른다. 그렇다고 물이 물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배움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온 경험과 중심은 가지고 있되 새로운 것을 만났을 때 모양을 조금 바꿀 수 있는 사람. 단단하되 굳지 않는 사람. 나이 들어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언젠가는 지금처럼 오래 바카라상에 앉기 어려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시험장에 가는 일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궁금해하는 마음만은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바카라 한 페이지라도 읽고, 모르는 말 하나라도 찾아보고, 젊은 사람에게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 하고 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직업에는 은퇴가 있어도, 호기심에는 퇴직 날짜를 적어두고 싶지 않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정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년을 정하지 않는 한 배움은 계속될 수 있다. 나는 오래도록 학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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