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림 없는 바람처럼 마음도 흐르면
정상 : 비로봉 1439m
출발 : 어의곡
도착 : 천동
거리 : 약 12.9km
주제 : 걸림 없음과 여여함
산행일 : 2026. 3. 14.
01 발끝에 온 마음을 모으다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산을 향하는 마음은 매번 다르다.”
어떤 날은 풍경을 보고, 어떤 날은 몸을 단련하기 위해 산을 찾는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길을 나선다. 산은 같아도 그 앞에 선 마음은 늘 새롭다.
“삶의 일을 조금 덜어내거나, 일정과 마음을 더 단단히 다잡아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아이젠을 챙기지 않은 실수는 나이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었다. 여러 일을 한꺼번에 붙잡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돌아보고,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에 집중할지를 묻게 했다.
“오직 숨 쉬고 발을 옮기고 다시 숨을 고르는 반복 속에서 생각도 단순해졌다.”
미끄러운 눈길에서는 번뇌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온 신경을 발끝에 모으자 두려움은 경계심이 되고, 한 걸음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공부가 되었다.
02.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길도 열린다
“사람의 마음에도 걸림이 없으면 하는 일 또한 자연스레 풀려 나간다.”
숲 속에서 나무에 걸리던 바람은 능선에 오르자 막힘없이 흘렀다. 시야가 넓어지고 하늘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속 걱정도 소백의 바람을 따라 흩어졌다.
“어느 하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정상에서는 능선과 능선이 이어지고 산과 산이 서로 기대듯 겹쳐졌다. 바람과 구름도 인연에 따라오고 갔다. 나 역시 수많은 인연 속에 잠시 서 있는 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삶에 스스로 답을 얻게 해주는 존재다.”
힘들게 올랐다가 왜 다시 내려오느냐는 물음에 거창한 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걷는 동안 성취와 목적을 잊고, 넓은 풍경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03. 바람을 지나 물의 마음으로
“주관적 개념을 덧씌워 해석하고 판단할 때 더 큰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발길에 밟혀 단단해진 눈길이 오히려 더 미끄러웠다. 사실 위에 생각과 편견을 겹겹이 덧씌울수록 진실에서 멀어질 수 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이 곧 여여함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긴 하산길에서 계곡의 얼음은 맑은 물줄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폭포를 만나면 내려가고, 용소를 만나면 잠시 느려지는 물을 보며 상선약수의 삶을 떠올렸다.
“물이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향하듯 삶 또한 그렇게 흘러가면 족하지 않을까.”
소백의 바람은 걸림 없이 흘렀고 천동계곡의 물은 낮은 곳을 마다하지 않았다. 산행은 높이 오르는 법만 가르치지 않았다. 비우고 낮추며 흐르는 삶의 방향까지 조용히 보여주었다.
산이 남긴 질문
나는 지금 무엇에 걸려 있으며,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