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때를 배우다
비슬산은 피어남과 짐, 만남과 이별, 오름과 내려섬이
모두 한 길 위에 있음을 일러주었다.
정상 : 천왕봉 1084m
출발 : 유가사
거리 : 약 14km
주제 : 시절인연과 내려놓음
산행일 : 2026. 4. 21.
01. 꽃이 지는 때도 시절 인연
“꽃이 지는 때 또한 시절인연이니, 만나지 못한 아쉬움마저 받아들이는 것이 산이 가르치는 공부일 것이다.”
참꽃축제의 절정은 이미 지났지만 남은 숨결이라도 만나고자 새벽길을 달렸다. 꽃이 덜 피었다고 아쉬워하고, 이미 졌다고 서운해하는 마음부터 내려놓았다. 자연의 시간은 사람의 일정에 맞춰 기다려 주지 않는다.
“피어남만을 꽃이라 여겼더니, 짐 또한 꽃의 도(道)였음을 알겠네.”
연분홍 꽃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연초록 새순이 돋고 있었다. 지는 꽃은 실패한 꽃이 아니었다. 한철을 다해 피어난 뒤 다음 생명을 위해 자리를 내어 주는 모습에는 절정과는 다른 깊은 품위가 서려 있었다.
02. 마음의 주인이 걷는 길
“올랐으면 내려가야 다시 오를 수 있는 법.”
월광봉 전망대에서 지나온 참꽃군락지와 앞으로 가야 할 천왕봉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길을 붙잡는 풍경과 발길을 재촉하는 정상 사이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끝내 마음의 주인이 내린 결정에 따랐다.
“자연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무엇 하나 헛되이 두지 않으니, 사람 또한 함부로 분별하고 차별하지 말라.”
정상 가까이에서 하얀 산벚꽃과 분홍 참꽃, 갈색으로 마른 억새가 한 풍경을 이루었다. 새것과 낡은 것, 화려함과 소박함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었다.
03. 피고 지는 한 길 위에서
“피어남과 짐이 꽃의 순서이듯, 만남과 이별 또한 삶의 자연스러운 이치임을 산은 말없이 일러준다.”
천왕봉에서 내려다본 참꽃평전은 머지않아 분홍빛을 거두고 다시 초록의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찬란한 순간도 붙들어 둘 수 없기에 더 귀하다. 인연 또한 오래 붙잡는 일보다 머무는 동안 온전히 바라보는 일이 먼저다.
거친 바위틈에서도 참꽃은 끝내 피어났다. 늦게 만난 꽃도 아름다웠고, 힘겹게 오르내린 길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었다. 저녁 예불의 맑은 종소리를 들으며, 삶의 어느 때도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겼다.
산이 남긴 질문
나는 피어날 때만을 기다리며, 지는 때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