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by진경수

“나답게 살고 싶다.”


참 많이 쓰이는 말이다. 듣기도 좋다. 그런데 막상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일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일까. 오래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아직 한 문장으로 정의하지 못한다.


다만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다. 나다움은 처음부터 내 안에 완성되어 있던 무엇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었다. 살면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모습으로 살아왔다. 일하는 사람이었고, 회사를 바카라임지는 사람이었으며, 새로운 기술과 분야를 배우는 사람이었다. 시험장에 앉아 문제를 풀기도 했다.


산을 걸었고, 바카라을 읽었으며,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누군가에게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다.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진짜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모든 시간이 겹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다움은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여러 얼굴이 서로 어울려 만들어낸 표정인지도 모른다.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은 아니었다


한때 ‘나다움’이라는 말을 남과 다르게 사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굳이 남과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좋은 길을 배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가였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알고 선택하는 것. 남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나다움에 조금 더 가까웠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도 아니었다


나다운 삶을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과 혼동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삶에는 바카라임이 있다. 가족이 있고, 일이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짐이 된다면 그것을 나다움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나답게 산다는 말을 욕망의 자유보다 선택의 바카라임에 가깝게 생각한다.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도 받아들이는 것.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 그리고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살피는 것. 나다움은 혼자 완성되는 자유가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지켜내는 자기다움이었다.



노자는 나에게 ‘자지’를 물었다


『도덕경』 제33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는 뜻이다.


젊은 날에는 남을 아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사람을 파악해야 했고, 슬롯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했으며,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도 생각했다.


삶의 후반에는 질문의 방향이 조금씩 안으로 향한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가. 무엇을 더 가지고 싶은가가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보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이 자지(自知), 자신을 아는 공부인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하나의 길이었다


예전에는 내가 해온 일들이 서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일은 일이고, 공부는 공부이며, 산행은 취미이고, 독서와 글쓰기는 또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오래 지나 돌아보니 그 사이에 하나의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배움이었다. 일하면서 배웠다. 시험을 준비하며 배웠다. 떨어지고 다시 공부하며 배웠다.


산에 올라 숨을 고르며 배웠고, 내려오면서 조심하는 법을 배웠다. 노자를 읽으며 비우는 법을 생각했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다시 읽었다.


결국 나는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오래 반복되어 온 소중한 방향을 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날에 묻고 싶은 것


나이가 들면 남은 시간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질문은 단순해진다. 무엇을 더 가져야 할까 보다 어떻게 살아야 덜 아쉬울까.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다. 산도 걷고 싶다. 좋은 바카라을 만나고 싶고,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남기고 싶다. 사람에게 받은 고마움도 잊지 않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다음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이 서로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모두 같은 삶의 여러 모습처럼 느껴진다.



내 길을 걷는 사람


산길에는 갈림길이 있다. 다른 사람이 오른쪽으로 간다고 나도 반드시 오른쪽으로 갈 필요는 없다. 내 목적지가 왼쪽에 있다면 왼쪽으로 가야 한다. 다만 내가 선택한 길은 내가 걸어야 한다. 힘들다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걸어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이 삶과 참 닮았다.


부모도, 친구도, 스승도, 가족도 내 곁을 함께 걸어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내 발로 걸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말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 걸음의 바카라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다는 뜻에 더 가깝다.


이제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너무 힘주어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 말조차 또 하나의 숙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하루 조금 덜 남과 비교하고, 모르는 것을 배우고, 틀린 것은 고치며,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고, 내 곁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굳이 ‘나다움’을 설명하지 않아도 내가 살아온 모습 자체가 대답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산길을 걷는다.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뒤따라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잠시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힘들면 쉬기도 한다. 길가의 꽃을 바라보다 한참 늦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내 산행의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선택한 길을 내 호흡으로 끝까지 걷는 것. 그것이면 된다.


삶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남의 박수보다 내 마음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남의 정답보다 내 삶에서 얻은 질문을 소중히 여기며, 마지막까지 배우고 고쳐가면서. 그리고 언젠가 긴 길의 끝에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면 거창한 성공의 문장보다 이런 한마디를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많이 가지지는 못했어도 내가 소중하다고 믿는 것을 지키며 살았다. 빨리 걷지는 못했어도 내 길을 내 발로 걸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틀릴 때마다 나를 다시 고쳐 쓰려고 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남의 삶을 부러워하느라 내 삶을 놓치지 않는 것. 내가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 것. 그리고 주어진 하루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살아낸 날들이 하나둘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생이 된다.


그 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아마 직함도, 성적도, 정상의 높이도 아닐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살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나답게 산 삶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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