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권의 글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처음 품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왜 노자를 다시 읽게 되었을까. 젊은 날의 나였다면 『도덕경』을 지금과는 다르게 읽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내 자리를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삶에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길었다. 배워야 했고, 일해야 했으며, 이루어야 했다. 때로는 남보다 앞서고 싶었고, 내가 가진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시험에 합격하면 기뻤고, 일이 잘되면 자신감이 생겼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러니 지나온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래 살아보고 나서 같은 문장을 다시 읽으니 노자의 말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앞서라는 말보다 멈출 줄 알라는 말이 들렸고, 채우라는 말보다 비워도라는 뜻이 마음에 남았다. 강해지라는 목소리보다 물처럼 낮아지라는 가르침에 오래 머물게 되었고, 많이 아는 것보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라가는 일만큼 잘 내려오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산에서 몸으로 배웠다.
돌아보니 노자의 말이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읽는 내가 달라져 있었다.
살아보니, 늦게 이해되는 말이 있었다
젊은 날에는 ‘비움’이 부족함처럼 보였다. 가져야 했고, 배워야 했으며, 내 것을 만들어야 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삶의 후반에 와보니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았다. 쥐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놓기 어려웠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에 빠지기 쉬웠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내 목소리는 커질 수 있었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덧셈과 함께 뺄셈을 배운다.
고집을 조금 덜어내고,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고, 오래된 서운함을 털어내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도 조금씩 놓아본다. 비우고 나니 빈 곳만 남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새로운 생각이 들어왔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삶의 여백은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아니라 아직 무엇이든 들어올 수 있는 자리였다.
사람을 바꾸려다 내가 달라졌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일도 오랫동안 배워야 했다. 좋은 뜻으로 충고했고, 내가 먼저 경험했으니 더 좋은 길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내 뜻대로 자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빨리 배우고 어떤 사람은 늦게 피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뜻밖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해냈고, 말없이 뒤를 지키던 사람이 조직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의 계절이 있다는 것을. 꽃이 피지 않는다고 봉오리를 손으로 벌릴 수 없듯 사람도 억지로 자라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답을 대신 말해주는 일이 아니었다. 한 번 더 해볼 기회를 주는 것. 조금 기다리는 것. 필요할 때 손을 내일 돼 자기 발로 걸어갈 자리는 남겨주는 것. 그것이 더 어려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사람을 바꾸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을 때 내가 먼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말을 덜하게 되었고, 판단을 조금 늦추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의 속도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살아보니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정답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자기 답을 찾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에 더 가까웠다.
산은 정상에서 끝나지 않았다
산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을 걸었다. 숨이 차도 올랐고, 다리가 무거워도 한 발씩 앞으로 내디뎠다. 정상석 앞에 서면 힘들었던 시간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산을 오래 걷다 보니 정상에서 보내는 시간은 참 짧았다. 몇 시간 올라가도 잠시 머물다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제야 정상의 뜻을 조금 다르게 알게 되었다. 정상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잠시 빌려 서는 자리였다.
삶의 자리도 그렇다. 직함도, 성과도, 슬롯적인 위치도 영원히 내 것은 아니다. 내가 떠난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선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제 정상에 서면 올라온 길보다 내려갈 길을 먼저 바라본다. 등산화 끈을 다시 조이고 배낭을 고쳐 멘다. 산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의 후반도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높이 갈 수 있는가 보다 어떻게 잘 내려갈 것인가를 배워야 하는 시간이 있다.
내가 가진 경험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고, 내가 하던 일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뒤에서 오는 사람이 빠르면 기꺼이 길을 비켜주는 것.
“먼저 가세요.”
이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마음. 나는 그것도 삶의 공부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러나 내려놓는다고 해서 삶을 접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싶다. 새로운 바카라을 펼치고 싶고, 모르는 것을 만나면 찾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시험장에도 다시 앉고 싶다. 시험에 합격하면 여전히 기쁠 것이고, 떨어지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시험에는 불합격이 있어도 배움에는 불합격이 없다는 것을. 공부한 것은 어딘가에 남는다. 지식으로 남기도하고, 생각하는 습관으로 남기도 하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려주는 작은 표지판으로 남기도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번 배워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 가장 경계하고 싶은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몸의 걸음은 느려지더라도 생각의 문까지 닫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직도 나를 고쳐 쓰고 있다
이 바카라을 쓰면서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글을 쓰다가 오래 전의 나를 만났다. 너무 서둘렀던 나, 앞서고 싶었던 나, 내 생각이 옳다고 믿었던 나, 실패 앞에서 마음 아파했던 나, 사람을 기다리지 못했던 나. 그런 나를 만날 때마다 문장을 조금씩 고쳐 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삶도 한 편의 글과 같구나. 처음부터 완벽하게 쓸 수 없는 글. 쓰다가 틀리면 지우고, 말이 너무 많으면 덜어내고, 잘못 이해한 것이 있으면 다시 쓰는 글.
그래서 이제 나는 완성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고칠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 나는 마지막까지 수정 가능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어제 옳다고 생각했어도 오늘 틀렸다는 것을 알면 고치고, 나보다 젊은 사람에게도 배우고, 상대의 말이 옳다면 내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삶의 마지막 교정쇄를 넘기는 날까지 나 자신을 조금씩 고쳐 쓰고 싶다.
이제야 ‘나답게’라는 말을 조금 알 것 같다
오랫동안 ‘나답게 산다’는 말을 생각해 왔다. 그것은 남과 다르게 사는 것도 아니었고, 하고 싶은 대로만 사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지 않는 것.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바카라임을 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함부로 밟고 지나가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나다움에 가깝다.
돌아보니 내 삶에는 여러 길이 있었다. 일이 있었고, 공부가 있었으며, 시험이 있었다. 산이 있었고, 바카라이 있었으며, 글쓰기가 있었다. 예전에는 서로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하나의 길처럼 보인다. 그 길 아래에는 늘 같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배움이었다. 일하며 배웠고, 실패하며 배웠다. 산에서 배웠고, 사람에게 배웠다. 노자를 읽으며 배웠고, 글을 쓰며 다시 나를 배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배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노자는 내게 삶의 정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을 남겼다. 너무 앞서가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많이 쥐고 있지는 않은가.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높은 곳에 오래 머물려고 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정말 너의 길인가.
나는 아직 이 질문들에 완전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쩌면 끝까지 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좋은 질문 하나를 품고 사는 것이 서둘러 얻은 정답 하나보다 오래 사람을 움직일 때가 있으니까. 이제 바카라을 덮는다.
하지만 내 공부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내일이면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겪을 것이다. 또 고집을 부릴지도 모른다. 서두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고치면 된다. 산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돌아오듯이. 잠시 멈추고, 방향을 살피고, 다시 걸으면 된다.
나는 이제 완벽하게 사는 것보다 돌아올 줄 아는 삶을 믿는다. 남은 길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길을 서둘러 걷고 싶지는 않다. 조금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꽃도 보고 싶다. 함께 걷는 사람의 얼굴도 바라보고 싶다. 힘들면 잠시 앉아 물도 마시고 싶다. 뒤에 오는 사람이 있으면 기다리고, 나보다 빠른 사람이 오면 길을 내어주고 싶다. 그리고 아직 내가 모르는 길을 만나면 물어보면 된다.
“이 길이 맞습니까?”
삶은 어쩌면 그렇게 끝까지 묻고 배우며 걷는 산행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정말 마지막 하산길에 들어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내 배낭이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된 미움도, 지나친 욕심도, 내가 옳다는 고집도 많이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대신 몇 가지는 끝까지 품고 가고 싶다. 배우고 싶다는 마음. 사람에 대한 고마움. 산길에서 만난 바람의 기억. 좋은 바카라에서 건져 올린 문장 몇 줄. 그리고 내가 살아온 날들을 내 언어로 남긴 글. 그 정도면 충분하다.
마지막에 누군가 내 삶이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거창한 대답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았다. 때로는 길을 잘못 들었다. 넘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배웠고, 다시 걸었다. 그리고 조금씩 나다운 사람이 되어갔다. 그것이면 좋겠다.
돌아보면 노자의 말이 남았다. 그러나 노자의 말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을 품고 걸었던 나의 길도 남았다. 그리고 그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 아침이 오면 나는 또 바카라 한 페이지를 펼칠 것이다.
모르는 것을 만나면 배우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은 다시 고쳐 쓸 것이다. 날씨가 좋으면 산길도 걸을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내 호흡으로, 내 보폭으로. 그렇게 남은 날들을 살아가고 싶다. 배우며 걷고, 고쳐 쓰며, 마침내 나답게. 그리고 마지막까지, 나는 여전히 삶을 배우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