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속도로 살지 않기로 했다

by진경수

산길에서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걸은 적이 있다. 앞사람이 빨리 걸으면 나도 빨리 걷는다. 그가 쉬지 않으면 나도 괜히 쉬기가 싫다.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호흡이 흐트러진다. 산에서는 그때 금세 알 수 있다. 내 보폭이 아닌 걸음으로 걷고 있다는 것을. 삶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 훨씬 오래 걸렸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속도계가 있었다


젊은 날에는 늘 어떤 기준이 앞에 있었다.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남들보다 조금은 앞서야 하며, 무엇인가 이루었다는 흔적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학교를 다닐 때는 성적이 있었고, 슬롯에 나오니 온라인 게임과 직바카라이 있었다. 사업을 하면 매출과 성과가 있었고, 공부를 하면 시험과 합격이 있었다. 숫자는 편리하다. 어디쯤 왔는지 금세 보여준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그 숫자가 내 삶의 속도까지 결정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남이 앞서가면 내가 뒤처진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좋은 성과를 내면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 나를 돌아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비교는 그렇게 조용히 들어온다.



앞선 사람을 보느라 내가 걸어온 길을 잊었다


비교에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나보다 뒤에 있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늘 앞에 있는 사람만 보인다. 그래서 아무리 걸어도 부족하다. 하나를 이루면 더 큰 것을 이룬 사람이 보이고, 한 산을 넘으면 더 높은 산이 눈에 들어온다. 끝이 없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위치를 기준으로 내 삶의 만족을 정하고 있을까. 돌아보면 나 역시 꽤 먼 길을 걸어왔다.


배운 것이 있고, 이룬 것도 있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한 일도 있다. 무엇보다 아직도 궁금한 것이 있고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런데 남의 길만 바라보면 내가 걸어온 길은 자꾸 작아진다. 비교는 때때로 내가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먼저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산에서는 젊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 갈 때가 있다. 발걸음이 가볍다. 잠시 뒤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진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길을 내어준다.


“먼저 가세요.”


그 말을 하고 다시 내 걸음으로 돌아온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그 사람이 먼저 정상에 도착한다고 해서 내 산행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내가 천천히 간다고 산의 풍경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걷다 보면 빠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풍경을 만날 수도 있다. 삶도 그러했다. 빠름과 늦음은 비교할 수 있어도, 깊이까지 속도로 잴 수는 없었다.



노자는 ‘족함’을 물었다


『도덕경』 제44장에서 노자는 묻는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지족불욕, 지지불태)

족함을 알면 욕됨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젊은 날에는 ‘지족(知足)’이라는 말을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처럼 받아들인 적도 있었다. 만족해 버리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욕심이 있어야 앞으로 가지 않는가.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는다. 족함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내 삶의 가치를 남의 성취에 맡기지 않는 것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공부할 수 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시험에 도전하고, 일을 확장하며, 새로운 글을 쓸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을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만 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 배우는 일이 즐거워서 하는 것. 어제의 나보다 조금 넓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하는 것.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삶의 방향을 바꾼다.



나에게 맞는 보폭


산행을 오래 하려면 자기 보폭을 알아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빠르면 뒤에서 힘들어진다. 숨이 찼는데도 앞사람을 따라가면 결국 더 오래 쉬어야 한다.


내 몸의 리듬을 알고, 오르막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평탄한 길에서는 조금 속도를 내고, 힘들면 잠시 쉬는 것. 그것이 오래 걷는 방법이다. 나이가 들면서 삶에도 그런 보폭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젊었을 때와 같은 속도로 살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제는 조금 느려져야 보이는 것도 있다. 사람의 표정. 한 권의 바카라. 계절이 바뀌는 풍경. 오래된 친구의 안부. 그리고 내 마음이 정말 원하는 것. 속도를 늦춘다고 삶까지 늦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늦게 시작해도 괜찮았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지금 시작해서 언제 하려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것인가.’


공부에도 나이가 없고, 글을 쓰는 데도 정해진 시기가 없다.


새로운 바카라을 읽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산에서 배운 것을 글로 남기는 데 ‘적정 연령’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의 후반에 시작한 일이 오히려 젊은 날에는 쓸 수 없었던 깊이를 품을 수도 있다. 살아본 시간이 문장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늦게 피는 꽃에는 늦게 핀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제 산에서 누군가 나를 앞질러 가도 마음이 급하지 않다. 길을 조금 비켜준다. 그리고 다시 내 호흡을 찾는다. 하나, 둘, 천천히 발을 옮긴다. 멀리 정상은 그대로 있다. 누가 먼저 가든 상관없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산은 결국 내가 걸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남의 걸음으로 내 삶을 완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남보다 빠르게 사는 것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속도로 살고 싶다. 천천히 가더라도 내 걸음으로. 가끔 멈추더라도 내 방향으로.


남의 정상에 빨리 도착하는 삶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내 보폭으로 걷는 삶.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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