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

by진경수

젊은 날에는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경험이 쌓이고 직바카라이 생기면서는 더 그랬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는 것은 내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정확히 모르면서도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답을 만들려고 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침묵보다 대답이 유능해 보였고, “모른다”는 말보다 확신 있는 말이 믿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래 공부할수록 이상한 일이 생겼다. 아는 것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보였다.



지식의 끝에서 만난 빈자리


어떤 분야를 처음 접하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 조금 배우면 자신감이 생긴다. 용어도 알게 되고 원리도 조금씩 이해한다.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면 다시 막막해진다.


예외가 나오고, 새로운 문제가 생기며, 서로 다른 견해를 만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넓은 세상의 작은 부분이었다는 것을.


산과도 닮았다. 산 아래에서는 정상 하나만 보인다. 올라가면 끝일 것 같다. 그런데 능선에 서면 그 뒤로 또 다른 산들이 나타난다. 하나의 봉우리에 올라야 비로소 더 많은 봉우리가 보인다.


공부도 그렇다. 그래서 많이 배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어쩌면 더 조심스러운 문장인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이 말을 예전보다 편하게 하려고 한다.


“그 부분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한마디를 덧붙인다.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두 문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모른다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곳에서 다시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름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배움의 입구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른다는 말을 숨길 이유가 줄어들었다.



노자의 ‘병(病)’


『도덕경』 제71장은 내가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두고 싶은 장 가운데 하나다.


知不知, 尙矣; (지부지, 상의)

不知知, 病也. (부지지, 병야)

모르면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귀하지만,

모르면서 안다고 여기는 것이 병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노자는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가 경계하는 것은 오히려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믿는 상태다. 이 말은 지식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그렇다.


“나는 저 사람을 잘 알아.”


오래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가족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직원의 생각을 짐작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 세대를 쉽게 판단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방이 있다.



경험이 답이 아니라 질문이 되는 나이


나이가 들면 경험이 많아진다. 그것은 분명 자산이다. 그러나 경험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해봐서 알아.”


라고 말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내 경험과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라고 묻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 되고 싶다. 과거의 경험을 오늘의 정답으로 꺼내놓기보다 오늘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으로 사용하는 사람.


세상은 계속 변한다. 기술도 변하고,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며, 사람들의 가치관도 달라진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을 이해하는 좋은 참고서는 될 수 있지만 오늘의 모든 답을 적어놓은 해답지는 아니다.



젊은 사람에게 묻는 일


예전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배우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이제는 반대의 순간도 많아졌다. 새로운 기술을 젊은 사람에게 묻는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방식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는다. 그럴 때 괜히 아는 척할 필요가 없다.


“그게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건가?”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질문하면 된다. 그 순간 나이는 잠시 사라진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서로의 자리가 바뀔 수도 있다. 내 경험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내가 이야기하고, 새로운 지식이 필요한 곳에서는 내가 듣는다. 세대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순간 나이는 벽이 아니라 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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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모르겠습니다”보다 더 어려운 말이 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이 말은 생각보다 어렵다. 경험이 많고 바카라임 있는 자리에 있을수록 자신의 판단을 뒤집는 것이 체면을 잃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틀렸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가야 한다. ‘내가 산을 몇 년이나 다녔는데’라고 말하며 계속 잘못된 길로 갈 수는 없다. 자기 수정은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능력을 잃고 싶지 않다.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모든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건 내가 잘 모르네.”

“자네 생각을 좀 들려주게.”

“내 생각이 틀렸다면 고치면 되지.”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 곁에서는 젊은 사람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후배도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계속 배울 수 있다.


살아보니 나이가 준 가장 좋은 선물 가운데 하나는 모든 것을 아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었다. 모르는 것은 물으면 된다. 틀린 것은 고치면 된다. 늦게 알았으면 그때부터 배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 조금 가벼워진다. 모든 질문에 정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도 줄어든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면 마음속에 작은 빈자리가 생긴다. 그 자리로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오며, 때로는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노년의 지혜를 나는 많이 아는 상태라고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아는지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고, 틀린 것을 발견하면 고쳐가며,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마음을 끝까지 남겨두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지혜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어려운 질문을 했을 때 서둘러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 생각하고, 모르면 웃으며 말할 수 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면 된다.


“그러니 한번 같이 알아봅시다.”


예전에는 모른다는 말이 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지금은 다르다. 그 말은 아직 내 생각에 빈자리가 있다는 뜻이고, 그 빈자리만큼 내가 더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정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 앞에서도 마음을 닫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나는 그런 나이 듦이라면 기꺼이 오래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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