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0개 국어

by달 산

병실 침대 머리맡에 숨겨둔 핸드폰을 결국 뺏겼다.


응급실에서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수술이 잡혔다. 몸에 염증이 커지고 열이 오른 채여서 제거 수술이 급했다. 면회 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를 통역해 줄 가족은 모두 문밖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나는 번역기 화면을 켜둔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었다. 말할 준비를 해둔 것이다.


“나인.”


영어로 ‘노’라는 뜻이었다. 단호한 한마디와 함께 안경과 베개 밑에 살짝 숨어 있던 내 핸드폰까지 들고 가버렸다.


그 순간, 상처의 고통보다 불안이 더 빠르게 나를 목 졸랐다.

핸드폰을 뺏긴 채 나는 병실 침대에 실려 수술실로 향했다. 이미 밤 10시가 넘어 깜깜한 복도를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 어딘가의 경계를 넘는 듯 덜컹거리며 나아갔다.


나는 무서워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5분쯤 흘렀을까.

천장의 조명이 바뀌고, 소음이 바뀌고, 공기마저 바뀌는 걸 누운 채로 느끼는 동안, 나는 내가 지금 이 건물의 어디쯤 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안경이 없으니 그마저도 흐릿했다.

물어볼 수도, 검색할 수도 없이.


수술실 한구석에 침대가 세워졌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얼마 뒤 덩치가 큰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콧노래인지 흥얼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내 머리에 샤워모자 같은 것을 씌워주었다.

이 늦은 밤, '너 때문에 야간 수술 준비로 힘들어!'라는 내색을 조금도 내지 않으려는 듯한 그 흥얼거림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놓이게 했다.


그는 다시 사라졌다.

언제쯤 수술대에 들어갈지 아무런 기약도 없이, 나는 샤워캡을 쓴 채 얌전히 누워 있었다.


마음속으로 아는 기도문을 있는 대로 다 꺼내 외웠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40여분쯤 지났을까.

그 흥얼거리던 사람이 다시 와서 나를 수술대로 옮겼다.


수술복에서 흔히 보던 그 초록색 천이 먼저 내 위로 덮였다. 그 안에서 똑딱이 단추 하나로 여미어져 있던 환자복이 마저 벗겨졌다.


너무 부끄러워 마취하기도 전에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의사가 뭔가 말을 걸었다. 눈을 뜨라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산소마스크 같은 것을 내게 씌웠다.


“야, 야. 당케.”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수술실에서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말이었다.


병실에서 수술을 논의할 때, 의사가 수면마취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별로 무섭지 않았다. 한국에서 위내시경을 받을 때 해본 수면마취처럼, 잠깐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수술이 끝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수술이었다.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꽤 쿨하게 수술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자고 났더니 나는 병실로 돌아와 있었다.

인상 좋은 간호사가 스마트폰과 사물함 열쇠를 가져다주며 빙그레 웃었다. 무언가를 말하며 손을 몇 번 흔들었다. 가족들에 관한 말인 것 같았다.


수술이 끝나면 밖에서 기다리던 가족들이 무사 귀환을 축하하며 따뜻한 응원을 해줄 줄 알았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카톡 가족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간호사가 가라고 해서 집에 왔어요. 수술 끝나고 톡 주세요.”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건 의사의 표정으로 짐작했다.

다음 날 진료기록을 받았다. 번역기로 돌려보니, 수면마취가 아니라 전신마취로 수술을 했다는 거였다.


어떤 설명을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술이 끝났다는 것만, 나는 서류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쩐지 인공호흡기를 씌워주길래 무슨 일인가 했었다.


퇴원하고도 일주일가량 기력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마트만 다녀와도 숨이 차서 중간에 쉬어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전신마취 후엔 폐가 제 기능을 되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손에는 다시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번역기 앱을 켜고, 다시 말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은 어떻게든 낫는다.


핸드폰을 뺏긴 채 실려 갔던 그 5분과, 홀로 눕혀져 있던 그 40분이, 어쩌면 내가 이 도시에서 진짜로 혼자였던 유일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0개국어로 살아도, 이 잔에 담긴 마음만은 번역이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