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램, 벌금보다 낭만

by달 산


코발트빛 하늘이 지평선까지 내려와 있고, 눈부시게 흰 구름 아래로 빨간 트램이 인도를 스치듯 천천히 지나갔다. 창문 너머로 아이 하나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무심해졌다.

모네의 그림처럼 이 아름다운 풍경이 비엔나의 첫 기억이다.

한동안 한국에서처럼 교통권을 사서는 손에 꼭 쥐고 탔다. 내릴 때면 그 티켓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동안 운이 좋아 검표원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평생의 운을 그 시절에 다 써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비엔나에서는 티켓을 펀칭하지 않으면 무효라는 사실을, 나보다 몇 달 늦게 이곳으로 이주해 온 젊은 엄마에게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빈 교통 앱에서 청소년 할인 티켓을 발견했다. 할인권 하나를 찾아냈다는 뿌듯함에 가족들 앞에서 한껏 생색을 내며 아이들의 교통권을 반값에 발급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표원이 아이들에게 왔다.

당당하게 티켓을 내밀었지만, 곧이어 티켓값의 50배에 달하는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유인즉, 그 티켓은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생색은 순식간에 부끄러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내 어깨는 더없이 움츠러들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닌 지 삼십 년이 넘은 남편의 대부님께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분은 웃으며 옛 유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는 학생들이 백 유로짜리 지폐를 한 장씩 청바지 뒤에 넣고 다녔다고 했다. 돈이 궁하던 시절에는 매번 요금을 내는 것보다 가끔 걸려 벌금을 내는 편이 오히려 싸게 먹혔다는 것이다. 그 당시 유학생들의 고단함이 뜻밖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곳에서는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금 더 많은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 장거리 여행도 미리 티켓을 끊어두지 않으면 출발일이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덕분에 우리는 조금씩 더 계획적인 사람이 되어가기도 한다.

로마 가족여행을 마치고 빈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이른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리는 어둑한 버스 정류장에 나와 있었다.

도착 첫날 사두었던 공항버스 티켓은 내 가방 속에 고이 모셔두었었다. 그런데 터미널에 도착해서 보니 티켓이 없었다.

주머니를 뒤지고, 혹시나 싶어 다시 확인하고, 다른 가족들의 가방까지 다 열어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전날 저녁 가방 속을 정리하며 휴지 뭉치들을 길가 쓰레기통에 깨끗이 털어버렸던 장면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럼 다시 사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매표소는 굳게 닫혀 있었다. 가로등이 채 꺼지기도 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버스는 곧 도착할 텐데 표는 없고, 표를 살 곳도 없었다. 비행기를 놓치면 다른 일정까지 줄줄이 차질이 생길 터라 마음이 점점 다급해졌다.

그때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는 기사님에게 초조하게 다가가 말했다.

“저희가 티켓을 잃어버렸어요.”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짧은 증거 영상 하나를 보여드렸다. 며칠 전 다섯 장의 티켓을 부채처럼 펼쳐 들고 “티켓 성공!”을 외치던 딸의 SNS 영상이었다.

기사님은 별다른 관심 없이 영상을 흘려보더니 몇 장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버스에서는 현금을 내고 표를 살 수 있었다.

어이없음과 기쁨이 교차하던 그 새벽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트램이 가끔 멈춰 설 때가 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지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때가 종종 있다.

먼저 내린 승객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창밖에서 유리를 툭툭 두드리며 내리라는 손짓을 보내주기도 한다. 또 어떨 때는 기관사님이 마이크를 입에 바짝 대고 큰 소리로 방송을 하기도 한다. 그제야 돌아보면, 이미 트램 안에는 아무도 없다.

어떨 때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내릴 정거장을 건너뛰기도 한다.

도무지 맞추기 힘든 이 도시의 트램이 요즘 내 마음만큼이나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조금 늦게 내리고, 한 정거장쯤 지나쳐도 그러려니 한다.

언젠가는 이 방송도 알아듣게 될 것이고,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처럼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헤매던 시간도 그리워질지 모른다.

조금 헤매더라도, 가끔 엉뚱한 곳으로 가더라도.
그래도 낭만만은 잃지 않아서 좋다.

나도,

트램도.



빈 교통 실전 팁
• 티켓 펀칭 필수, 모바일 앱이면 걱정 없음 — 탑승 전 반드시 펀칭기에 개시해야 유효. 단, Wien Mobil 앱으로 구매한 모바일 티켓은 시간이 자동 인쇄되어 펀칭이 필요 없다. 앱 하나로 실시간 도착 정보, 티켓 구매, 노선 검색까지 한 번에 가능.
• 장거리 버스·기차는 미리 예매, 승차 구역 재확인 . 임박할수록 요금 급상승. 같은 터미널이라도 A·B·C·D 구역이 수시로 바뀌니 출발 전 확인 필수.
• 저가항공은 온라인 체크인 필수 . 위즈에어·라이언에어 등은 공항에서 직접 체크인하면 수수료가 크게 붙는다.
• 비엔나 공항버스는 예약 없이 탑승, 현금·카드 다 가능
• 야간엔 Nightline 버스 , 지하철·트램 끊긴 시간대에도 도심 곳곳 운행.
• 단기 체류 아니면 정기권이 이득 . 주간·월간·연간권이 개별 티켓보다 경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