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것과 똑같이 생긴 황도 통조림을 보고 반가웠다. 덥석 집어 카트에 넣었다. 과자도 담고, 생수와 닭 정육도 골랐다.
회복하는 환자에게 입맛을 돌게 해 주던 달콤하고 노란 황도, 그 맛을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을 따보니 그냥 절인 복숭아, 맹물 맛에 가까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커(Zucker), 설탕 함량을 확인했어야 했다.
몇 숟갈 뜨다 만 통조림은 냉장고 구석으로 밀려났고, 며칠 뒤 버려졌다.
생수도 마찬가지였다.
탄산수와 일반 생수를 구분하지 못해서, 마트에서 병을 살짝 흔들어 기포가 올라오지 않는 걸 골랐다. 그런데 집에서 뚜껑을 따보니 짜릿한 탄산수였다.
나중에 알았다.
‘오네(ohne)’라는 글자가 없으면 탄산이라는 걸.
오네는 ‘없다’는 뜻이다.
뼈 없는 고기, 설탕 없는 과자, 탄산 없는 생수.
이 나라 마트에서 오네만큼 중요한 단어도 없다.
닭갈비가 먹고 싶어서 골랐는데, 오네를 확인했어야 했다. 양념에 재려고 꺼내 보니 덩어리마다 다리뼈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런 일은 한동안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마트에 갈 때마다 폰 메모장을 열었다. 낯선 단어를 만나면 적었다.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고, 뜻을 확인하고, 다음번엔 그 단어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메모장은 금세 빼곡해졌다. 소금, 설탕, 무가당, 저지방. 거창한 단어들이 아니었다. 매일의 밥상을 차리는 데 필요한 말들이었다.
지금은 봉지 뒤에서 ‘잘츠(Salz), 소금’이라는 글자부터 찾는다. 치즈와 소시지 코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감자, 우유, 계란은 아무거나 집어도 실패가 없었다. 이 나라 감자는 뭘 사도 맛있었고, 알프스에서 온 우유는 어디서 먹던 우유보다 진했다. 양파와 토마토도 믿고 집을 수 있었다.
6년 전 갓 이주했을 때 기억이다.
한국에서 하던 버릇대로 카트 가득 장을 봐서 계산대에 산더미처럼 올려두었다.
그때 앞에서 계산을 마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에게 스티커 한 장을 불쑥 내밀며 뭐라고 하셨다.
‘정 많은 나라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웃으며 받아 들었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알 것도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스티커를 계산할 때 내밀었더니 직원이 뭔가를 가리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보니 기간이 정해진 할인권이었다.
다음번엔 날짜를 정확히 맞춰 갔다.
그런데 캐셔가 또 한참을 계산대에 나를 세워두고 설명을 했다. 뒤쪽에 줄 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방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이마에 찍힌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해가 안 가서 마트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봤다. 저렴한 자사 브랜드 상품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마저도 이사 온 후로는 광고 전단지가 끊어졌다. 우편함이 나를 버린 건지, 스티커가 나를 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스마트폰 번역기를 켜서 계산원 앞에 내민다.
“저희 집엔 이 스티커가 안 와요. 한 장 주실 수 있나요?"
캐셔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에서 25퍼센트를 깎아준다. 물론 마음 좋은 계산원을 잘 만나야 한다는 변수는 있다.
번역기는 지팡이였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짚는 지팡이인데, 나는 한동안 그걸 쓰는 게 불편했다. 예전엔 못 알아들은 걸 들킬까 봐 그냥 웃고 넘겼는데, 이제는 모르면 번역기부터 켠다.
그동안 나는 이 나라 말을 배운 게 아니라,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지금은 주커와 잘츠만 잘 확인해도 마트에서 원하는 맛을 찾을 수 있다.
가끔 마트에 함께 간 가족들이 나를 보고 놀란다. 포인트 카드를 꺼내는 타이밍, 담을 봉지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 계산이 끝나고 영수증을 챙기는 것까지 막힘이 없어서다.
별거 아니다.
점원이 뭐라 하면 일단 “야야(Ja ja).” 계산이 끝나면 “카르테, 비테(Karte, bitte)”카드부터 내민다. “레히눙(Rechnung)?” 하고 물으면 영수증 줄까? 하는 소리구나. “비테(bitte).”
몇 년 전엔 이 세 마디도 없어서 뒷사람 눈치를 보며 진땀을 뺐었는데.
확인하지 못하고 골라온 과일도 이제는 그 자리에서 클레임을 걸어 바꿔올 수 있게 됐다.
몸짓이 먼저고, 번역기는 그다음이지만.
누구든 낯선 곳에선 처음엔 이렇게 헤맨다.
돌이켜보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어를 외우는 일이 아니었다. 모르는 것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었다.
사는 건 여기나 거기나, 결국 다 거기서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