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채워지는 나

byJiyoun

지난 화에서 인생에서 '몰입(Flow) 경험'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연재 스토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강조한 만큼,

왜 이게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나'라는 사람을 끊임없이 정의한다.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우리 부모 세대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모토로 열심히 금지옥엽 자식을 키우셨다.

사랑도 듬뿍 받고 국민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 우리는 이전보다 자아와 자아실현을 삶의 중요한 과제로 배우며 자기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찾고 또 꿈을 갈망하며 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를 정의한다는 게 어떤 기준에 근거하거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출신 대학이 어디인지 직업은 무엇이며 온라인 게임은 어디인지부터 시작해서

연봉은 어느정도인지, 사는 동네는 어디인지, 심지어 무슨 차를 타는지까지...


문제는 이렇게 나에게 주어진 타이틀과 내가 가진 것을 기준으로 나를 정의하면서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비교와 좌절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유는 비교가 쉽다.


가격과 크기, 브랜드처럼 한눈에 서열화할 수 있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Carter와 Gilovich(2010)는 물질적 소유에 대한 만족이 경험에 대한 만족보다 타인과의 비교에 더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소득 또한 마찬가지다. Boyce 등(2010)의 연구에서는 소득의 절대적인 액수보다 비교집단 안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순위를 차지하는지가 삶의 만족도를 더 잘 설명했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보다 적게 가진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의 비교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나를 정의하는 순간, 나에 대한 평가권은 내 손을 떠난다. 언제든 나보다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 더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만족은 남보다 얼마나 더 가졌는가에 달린 일이 되어버린다.


그치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보통 나의 타이틀을 복기하면서 행복해하지 않는다.

어느 학교를 나왔고 어느 회사에 다니며 얼마나 버는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삶이 충만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목표를 향해 애쓰던 순간, 무언가를 배우며 조금씩 달라지던 시간, 가족과 웃었던 저녁,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같은 것들이다.


물론 경험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더 먼 곳으로 여행하고, 더 대단한 성취를 이루며, 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험에는 소유와 다른 점이 있다.

경험은 그것을 통과한 사람을 변화시킨다.


Carter와 Gilovich(2012)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물건보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정체성의 중심에 더 가깝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물건은 내 곁에 놓이지만 경험은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새롭게 알게 하면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나를 남긴다.


몰입은 그런 경험 중에서도 밀도가 높다고 할까.


몰입하는 동안에는 내가 누구인지, 내 타이틀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자의식은 희미해지고 지금 하고 있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나’를 잊고 돌아온 자리에는 이전보다 조금 확장된 내가 있다.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선명해지고,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이 남는다.


최근 몰입과 안녕감에 관한 메타분석에서도 몰입은 성장과 목적, 충만함을 포함하는 안녕감과 더 강하게 관련되어 있었다(Sweeny et al., 2026). 몰입은 그 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살아 있음을 진하게 느낀 순간들이 쌓여 결국 ‘나’라는 사람이 된다.










Boyce, C. J., Brown, G. D. A., & Moore, S. C. (2010). Money and happiness: Rank of income, not income, affects life satisfaction. Psychological Science, 21(4), 471–475.


Carter, T. J., & Gilovich, T. (2010). The relative relativity of material and experiential purchas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8(1), 146–159.


Carter, T. J., & Gilovich, T. (2012). I am what I do, not what I have: The differential centrality of experiential and material purchases to the self.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2(6), 1304–1317.


Sweeny, K., Medina Huerta, J., Hawes, J., & Susoeff, S. (2026). Just keep flowing: A meta-analysi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flow and well-being. Emotion, 26(6), 1323–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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