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도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된다.
나도 아이를 낳은 날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워보니 엄마가 되는 것과 부모가 되는 법을 알아가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었다.
아이의 나이가 처음인 것처럼 나에게도 늘 처음인 일이 생겼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도 처음이었고,
초등학생,중학생 엄마도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또 처음인 일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자주 고민한다.
이럴 때는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말해줘야 할까.
그냥 두어야 할까.
정답은 늘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좋은 바카라을 읽어주고 싶었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보고 싶었다.
궁금해하는 것이 생기면 같이 찾아보고,
해보고 싶다고 하면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읽고, 보고, 찾아다녔다.
그때는 무엇을 해줄까를 많이 고민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고민이 조금 달라졌다.
언제 기다려야 할까.
어디까지 지켜봐야 할까.
내 생각을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삼켜야 할까.
물론 나는 늘 잘 기다린 것도 아니다.
아이보다 먼저 불안해한 적도 있었고,
내 생각이 더 나은 것 같아 말을 보탠 날도 있었다.
지나고 보면 그냥 두어도 됐을 일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충분히 듣기 전에 괜찮아질 이유부터 찾아주려 한 적도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잘 기다렸다가도 어느 날은 또 조급해질 것이고,
한 발 물러났다가도 나도 모르게 두 발쯤 앞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나도 부모니까.
이 글을 쓰면서 지나온 시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잘했다고 생각했던 선택도 있었고,
지금이라면 조금 다르게 했을 것 같은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나에게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아이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다.
아이들이 달라지면 나도 다시 생각했다.
첫째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이
둘째에게 그대로 맞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제 괜찮았던 방법이 오늘은 맞지 않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다시 봐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거창한 육아의 정답은 아니다.
아이를 오래 본다고 언제나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었고,
믿는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기다린다고 늘 좋은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멈춰보게 되었다.
내가 불안한 것인지,
아이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지금 말을 해야 하는지,
조금 더 기다려도 되는지.
그 정도의 차이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아직 과정에 있다.
완벽한 부모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아이들을 키우기 시작했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것은 안다.
많이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때를 지나,
기다리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답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때를 지나,
때로는 함께 궁금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도 배웠다.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도 아이들 곁에서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