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은 길었다. 최석동의 진술과 우리 진술은 정확히 반대인 채로 한 권에 나란히 철해졌다. 총에서는 내 지문이 나왔고, 폐공장 안을 찍은 화면은 하나도 없었다.
두 번째 감찰 출석이 있던 날 저녁, 우리는 술집 구석 자리에 마주 앉았다. 내 앞에는 소주, 장춘자 계장 앞에는 오렌지주스. 옆 테이블에서 회식 건배 소리가 터질 때마다 잔이 탁자 위에서 미세하게 떨었다.
“이번에도 당했네요.”
따라잡았다 싶으면 놈들은 꼭 우리 발목을 붙든 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손에 남는 건 미끈거리는 감촉과 감찰 출석 요구서뿐이었다.
“그래도 건진 건 있잖아. 윤동우가 테러에 돈 댄 압수물도 경찰 보관실에 있고.”
“그걸 쥐고 있으면 뭐 합니까? 써먹지도 않고 또 기다리라고만 하시면서!”
“취했군.”
“안 취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네? 마포에서 열다섯 명이 죽고 신 검사님은 눈도 못 뜨는데, 우린 증거만 끌어안고 앉아 있잖아요! 지금이라도 다 잡아들이자고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싹 다…….”
장춘자 계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오렌지주스에는 손도 대지 않고 내 빈 잔만 말없이 채웠다. 나는 그 잔을 단숨에 비웠다.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 소주 몇 잔에 무너질 만큼 약한 사람은 아니라고 믿어 왔는데, 필름은 이상할 만큼 빨리 끊겼다.
*
속쓰림과 두통에 눈을 떴다. 천장이 낯설었다. 심장이 철렁했다가, 벽에 걸린 낡은 운세 달력을 보고 장춘자 계장 집이라는 걸 알았다. 거실 소파에는 낙타에게 텐트를 뺏긴 여행객처럼 그가 구겨져 자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빈 소주병과 오렌지주스 팩, 뜯다 만 과자 봉지. 그의 집까지 와서 나 혼자 더 마신 모양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테이블 위 핸드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 발신번호표시제한
그 문구 하나에 술이 확 깼다. 내 핸드폰이라 믿고 집어 든 나는 그가 깰까 봐 방으로 들어가 받았다.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장춘자 계장님.”
그제야 손에 든 기계를 내려다봤다. 장춘자 계장의 것이었다.
“어때요? 그 애송이는 여전히 말을 잘 듣습니까? 크크.”
내게 전화를 걸어 장춘자 계장을 깎아내리던 그 목소리였다. 끝을 말아 올리는 버릇, 웃음 앞에서 숨을 한 번 들이켜는 틈까지. 심장이 엇박자로 뛰었다.
“아무리 순진해도 이쯤 되면 계장님이 어떤 인간인지 알 법도 한데. 아니면 아직 총알받이로 쓰기엔 덜 영근 겁니까?”
“당신, 누구야?”
수화기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기척이 났다.
“이런. 내가 전화를 잘못 걸었나?”
“아니. 장춘자 계장한테 건 거면 맞게 걸었어. 내가 받았을 뿐이지.”
“크크. 공교롭게 됐군.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으니까, 뭐.”
“목적이 뭐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건가?”
“그런 수 안 써도 너희 둘은 곧 끝나. 난 장춘자는 물론이고 그 옆에 붙은 사람 전부가 불행해지길 바라거든! 철저하게 다 망가졌으면 좋겠어. 그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으니까!”
차갑던 목소리가 한 칸 높아졌다. 그 틈을 찔렀다.
“당신이 마창수 수사관인가? 장춘자 계장의 파트너였다던 사람?”
“크크크.”
웃음이 한참 멎지 않았다.
“마창수라……. 이름은 안 잊었군. 그런데 보아하니 나에 대해선 전혀 안 알아본 모양이야? 그 동영상을 보고도?”
“그런 건 얼마든지 짜깁기할 수 있으니까.”
“장춘자한테 완전히 세뇌당했군. 하긴, 나도 처음엔 그랬지. 크크. 내가 누군지 알아내 봐!”
전화가 끊겼다. 뚜, 뚜, 끊긴 신호음이 귓속에 오래 남았다. 커튼 친 방은 어두웠다. 제일 빠른 길은 거실에서 코를 고는 저 양반에게 묻는 거겠지만…….
나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제자리대로 올려놓고, 현관 가방에서 내 핸드폰을 챙겨 소리 죽여 문을 나섰다. 새벽 공기가 달아오른 얼굴에 차갑게 붙었다. 골목 끝으로 신문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뛸 때마다 그 목소리가 같이 울렸다.
“마창수.”
소리 내어 불러 보니 결심이 섰다. 놈을 알아보기로.
*
“그 새벽에 집에 갔다고? 젊음이 좋긴 하네. 허허.”
서초동 국밥집에서 장춘자 계장은 해장국을 국물까지 비웠다. 나는 숟가락만 들었다 놨다 했다.
“하 팀장이라는 놈 알아냈어. 엄밀히 따지면 국정원 소속은 아니야. 국정원이 제 손 더럽히기 싫을 때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외주를 줘. 하 팀장은 그쪽 전문이고. 본명 하민상. 특수부대 부사관 출신에 이 나라 저 나라 용병 생활도 좀 했대. 블랙이 칼이라면 하 팀장은 머리야.”
“그 머리가 지난번엔 실패했죠.”
“우리 활약 덕분에. 놈은 단단히 벼르고 있을 거야. 그러니 선수를 쳐야 해. 하 팀장 뒤를 밟아서 그 위가 누군지 보는 거야. 박과실로 바로 이어지는지, 다른 누가 끼어 있는지.”
마창수라는 이름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국물과 함께 넘어갔다. 지금 꺼냈다가는 새벽에 남의 전화를 받은 것부터 털어놔야 했다.
“양주 외곽에 방범 회사로 위장한 사무실이 있어. 조심해. 우리가 노리는 만큼 놈도 우릴 노리고 있을 테니까.”
*
‘안심 방범 설비’는 이름부터 심심했다. 컨테이너 두 동을 쌓은 건물 앞에 승합차 두 대와 승용차 한 대. 장춘자 계장의 SUV는 한 번 팔린 터라 우리는 빌린 차로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CCTV가 여섯 개나 됩니다.”
“방범 회사치고도 많네. 감출 게 많다는 거지.”
건너편 골목에 차를 대고 기다렸다. 컨테이너 지붕 위로 오후 볕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한참 입을 다물고 있던 장춘자 계장이 불쑥 물었다.
“자네는 오늘의 운세 같은 거 보나?”
정확한 정보만 믿는 양반이 잠복 중에 운세라니. 하긴 이 양반은 신문 여섯 개를 훑으면서 운세 칸도 빼먹지 않았다.
“가끔 불확실한 데 정신을 팔면 머리가 식어. 맞을 때도 제법 있고. 나중에 끼워 맞추는 거긴 하지만. 하하.”
“오늘은요?”
“좋던데?”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하 팀장이 방금 차에 탔거든요.”
하 팀장은 부하 없이 혼자 승용차를 몰고 느긋하게 양주 시내로 향했다. 우리는 차 두 대쯤 뒤에 붙었다.
“계장님 운세 어디서 보세요? 제 것도 궁금해서요.”
“야! 보지 마. 이럴 때 보면 꼭 안 좋은 게 나온다더라.”
나는 웃음을 참으며 몰래 검색했다. 첫 줄만 읽고 화면을 껐다. 그사이 하 팀장 차가 빌딩 지하로 꺾어 들어갔다.
하 팀장은 미행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깜빡이도 꼬박꼬박 켰다. 정보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얌전한 운전이었다. 장춘자 계장은 일부러 한 층 아래에 차를 대며 핸드폰으로 짧은 문자를 하나 보냈다. 화면은 내 쪽으로 기울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11층에서 멈췄고, 11층 안내판에서 눈에 걸리는 건 ‘미유’라는 일식집이었다.
장춘자 계장은 미유에 성큼 들어가 계산대 직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혹시 오늘 예약자 중에 이 번호 쓰는 분 계십니까? 주차를 이상하게 해서 제 차를 못 빼고 있거든요.”
“아! 계세요. 벚꽃룸 예약하셨는데…….”
“제가 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신 대리가 뺄 수 있다고? 그럼 식사 방해하지 말고 그냥 가지.”
밖으로 나오자 웃음이 터졌다.
“계장님은 배우 했어도 성공했겠네요.”
“이 정도야 뭐.”
“내가 하 팀장을 불러낼 테니 자네는 벚꽃룸에 누가 있는지 봐.”
차를 긁었다는 수법은 이번에도 먹혔다. 하 팀장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다시 들어갔다. 벚꽃룸은 화장실 바로 옆이었다.
복도에는 일본 전통 음악이 낮게 흘렀고, 주방 쪽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밀려왔다. 나는 미닫이문을 살짝 밀었다.
“빨리 왔네?”
고개를 돌린 건 마흔 중반쯤의 여자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과 방 안을 재빨리 훑었다. 수저는 두 벌, 술잔도 두 개.
“아! 죄송합니다. 방을 착각했네요.”
“아뇨. 맞게 찾아왔어요. 신기탄 수사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당신 누구야?”
“앉아서 기다려요. 하 팀장이 돌아올 때까지. 지금쯤 장춘자 계장을 제압했을 테니까. 다치게 하진 말라고 했으니 너무 놀랄 건 없고요. 이 자리를 뜨면 장춘자 계장 목숨도 없는 거예요. 우리 서로 피 보지 말자고요. 오케이?”
함정이었다. 정보 하는 사람은 자기 번호로 식당 방을 잡지 않는다. 그런데 하 팀장은 자기 번호로 벚꽃룸을 잡았다. 아귀가 너무 착착 맞았다. 어쩌면 말리는데도 운세를 본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내 오늘의 운세는 최악이었으니까.
집에서 나오지 말라.
나는 여자 맞은편에 앉았다. 부리부리한 눈동자, 큼지막한 입술,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화려한 화장.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식탁 밑에서 무릎이 떨렸다. 장춘자 계장이 지금 어디서 어떤 꼴로 있는지, 그 생각만 머릿속에서 덜컹거렸다.
“내가 누군지 궁금해요?”
“지금은 그것보다 이러는 이유가 궁금한데?”
“그거야 곧 알게 될 거고. 흐흐.”
문이 열리고 하 팀장이 들어왔다.
“계장님은?”
“트렁크 안에. 곤히 자고 있으니까 걱정 마. 너도 같이 타게 될 거야. 트렁크에. 크크.”
하 팀장은 주머니 안에서 내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도망칠 길은 없었다. 아니, 장춘자 계장만 두고 도망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