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위기일발

by최길성

“그게…….”


최석동은 우리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공장 바닥에 꿇었던 무릎에 흙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지금 와서 숨기면 뭐 합니까? 다 털어놔요. 어서!”


장춘자 계장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날카로웠다. 능청이 빠진 그의 말투는 들을 때마다 낯설다.


“계장님, 일단 뜨시죠. 우리가 경찰을 안 불렀다는 건 금방 들통납니다.”


“도, 도와주세요! 다 말할 테니 춘천으로만 데려가 주세요!”


나는 최석동을 끌다시피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셔츠 등판이 땀으로 젖어 손바닥에 들러붙었다. 차가 산길을 내려와 국도에 올라서자 그가 긴 한숨 끝에 입을 열었다.


“짐작하신 대로 하 팀장은 국정원 쪽 사람입니다. 그쪽에서 먼저 접근했어요. 처음엔 춘천파 뒤만 좀 봐 달라고 했습니다. 승냥이가 비밀 임무 중이니 돕는 게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그 황당한 얘기를 믿을 만큼 뒤에 붙은 떡고물이 컸겠지. 안 그래요?”


“국정원 요원으로 뽑아 준다고 해서……. 발을 빼려고 했는데 늦었더라고요. 하 팀장 저 새끼가 계속 협박했어요. 국정원 무서운 거 두 분도 아시잖아요!”


국정원 배지 하나에 모시던 검사를 팔았다. 저절로 실소가 나왔다.


“하 팀장이 우리도 치우려 했습니까?”


“그러고도 남을 놈입니다! 그러니 두 분도 조심…….”


장춘자 계장이 뒤로 손을 뻗어 최석동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주머니와 허리춤까지 더듬었지만 더 나온 건 없었다.


“이거 켜 두면 하 팀장이 우리 밥 먹는 데까지 따라와요.”


최석동이 그제야 다급하게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계장님, 차 좀 돌려 주세요. 제 차에 신 검사 서류 사본이 있어요. 그거 없이 가면 저는 증거도 없이 떠드는 배신자예요. 그걸 들고 가야 제가 삽니다.”


장춘자 계장이 룸미러로 그를 오래 봤다.


“서류가 있긴 해요?”


“운전석 밑에요. 맹세합니다.”


“내 차는 오늘 어차피 한 번 팔렸어. 돌아가지. 대신 꺼내는 건 내 눈앞에서 해요.”


폐공장 공터로 돌아갔을 때 해는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다. 공장 그림자가 공터를 반쯤 덮었고 소나타는 아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춘자 계장이 최석동의 허리띠를 뒤에서 움켜쥐고 운전석 앞에 세웠다. 나는 열린 문 옆에서 그의 두 손만 봤다. 최석동은 반쯤 엎드려 시트 밑을 더듬었다. 어깨 너머 시트 밑에서 무언가 푸르스름하게 한 번 빛났다가 꺼졌다. 몸은 뒤졌어도 차는 뒤지지 않았다. 그게 핸드폰 액정 불빛이라는 걸 깨달은 건, 서류 대신 차가운 쇠뭉치가 내 이마에 닿은 뒤였다.


“어이, 둘 다 움직이지 마. 하 팀장이 지금 이리로 오고 있으니까. 크크.”


“서류는 핑계였군. 우릴 이 공터로 다시 끌고 오려고.”


“시트 밑에 전화기 하나 더 붙여 놨거든. 버튼 하나면 하 팀장한테 가. 너희 둘 넘기면 난 살려 준대! 이 총도 하 팀장이 준 거야. 언제 써 보나 했는데.”


눈으로 어떻게 할까요, 묻자 장춘자 계장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이마에 닿은 총구가 떨리고 있었다. 노련한 킬러보다 애 같은 인간이 쥔 총이 더 무섭다. 방아쇠 위 손가락이 언제 미끄러질지 본인도 모르니까. 나는 그 떨림의 박자를 셌다. 숨을 들이쉴 때 크게 흔들리고, 말을 할 때 총구가 들렸다.


“그래서 같은 식구를 팔아넘기겠다?”


“뭐, 난 모시던 검사도 팔았는데.”


산길을 치고 올라오는 승합차 엔진 소리가 굽이마다 커졌다. 장춘자 계장이 발끝으로 내 다리를 툭 건드리더니 소리쳤다.


“야! 최석동. 그 총 안 내려?”


대답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총구가 들렸다. 나는 그 손목을 잡아 하늘로 꺾었다.


탕!


총알은 소나타 지붕을 뚫었다. 장춘자 계장의 주먹이 최석동 턱에 꽂혔고, 나는 그 틈에 총을 비틀어 뺏었다. 최석동이 운전석 안으로 고꾸라지고 우리가 문에서 몸을 날린 직후, 승합차가 소나타 꽁무니를 들이받았다.


나는 뺏은 권총을 겨눴다. 승합차 창으로 고개만 내민 하 팀장이 과장되게 두 손을 들었다. 총구를 마주하고도 손바닥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총 내려놓고 대화로 풀면 어떨까?”


그때 핸들에 코가 뭉개진 최석동이 비틀비틀 기어 나오더니 괴성을 지르며 내리막으로 내달렸다.


“모두 공장으로 들어가!”


탕!


허공에 쏜 한 발이 열 마디 협박보다 잘 들었다. 하 팀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부하들을 앞세웠다. 놈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승합차 앞바퀴에 한 발을 더 박았다. 몸을 날리다 무릎을 다친 장춘자 계장이 절뚝이며 차로 가 시동을 걸었다. 수풀에서 멍한 눈으로 걸어 나오는 최석동을 뒷좌석에 다시 실었다. 그는 곧 정신을 놓았다.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손이 떨렸다. 총을 쥐었던 오른손이 아직 뜨거웠다.


“사람한테 쏘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잘했어. 그런데 하나만 기억해. 오늘 그 총 쥔 손은 자네 손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장춘자 계장은 대답 대신 백미러로 뒷좌석을 봤다.


*


춘천 시내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 고 형사가 먼저 와 있었다. 손수건에 싼 권총을 넘겼다. 탄창에서 세 발이 비어 있었다.


“지붕에 한 발, 허공에 한 발, 타이어에 한 발. 뒤의 두 발은 제가 쐈습니다.”


고 형사는 총을 증거물 봉투에 넣고 시각을 적었다. 최석동은 코뼈가 부러지고 턱이 부었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병실 앞에 경찰 둘이 섰다. 폐공장에 보낸 순찰차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바람 빠진 타이어 자국과 지붕 뚫린 소나타만 남았다고 했다.


“승합차 번호는 그날 밤 블랙박스 거랑 같습니다. 대포차겠지만 조회는 해 보죠.”


“최 수사관 잘 지켜 주세요. 누가 분명 목숨을 노릴 겁니다.”


밤 9시가 넘어 회색 양복 차림의 남자가 병실로 들어갔다. 춘천지검 감찰 담당 조사관이었다. 최석동이 응급실에서 직접 지검 당직실에 전화를 넣었다고 했다. 열린 문틈으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검 장춘자 계장이 저를 산속 폐공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총을 제 머리에 겨누고 진술을 강요했어요. 신기탄 수사관은 옆에서 실탄을 쐈고요. 제 얼굴 보십시오. 장 계장 주먹입니다.”


“폐공장에는 왜 가셨습니까?”


“가자니까 갔죠. 대검 계장이 타라는데 안 탑니까? 가는 내내 신 검사님 일을 저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했어요.”


문틈으로 지켜보니 울먹이는 대목과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이 외워 온 순서처럼 맞물렸다.


장춘자 계장은 복도 의자에서 자판기 오렌지주스를 홀짝였다. 절뚝이는 무릎에는 응급실에서 얻은 얼음주머니가 얹혀 있었다.


“총은 하 팀장이 줬고, 대사는 누가 써 줬을까.”


조사관이 나와 우리 이름과 소속을 받아 적었다. 볼펜 끝이 수첩을 긁는 소리가 복도에 또렷했다.


“장 계장님. 폐공장에 최 수사관을 데려간 건 맞습니까?”


“아뇨. 최 수사관이 우릴 데려갔죠. 자기 발로, 자기 차로. 우린 뒤따라갔고.”


“미행하셨다는 거군요. 근거는요?”


“그건 감찰부에서 정식으로 물으시면 답하죠. 여긴 병원이라.”


“그 총에서 신 수사관 지문이 나오면 설명이 필요하실 겁니다.”


“나올 겁니다. 제가 뺏었으니까요.”


*


조사관이 돌아가자 복도에는 소독약 냄새만 남았다. 고 형사에게 5분만 달라고 했다. 그는 문 옆을 지키겠다는 조건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석동이 부은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핸드폰 녹음 앱을 켜 침대 옆 탁자에 올리고, 그가 보는 앞에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이건 기록 안 됩니다. 그냥 들어 보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형님, 나야.”


최석동의 눈이 커졌다. 나는 승냥이의 목소리로 받았다. 최 계장이 웬일이야, 이 시간에. 다시 최석동의 목소리. 서울 손님이 박도영이 좀 빌려 달래. 덤프 모는 놈. 라이터 켜는 자리에서 한 박자 쉬고, 영감이 아직 형님 폰은 모르니까. ‘영감’에서 목소리를 깔았다.


4분 12초를 다 마쳤을 때 그의 손이 시트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 그거…… 어디서…….”


“승냥이 핸드폰에서요. 마포 참사 일주일 전 통화입니다. 지금은 경찰 증거물 보관실에 있고요.”


“봐, 봐주십시오. 저는 시키는 대로…….”


“봐 드릴 힘은 없습니다. 열다섯 명이 죽었으니까요.”


그는 천장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입술이 몇 번 달싹였다. 링거 방울을 세며 나는 기다렸다. 이윽고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다시 비굴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목소리야 흉내 내면 그만이죠. 당신이 방금 한 것처럼. 총 들고 있던 건 당신들이고 내 코를 부순 것도 당신들이에요. 진술은 그대로 갑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녹음 앱 화면은 꺼진 그대로였다.


문 옆의 고 형사가 헛기침을 했다. 5분이 지나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병원 1층 편의점 앞에서 오렌지주스 캔을 따던 장춘자 계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대검 감찰부였다. 네, 네, 짧게 답하고 그가 전화를 끊었다.


“최석동 진정으로 감찰 개시래. 직권남용에 가혹행위. 모레 오전 10시까지 나오라네.”


“빠르네요.”


“신 검사 찾을 때도 이렇게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쏜 건 접니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진정서에 내 이름이 먼저야. 자네는 참고인이고. 순서 지켜.”


“계장님은 아무 잘못도…….”


“감찰은 기록을 묻는 데야. 우리 기록은 깨끗해. 고 형사 압수목록에 서명했고, 블랙박스 넘겼고, 총도 넘겼어. 그거면 돼. 자네 지금 나랑 파트너 된 거 후회하지?”


“네. 후회합니다. 다시 태어나면 범정 쪽으론 오줌도 안 눌 겁니다.”


장춘자 계장은 빈 주스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캔은 테두리에 맞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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