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승냥이는 폭행 사주로 조사를 받았다. 춘천 나이트클럽 패싸움에 춘천파 조직원이 끼었고, 근처 CCTV에 승냥이가 찍히면서 화살이 두목에게 향했다. 보통은 불구속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신준철 검사는 이참에 춘천파 뿌리를 뽑겠다며 승냥이의 핸드폰과 계좌까지 압수했고, 거기서 찾아냈다. 승냥이와 박과실 원장, 그리고 윤동우 사이의 부당 거래 흔적을.
관계도의 화살표를 거꾸로 거슬러 오르면 끝에 이름 하나가 있었다.
“박과실 쪽에서 승냥이한테 시켰어요. 박도영을 섭외해서 덤프트럭으로 사고를 내라고.”
“박도영은 춘천 사람이고, 승냥이랑 종종 술자리를 했나 봐. 그리고 그 경비는…….”
“윤동우한테서 나왔죠. 신 검사가 왜 나비효과 얘기를 했는지 알겠네요. 마포구 테러는 윤동우의 자작극이었어요.”
“그리고 자기 수사관 이름 옆에 물음표를 붙였지. 그래서 수첩을 사무실에 못 두고 들고 다녔던 거고.”
메모를 보면 승냥이는 통화 녹음과 통장을 아무렇게나 굴렸다. 털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막상 털리자 허둥댔고, 그 소문이 그림자 조직 귀에 들어갔다. 검사와 함께 자기까지 치우는 게 제일 깔끔하다는 걸 승냥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수첩과 USB를 옷걸이 속에 넣었다. 자기 목숨값으로.
*
USB 복제본에는 승냥이 핸드폰에서 뽑은 통화 녹음이 마흔 개 넘게 들어 있었다. 신 검사는 압수한 핸드폰을 포렌식에 넘기기 전에 녹음 파일만 직접 빼내 따로 챙겨 두었다. 검사실을 거치는 서류에는 이 파일들이 한 줄도 없었다. 별표가 붙은 파일은 하나, 4분 12초짜리였다.
목록을 내리다 17번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별표는 없었지만 파일 이름 옆에 ‘오 이사?’라고 적힌 1분짜리였다. 틀어 보니 승냥이가 누군가에게 낄낄대고 있었다.
“형우 오 이사, 가평 들어갔다가 안 나왔대. 관리인이 뒷산 정리했다더라.”
가평 잔디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질질 끌려가던 다리, 산길로 사라지던 두 그림자. 장춘자 계장은 메모지에 17이라고만 적고 펜을 내려놓았다.
그날 밤 우리는 호숫가 모텔에 방을 잡았다. 보일러가 시원찮아 방바닥이 미지근했고, 벽지에는 담뱃진이 누렇게 배어 있었다. 장춘자 계장이 탁자에 노트북을 올리고 별표 파일을 틀었다.
“형님, 나야.”
“최 계장이 웬일이야, 이 시간에.”
“서울 손님이 박도영이 좀 빌려 달래. 덤프 모는 놈. 돈은 위에서 나온대. 형님은 사람만 대 주면 돼.”
“덤프는 왜? 그거 사고 나면 크게 나는 건데.”
“크게 나라고 하는 거지. 형님 사건은 내가 검사실에서 잘 덮어 줄게. 영감이 아직 형님 폰은 모르니까.”
라이터 켜는 소리 뒤로 트로트 한 소절이 깔렸다. 날짜는 마포 참사 일주일 전이었다. 재생이 끝나고도 장춘자 계장은 한참 입을 열지 않았다.
“별장 마당에서 들은 그 목소리네. 형님 소리 할 때 콧소리 섞이는 것까지.”
나는 그 파일을 다시 틀었다. 또 틀었다. 장춘자 계장이 사우나를 다녀오고, 컵라면을 먹고, 오늘의 운세를 다 읽을 때까지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한 번 들으면 다 외운다며. 왜 자꾸 틀어?”
“외우는 건 첫 번에 끝났습니다. 똑같이 말하는 건 다른 문제라서요. 어디서 숨을 쉬는지, 라이터는 몇 초에 켜는지, ‘영감’ 할 때 목소리가 얼마나 내려가는지.”
“그걸 왜 흉내 내?”
“이건 압수물이라 아무 데서나 못 틀잖아요. 그런데 제 머릿속은 압수물이 아니니까요.”
장춘자 계장이 오렌지주스를 내려놓고 나를 빤히 봤다.
“그 말 내가 하려고 했는데.”
서른 번째쯤 나는 이어폰을 빼고 눈을 감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말했다. 장춘자 계장은 재생 막대를 보며 들었다. 내 마지막 숨과 막대 끝이 같이 닿았다.
“소름 끼치네. 라이터 소리는 왜 입으로 내?”
“거기서 최석동이 말을 한 번 끊거든요. 그 틈까지 같아야 본인이 알아듣습니다.”
그는 말없이 노트북을 덮었다. 불을 끄고 누워서도 나는 입속으로 한 번 더 굴렸다. 형님, 나야.
*
날이 밝자마자 서울로 올라갔다. 구 차장 방 소파에 앉자 밤새 굴린 목소리가 아직 혀끝에 남아 있었다.
사본을 한 장씩 넘길수록 구 차장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관계도의 윤동우 이름에서 그의 주먹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 더러운 새끼가! 감히 대한민국 검사를 건드려?”
씩씩거리던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일단, 덮어두는 거야.”
“지금이 윤동우를 칠 제일 좋은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알아. 하지만 윤동우는 증상이야. 우리가 찾는 건 그림자 조직이라는 암 덩어리고. 원본은 춘천 경찰 보관실에 있으니 어디 안 가. 지금 윤동우 이름을 꺼내면 그 사건부터 대검으로 끌려 올라오고, 그러면 덮자는 놈들 손이 닿기 딱 좋아져. 그 비리 수사관은 어떻게 할 거야?”
“저희가 맡겠습니다. 줄이 닿아 있다는 뜻이니 거꾸로 쓰는 게 낫겠습니다.”
“그래. 놈은 수첩이 압수된 건 알아도 그날 밤 우리가 숲에 있었다는 건 몰라. 그러니 겁을 주는 거야. 겁먹은 놈은 주인한테 달려가. 사람 더 붙여 줘?”
“아직은 됩니다. 이 친구가 워낙 쓸 만해서요.”
나는 고개만 까딱 숙였다.
덮어두라는 말을 삼키며 그 길로 춘천으로 내려갔다. 춘천지검 정문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장춘자 계장이 스피커 모드로 최석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잘 올라가셨습니까?”
“덕분에요. 어제 아침에 경찰이 별장에서 신 검사님 수첩을 압수한 건 들으셨죠?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어서요. 그저께 밤 별장에 들어간 놈들이 제 블랙박스에 찍혔거든요. 번호판까지 선명하게. 경찰에도 넘겼으니 확인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숨소리만 두어 번 들렸다.
“그, 그렇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블랙박스 원본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 지갑에요. 왜요?”
“아, 아닙니다. 혹시 지검에서 필요할까 싶어서.”
“차종과 번호는 제 파트너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화를 끊은 장춘자 계장이 시계를 봤다.
30분이 안 돼 검은색 소나타가 정문을 빠져나왔다. 장춘자 계장은 차 두어 대를 사이에 두고 붙었다. 미행이라면 그가 나보다 백 배는 나았다. 나는 앞차 번호판만 노려보는 일을 맡았다.
“박과실을 만나러 가는 걸까요?”
“그 정도 인간이 저런 잔챙이를 직접 상대하겠어? 중간 다리를 따로 만나겠지.”
*
외곽 국도를 달리던 소나타가 갑자기 오른쪽 산길로 빠졌다. 바로 따라붙으면 들킨다. 우리는 직진했다가 샛길로 한 바퀴 돌아 그 오르막으로 들어섰고, 길가 풀숲에 차를 깊숙이 넣었다. 파란 지붕 폐공장 공터에 소나타와 검은 승합차가 서 있었다. 승합차는 그날 밤 별장 앞의 그 번호였다.
녹슨 철문 틈으로 기름과 쇠 냄새가 새어 나왔다. 창문 너머 어둑한 공장 안에 다섯이 있었다. 넷은 서 있고, 가운데 최석동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우리는 입구로 숨어들어 거대한 기계 뒤에 몸을 붙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
“그 수첩 경찰 손에 들어가게 둔 게 누구야?”
귀를 긁는 높은 목소리였다.
“경찰서에서라도 어떻게든 빼 오겠습니다! 승냥이와 신 검사도 제거하면 됩니다!”
“제일 골치 아픈 건 그 수사관 두 놈이야. 내가 보기엔 당신이 먼저 잡혀가서 혼자 살겠다고 술술 불 것 같은데?”
“으악! 제, 제발 봐주세요!”
“지금이야.”
기계 뒤에서 뛰쳐나가자 덩치 큰 남자가 칼을 쥐고 최석동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멈춰! 검찰에서 나왔다!”
“뭐야? 그 두 놈이잖아?”
높은 목소리의 주인은 가운데 키 큰 남자였다. 그가 비릿하게 웃자 덩치가 한 발 물러났다.
“제가 다 설명할게요. 저 좀 데리고 가 줘요!”
“하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있어봐.”
대치가 길어졌다. 제일 바쁜 건 최석동이었다. 우리와 하 팀장을 번갈아 보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댔다. 놈들은 우리가 누군지 알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 신분은 알 필요 없고, 이것만 알아 둬. 우리도 당신들 같은 공무원이야. 그러니 방해 말고 꺼져.”
공무원? 그러고 보니 다들 머리가 짧고 깔끔하게 빗어 넘겼다. 별장 앞 손전등 아래 스친 얼굴 셋도 거기 있었다.
“공무원이건 공무원 할아버지건 사람 해치는 걸 두고 볼 순 없지. 변명은 경찰서 가서 하고. 신고한 지 얼마나 됐지?”
“도착하자마자 했으니까 10분쯤 됐습니다.”
신고 같은 건 안 했다. 거짓말은 장춘자 계장이 하고 나는 맞장구만 쳤다. 손발이 이렇게 맞는 걸 보면 나도 물이 많이 들었다.
“정말 해치려던 건 아니야. 살짝 겁만 주려 했다고.”
최석동을 넘기면 신 검사 사건의 마지막 고리가 끊어진다. 그리고 아무리 악인이라도 눈앞에서 칼 맞는 걸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경찰에 같이 가면 다 털려. 우린 신분을 숨길 이유가 없지만 그쪽은 아닌 것 같은데?”
하 팀장이 부하 하나를 불러 무언가 속삭였다. 이쪽도 하나 더 얹어야 했다.
“계장님,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신기탄입니다. 아! 그러니까 신 검사님이 의식을 찾으셨다는 거죠?”
귀에 댄 핸드폰 화면은 꺼져 있었다.
“뭐요? 검사님이 깨어났다고?”
최석동이 제일 먼저 튀어 올랐다.
“뭐, 어쩔 수 없군. 이 새끼 데려가. 다음에 또 보자고.”
하 팀장은 판단이 빨랐다. 승합차 엔진 소리가 멀어지자 최석동이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다.
“검사님이…… 정말 깨어나셨습니까?”
“아뇨. 아직요.”
최석동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장춘자 계장이 물었다.
“저놈들 국정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