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팀장의 차 트렁크 앞에 섰던 것까지는 기억한다. 목덜미에 따끔한 통증이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깨어났을 때는 어둡고 좁고, 사정없이 덜컹거리는 트렁크 안이었다. 팔다리가 따로따로 묶여 있었다. 발치 쪽에서 장춘자 계장 목소리가 들렸다.
“깼나?”
“계장님? 괜찮으세요?”
“승차감이 최악이라는 거만 빼면 괜찮은 편이야.”
“언제 들킨 걸까요?”
“처음부터. 내가 자기 뒤를 캔다는 게 놈 귀에 먼저 들어갔던 거야. 내가 놈을 너무 얕봤어.”
벚꽃룸에서 만난 여자의 인상을 설명하자, 장춘자 계장은 확실하진 않지만 그 여자도 그림자 조직이겠다고 했다.
“그럼 뭐라도 해 봐야죠. 이대로 있다간…….”
“괜히 힘 빼지 말고 기다려. 반드시 기회가 올 거야.”
손발이 묶인 채 트렁크에 갇혀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장춘자 계장에게 무슨 수가 있는 걸까, 희망을 붙잡아 보려는데 차가 멈췄다. 신호가 아니었다. 시동이 꺼졌다.
트렁크가 열렸다. 하 팀장이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운전 어땠나? 꽤 편안했지?”
“운전에 소질 있더군. 직업을 바꿔보는 건 어때?”
“크크. 허세는……. 이것들 끌어내려!”
정장 입은 사내들이 짐을 빼내듯 우리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텅 빈 넓은 창고였다. 까마득히 높은 천장 밑 창문마다 커튼이 드리워 대낮인데도 어둑했다. 더럽고 위험한 일을 처리할 때 쓰려고 마련해 둔 곳이겠구나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하 팀장이 무릎 꿇은 우리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검찰 수사관이면 검찰 수사관답게 놀았어야지. 범정이니 뭐니 설치고 다니니까 이 꼴이 나는 거야. 게다가 감찰까지 받는 양반이. 크크.”
하 팀장이 장춘자 계장의 뺨을 툭툭 쳤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묶인 손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울면서 빈다고 살려 줄 건 아니잖아?”
“하긴 그 말도 맞지. 너희 둘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거든. 뭐 해? 좋은 데 보내 드려.”
연장을 든 부하들이 우리 뒤로 바짝 붙어 섰다. 이번에야말로 끝이구나. 나는 눈을 꼭 감았다.
“포기하지 마.”
장춘자 계장이 작게 속삭였다. 그때였다.
쾅!
검은색 SUV 석 대가 창고 문을 뚫고 달려 들어왔다. 우르르 내린 남자들 가운데 몇을 나는 알아봤다. 한 사장의 부하들이었다.
“쳐!”
한 사장이 외치자 짙은 색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한 사장이 달려와 나이프로 우리 줄을 잘랐다.
“중간에 잠깐 놓쳐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기다리라던 게 이거였다. 전세는 금세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정작 하 팀장이 보이지 않았다.
탕! 천장을 향한 총성에 모두 얼어붙었다.
“움직이지 마! 너희는 무기 모두 버리고!”
한 사장 쪽 남자들이 하나둘 무기를 던졌다. 총은 장춘자 계장의 계산에 없던 변수였다. 말릴 새도 없이 한 사장이 하 팀장을 향해 돌진했다. 하 팀장이 총구를 돌리는 걸 본 순간 나도 튀어 나갔다. 한 사장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것 같았다.
탕!
한 사장이 휘청하는 찰나 나는 거리를 좁혔다. 총 든 손을 잡아 위로 들어 올리자 세 번째 총알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놈의 얼굴에 박치기를 날렸다.
퍽!
내 단단한 이마가 코를 뭉개는 소리와 비명이 뒤섞였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자 하 팀장은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고, 나는 그 손에서 총을 빼냈다.
돌아보니 장춘자 계장이 한 사장의 상체를 받쳐 안고 있었다. 한 사장의 배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안 돼! 한 사장 정신 차려!”
한 사장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쪽팔리게…….”
그러고는 정신을 잃었다.
*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하 팀장은 바닥에 없었다. 장춘자 계장과 내가 한 사장의 배를 누르던 몇 분 사이, 코피를 쏟으며 비상구로 빠져나간 뒤였다. 경찰은 남은 하 팀장 패거리와 한 사장 부하들을 함께 체포했다. 총까지 동원된 조직 간 패싸움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장춘자 계장이 보호자로 구급차에 올랐다.
마지막 경찰차까지 떠나고 나서야 창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긴 하루 같았는데 아직 오후였다. 나는 그동안 조폭인 한 사장에게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 매번 한달음에 달려와 도와줘도, 중요한 순간에는 배신할지 모른다는. 그런데 누구보다 의리를 지킨 건 그 사람이었다. 지긋지긋한 기억력은 그가 총에 맞는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틀었다.
택시를 타고 우리가 굴욕을 겪었던 일식집으로 돌아갔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빌린 차에 막 오르려 할 때였다.
“신기탄 수사관님. 다시 만나니 반갑네요. 안심해요. 혼자니까. 아까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전 평화주의자예요.”
벚꽃룸의 그 여자였다.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수석에 올라타더니 명함을 내밀었다.
오현미. 미래 커뮤니케이션 대표.
“실제로 전 정치 브로커예요. 금배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걸 달아 주는 일을 하죠. 그림자 조직이란 표현은 좋아하진 않지만, 거기서 전 일종의 인사부예요. 인재 채용과 스카우트. 그래서 말인데, 신기탄 씨를 정식으로 스카우트하고 싶어요.”
“당신은 날 죽이려 했어. 그런데 이제 와 스카우트라고?”
“하 팀장은 제가 뽑은 게 아니에요. 말만 많고 일 처리는 잘 못하는 부류, 전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그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더 스카우트하고 싶어졌죠. 어차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건 똑같은데요.”
그 상황. 이 여자는 창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
“뽑은 사람을 물은 게 아니야. 다치게 하지 말라던 당신 지시를 누가 뒤집었냐는 거지.”
“그건 제 윗선도 궁금해할 거예요.”
대답이 아니었다.
“아까 국가라고 했지. 당신이 말하는 국가는 도대체 뭐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범죄든 용납이 되는 그런 곳 말인가?”
“그런 희생 없이 유지되는 국가가 과연 있을까요? 저희와 손을 잡으면 원하는 건 뭐든 얻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 더는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요. 감찰실에 불려 다닐 일도 없고.”
오현미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읽을 수 없었다. 이 여자는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나는 날 믿어 준 이들을 배신하지 않아. 그러니 그냥 내려.”
“배신이라뇨. 어차피 수사관님 주위 분들도 다 저희와 손잡게 될 테니까요. 이미 손잡은 분도 있고. 장춘자 계장을 너무 믿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드리는 조언이에요.”
나는 명함을 찢어 버렸다.
“이미 머릿속에 저장했다는 거 알아요. 그럼.”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멀어졌다. 장춘자 계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사장은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자네는 괜찮아? 목소리가 영 가라앉아 있어서…….”
오현미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피곤해서 그래요. 한 사장도 걱정되고.”
“하긴. 나도 영 피곤하네. 어쨌든 죽을 뻔했으니.”
“의자에 좀 앉아 계세요.”
“그래야지. 조심해서 와.”
시동을 걸었지만 오현미가 남긴 한마디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장춘자 계장을 너무 믿지 마세요.”
*
한 사장은 목숨을 건졌지만 중환자실에서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그사이 장춘자 계장은 감찰부에 한 번 더 다녀왔다. 진정은 그대로 살아 있었고, 결론은 법사위 현안질의 뒤로 미뤄졌다. 그런데도 구 차장은 장춘자 계장을 불렀다.
“감찰받는 사람한테 이런 일 맡기는 게 영 모양이 빠지는데, 법사위 질문지 구해 올 사람이 장 계장밖에 없어.”
이번 현안질의에 불려 나가는 건 총장이었다. 의원들이 무엇을 물을지 미리 알아내 대장이 당황하지 않게 하는 것. 국회 일정이 잡히면 국가기관 정보 담당은 다 그거 하나에 목숨을 건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광화문 뒷골목 2층 카페에 정보관 여덟이 모였다. 범정 데스크 조희철이 부른 자리였다. 내 첫 보고서를 영양가가 하나도 없다고 했던 그 선임 사무관, 스스로 범정 2인자라 부르는 사람이었다. 서로 눈인사도 없이 띄엄띄엄 앉았다. 누가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는 묻지 않는 게 이 바닥 예의였다.
“다들 현안질의가 코앞인데 질문지 하나 구해 온 사람이 없어? 나 때는 국회 일정 잡히고 사흘이면 법사위 질문지가 바카라상 위에 쌓였어.”
조희철의 ‘나 때는’은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커피는 식었고, 맞은편 정보관 하나는 눈을 뜬 채 졸았다. 장춘자 계장은 창가 쪽 기둥 뒤, 입구에서는 안 보이고 카페 안은 다 보이는 자리에서 오렌지주스를 빨대로 젓고 있었다.
“장 계장은 감찰받느라 바쁘신가? 그래도 밥값은 해야지. 야당 질문만 구해 와. 여당 쪽은 우리 편이니 신경 쓸 필요 없고.”
장춘자 계장은 웃기만 했다. 모임이 끝나자 그는 나를 데리고 길 건너 국밥집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메모장에 질문 열다섯 개가 빼곡했다. 검찰 특활비, 압수수색 남발, 전관예우. 의원 이름까지 붙어 있었다.
“야당 법사위원 일곱 명 거야. 어젯밤에 정 보좌관한테 받았어.”
“그럼 아까 왜 말 안 하셨어요?”
장춘자 계장은 첫 번째 질문만 조희철에게 보내고 핸드폰을 엎어 놓았다.
“한 시간에 하나씩. 한꺼번에 주면 하나도 고마운 줄 몰라. 하나씩 주면 하나 줄 때마다 저쪽에서 누가 움직이는지 보이고.”
세 번째 질문이 나가자 조희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머지는 언제 오느냐는 소리가 수화기 밖까지 들렸다.
“지금 구하는 중이야. 여의도가 좀 막히네.”
전화를 끊은 장춘자 계장이 국밥 그릇을 밀어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조희철이 여당 쪽은 신경 쓰지 말래. 현안질의에서 우리를 제일 세게 칠 사람이 누구야?”
윤동우였다. 여당 법사위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