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나비효과

by최길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준철 검사는 창고에 있었다. 머리에 큰 상처를 입은 채 탈수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장춘자 계장이 119와 경찰을 불렀고, 승냥이는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까지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악을 썼다.


“자넨 괜찮아?”


“도끼에 발등 찍힐 뻔했습니다. 신 검사가 어떻게 된 건지 불면 자기가 죽는다나요.”


“그럼 둘 중 하나야. 누가 시켜서 데려왔거나, 남이 저지른 일을 통째로 뒤집어썼거나. 난 앞쪽이야. 저놈은 검사를 건드릴 배짱이 없어. 대신 거절 못 할 명령이면 했겠지. 그러니 하필 자기 별장 창고에 숨겼고.”


“명령한 건 박과실이겠고요. 그런데 왜 춘천 검사를…….”


“그걸 알려면 신 검사가 뭘 파고 있었는지부터 봐야지.”


수술은 길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나온 의사는 둔기에 맞은 자리가 치명적이었다고, 깨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식물인간이라는 말은 끝에 가서야 나왔다.


하루만 일찍 찾았더라면.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오후 뉴스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 화면만 보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갓난아이를 안은 그의 아내가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병원을 나왔다.


주차장 벤치에 최석동이 따라 나와 앉았다. 담배를 꺼냈다가 병원 마당이라는 걸 알고 도로 넣었다.


“제가 조금만 더 철저했으면 검사님을 일찍 찾았을 텐데요. 이틀을 꼬박 새웠는데.”


“자바카라하지 마세요. 승냥이는 아직 입을 안 엽니까?”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혹시 별장에서 검사님 수첩 같은 건 못 보셨죠? 늘 들고 다니시던 검은 수첩이 있거든요.”


“못 봤는데요. 수첩이 있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요.”


창고에는 신 검사 혼자 묶여 있었다. 핸드폰도 가방도 없었다. 최석동은 놈들이 버렸는지 숨겼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구두코가 바닥을 톡톡 쳤다.


“실종 전에 수사 얘기로 따로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까?”


“아! 실종 전날 그러셨어요. 이번 사건이 나비효과를 불러올 거라고.”


“이제 서울로 올라가십니까?”


“저희 할 일은 끝났으니까요.”


최석동은 우리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백미러 속의 손이 점점 작아졌다.


“아무도 수첩 얘기는 안 꺼냈는데 말이죠.”


“그러게.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하는 사람은 보통 그게 제일 궁금한 사람이야.”


“별장에 다시 가시려는 거죠? 놈들이 수첩이랑 핸드폰을 찾았으면 신 검사를 살려 두지 않았을 겁니다. 승냥이가 보험으로 빼돌렸다면 아직 별장 어딘가에 있을 거고요.”


“허허. 내 속을 훤히 읽는 걸 보니 이제 혼자 다녀도 되겠네. 정답. 그런데 하나 틀렸어. 가긴 가는데 우리끼리는 안 가.”


그는 별장 쪽이 아니라 춘천경찰서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폴리스라인 안에 우리 둘이 몰래 들어가서 뭘 찾으면 그건 증거가 아니라 장물이야. 변호사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지.”


*


신 검사 사건을 맡은 강력팀 사무실에는 담배 냄새와 컵라면 냄새가 엉겨 있었다. 벽 화이트보드에는 신 검사 사진과 승냥이 사진이 자석 하나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 대검에서 왔다는 말에 팀장의 눈썹부터 올라갔다.


“현장은 우리가 다 봤습니다. 대검에서 뭘 더 보시게요.”


“다 보셨으니까 한 번 더 보자는 겁니다. 못 찾은 건 늘 다 본 데 있거든요. 저희는 손 안 댑니다. 찾으면 그쪽 형사님이 찾은 걸로 하시고.”


팀장은 한참 장춘자 계장을 뜯어보다가 막내를 붙여 주었다. 말수 적은 고 형사였다. 허락을 기다리는 동안 장춘자 계장은 자판기 오렌지주스를 홀짝였다.


“공을 왜 넘기세요? 찾는 건 우린데.”


“공은 경찰 가지라고 해. 우리 이름은 현장 동행 칸에 있으면 돼.”


별장에 닿았을 때 호수 쪽 하늘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른 폴리스라인이 바람에 떨었다. 감식반이 한 번 뒤집어 놓은 거실에는 하얀 지문 가루가 손잡이마다 묻어 있었다.


“금고, 창고, 천장까지 다 봤습니다. 없었어요.”


장춘자 계장은 대답 대신 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또 시작이었다. 이 양반 일은 늘 턱 끝에서 내게로 떨어진다.


“이 친구가 한 번 본 건 안 잊어버려요. 낮에 봤던 것과 달라진 데를 찾게 해 보죠.”


나는 거실부터 2층까지 천천히 걸었다. 낮에 경찰을 기다리며 훑어본 방들이 한 장씩 겹쳐졌다. 틀린 그림 찾기. 어릴 때 이건 늘 내가 1등이었다. 2층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에 똑같은 옛날식 나무 옷걸이가 하나씩 서 있었다. 모양은 같은데 두 번째 방 것만 받침이 손가락 두 마디쯤 높았다. 누가 덧대지 않고서야 생길 수 없는 차이였다.


“이 옷걸이, 옆방 것보다 받침이 높습니다.”


받침 옆면에 튀어나온 나무 장식 하나가 유난히 손때로 검었다. 그 아래로 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틈이 네모나게 이어져 있었다.


“숨은 칸입니다.”


손이 먼저 나갔다. 장춘자 계장이 내 손목을 잡았다.


“열지 마. 여는 건 영장 들고 와서.”


고 형사가 틈을 사진으로 남기고 이음매에 봉인지를 붙였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팀장에게 영장 신청을 보고했다.


“내일 아침이면 나올 겁니다. 검사님 사건이라 지검도 빨리 움직일 거고요.”


*


고 형사가 돌아간 뒤에도 우리는 떠나지 않았다. 장춘자 계장은 별장이 내려다보이는 숲길 깊숙이 차를 넣고 블랙박스를 현관 쪽으로 돌려놓았다.


“영장 신청이 들어가면 춘천지검 누군가는 알게 돼. 검사실 몇 군데를 거칠 테니까. 봉인지는 종이 한 장이야. 그 종이 앞에서 누가 멈추는지 보자고.”


해가 지자 호수 쪽에서 찬 바람이 기어 올라왔다. 그가 뒷좌석에서 담요를 꺼내 내게 던지고 자기는 점퍼 깃을 세웠다. 나는 담요를 무릎에 덮고 병원 복도를 떠올렸다. 아기를 안은 팔이 계속 떨리던 그 여자.


“잠복은 원래 이렇게 춥습니까?”


“추운 건 참을 만해. 화장실 못 가는 게 문제지. 그래서 난 잠복 전날엔 수박을 안 먹어.”


밤 10시가 넘어 승합차 한 대와 검은색 소나타가 차례로 별장 앞에 섰다. 손전등 불빛 넷이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소나타 번호는 낮에 춘천지검 주차장에서 본 그대로였다.


“최석동이네요.”


장춘자 계장은 블랙박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승합차 번호판과 손전등 아래 스친 얼굴 셋을 차례로 새겨 두었다. 짧은 머리, 검은 점퍼,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20분쯤 지나 소나타 주인이 혼자 마당으로 나왔다. 장작더미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핸드폰을 귀에 댔다.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었다.


“네. 접니다. 최석동. 하아, 쉽지 않습니다. 2층 옷걸이에 경찰 봉인이 붙어 있어요. 내일 아침에 영장 친답니다. 지금 뜯으면 누가 뜯었는지 바로 나옵니다.”


한참 듣기만 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승냥이는 전혀 입을 안 열고요. 개처럼 설치고 다니던 그 두 놈은 이제 올라갔습니다. 그것들 귀찮게 못 하도록 손 좀 써주세요. 여차하면 승냥이를 제거해서라도 절대 새어나가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네? 신 검사요? 아마 못 깨어날 겁니다.”


나도 모르게 문손잡이를 잡았다. 장춘자 계장의 손이 내 손목 위에 얹혔다. 세게 누르지도 않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들. 숲속에서 담요를 덮고 있는 우리였다.


최석동은 담배를 비벼 끄고 들어갔다. 2층 창문에서 불빛 하나가 오래 머물렀다가 사라졌고, 승합차와 소나타가 차례로 떠났다.


“지금 들어가서 잡지 그러셨어요?”


“봉인지 하나 안 뜯은 놈들을 뭘로 잡아? 폴리스라인 넘은 걸로 벌금 몇 푼 내고 나오겠지. 그리고 쟤들 위가 누군지는 영영 모르고.”


그는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빼서 지갑에 넣었다. 원본은 자기 지갑이 제일 안전하다나. 그 지갑에서 영수증 뭉치가 쏟아지는 걸 여러 번 본 나로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


다음 날 아침 9시, 영장이 집행됐다. 현관에 들어서던 고 형사가 말했다.


“지검에서 최 계장님이 참여하시겠다고 새벽부터 전화했어요. 검사님이 경찰 사건이니 경찰끼리 하라고 하셨고요.”


장춘자 계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고 형사는 봉인지가 그대로인 것부터 찍고 나서 봉인을 뜯었다. 숨은 칸에서 비닐에 싼 서류 봉투가 나왔다. 검은 표지의 낡은 수첩 한 권, 엄지손톱만 한 USB 하나. USB 뒷면 견출지에는 신 검사의 작은 글씨로 ‘이훈석 폰, 녹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압수목록에 두 물건이 올라갔고, 우리는 현장 동행자란에 이름을 적었다.


장춘자 계장이 메모리카드 복사본을 건넸다.


“어젯밤 10시 12분부터 찍힌 거예요. 봉인지 앞에서 돌아선 사람들.”


몇 초 돌려 본 고 형사가 그제야 웃었다.


“이러면 우리 팀장님이 대검을 좋아하게 생겼네요. 사본은 오후에 드릴게요.”


오후에 수첩 복사본과 USB 복제본을 받았다. 신 검사의 글씨는 작고 반듯했다. 표지 안쪽에 아들 출생일, 첫 장 맨 위에 ‘이훈석 폭행교사’. 그 아래로 화살표와 이름이 장을 넘길 때마다 불어났다.


“이제 마음 놓고 읽어.”


장춘자 계장은 첫 장 대신 마지막 장부터 펼쳤다. 신 검사가 그린 관계도였다. 승냥이와 박도영 사이 화살표 위에 작은 글씨가 하나 있었다.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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