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움과 무계획 사이, 인도의 그리하 프라베시
열흘간의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눈 깜짝할 새 인도 시댁에 와 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쉴 여유도 없이 벵갈루루의 어딘가로 향했다. 남편의 사촌 여동생이 이사를 갔다며 모두를 불렀기 때문이다. 인도에 있다 보면 이렇게 초대라는 것을 참 많이도 받는다. 결혼식, 생일, 명절,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집들이까지.
벵갈루루 북부, 아직 사방이 공사판인 신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였다. 창밖으로는 골조만 올라간 건물들과 크레인이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어쩐지 그 풍경이 낯설지가 않았다. 한국의 신도시 입주 초기와 어찌나 닮았는지.
인도의 집들이는 어떤 모습일까? 손님을 불러 밥 한 끼 대접하고 휴지며 세제를 주고받는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정확히는 그리하 프라베시(Griha Pravesh)라 불리는 엄연한 힌두교 종교 의식이다. 새집에 처음 발을 들이기 전, 신을 모셔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성스러운 푸자(Puja). 오늘 나는 파티가 아니라 예배를 보러 온 셈이었다.
열 시에 시작한다는 말을 믿지 마세요
푸자는 열 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열 시는 결코 열 시가 아니다. 인도에는 'Indian Standard Time'이라는 표현이 있다. 예정된 시각이란 그저 참고사항일 뿐, 진짜 시작은 한두 시간쯤 뒤라는 것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모두'에서 우리만 쏙 빠져 있었다는 것. 인도를 떠나 산 지 오래된 남편은, 야속하게도 몸에 밴 습관대로 정확히 열 시 정각에 도착하고 말았다. 결과는? 텅 빈 집. 심지어 오늘의 주인공인 집주인 부부조차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 집들이에 자기가 제일 늦는 진귀한 광경이라니.
다행히 사촌 여동생의 시아버님과 펀딧(Pandit, 힌두교 사제)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둘 도착하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늦게 올걸. 정각에 도착해 놓고 민망해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고향에 와서 오히려 손님처럼 어색해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웃겼다.
바나나잎과 코코넛, 그리고 끓어 넘치는 우유
기다림 끝에 사람들이 모이고, 마침내 집주인 부부도 등장했다. 그런데 또 한 세월이다. 이번엔 전통 복식으로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리(Saree)라는 것이 몇 미터짜리 천을 몸에 감아 주름을 잡아가며 입는 옷인지라, 아무리 익숙한 사람이라도 각을 제대로 잡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금붙이 장신구를 두르고,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까지 마치고 나니 결국 푸자는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의식의 중심에는 커다란 바나나잎 세 장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앞에는 빨간 천으로 감싼 항아리에 코코넛을 얹은 칼라시(Kalash)가 놓였고, 주변으로는 금잔화 화환과 과일, 놋쇠 등잔 등이 빼곡히 늘어섰다. 하나하나가 번영과 상서로움을 비는 제물이다. 최신 모듈러 키친에 대리석으로 번쩍번쩍 마감한 집 안에서, 바닥에 바나나잎을 깔고 수천 년 된 의식을 치르는 풍경. 껍데기는 글로벌 도시의 아파트인데 알맹이는 고대 그대로인 이 기묘한 공존이야말로 요즘 인도 도시 중산층의 자화상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읊는 만트라는 물론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실 인도 사람들도 대부분 못 알아듣는다. 펀딧과 몇몇 어르신을 빼면 다들 그저 분위기를 따라갈 뿐이다. 뜻을 아는 것보다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부가 등불을 들고 오른발부터 집에 들이는 입장 의식. 그리하 프라베시, 즉 '집(그리하)에 들어감(프라베시)'이라는 이름 그 자체인 순간이다. 빛을 들여 어둠과 불운을 몰아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새 부엌에서 처음으로 우유를 끓이는 것. 우유가 부르르 끓어 넘치는 그 순간을 다 함께 지켜보는데, 넘쳐흐르는 것이 곧 풍요가 넘친다는 길한 징조란다. 그러니 일부러 넘칠 때까지 끓인다. 빈집이 비로소 '사람 사는 집'이 되는 과정을, 하루에 압축해 보여주는 셈이다.
아, 코코넛 이야기를 빼놓을 뻔했다. 의식에는 문 앞을 장식하던 코코넛을 깨뜨리는 순서가 있다. 덕분에 코코넛 물과 과육이 현관 사방으로 튀어 입구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지만, 놀랍게도 이 또한 길한 것이라고 한다. 흩뿌려진 코코넛 물이 곧 흩뿌려지는 풍요를 의미한다고.
결국 밥은 주차장에서 먹었습니다
이쯤 되니 슬슬 배가 고파 왔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인도의 법도가 등장한다. 집들이 푸자가 전부 끝나기 전까지는 그 집 부엌에서 밥을 지어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사람들은 배달로 주문한 도사와 이들리를 들고 밥 먹을 자리를 찾아 나섰다. 문제는 이 아파트가 실내 마감만 겨우 끝났을 뿐 외부는 여전히 공사 중이라 라운지도 정원도, 모두가 앉아서 밥 한 술 뜰 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온 가족이 상을 차린 최종 장소는 다름 아닌 주차장이었다. 모기와 먼지가 날아다니고, 한켠에는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고, 또 다른 한켠에서는 여전히 공사의 소음이 들려오는 공간의 한가운데. 금색 테이블보만은 그럴듯하게 깔아 둔 그 주차장에서, 도시락 트레이에 담긴 남인도식 아침을 먹었다.
남편의 집안은 비하르 출신이고 집주인 쪽은 바라나시가 고향인, 모두가 뼛속까지 북인도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남인도 도시 벵갈루루에서 남인도 음식인 도사와 이들리를 시켜 먹는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요즘 인도 대도시에서는 음식에 남북의 경계가 없다. 쌀과 렌틸을 발효시켜 만든 도사와 이들리는 기름기가 적고 소화가 잘 되는 데다 채식이라, 지역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전국구 아침 메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대체, 지금,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요
배를 채우고 나니 두 번째 푸자가 있을 거란다. 그렇다. 인도의 의식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메인 푸자가 끝나면 또 다른 신을 위한 푸자가, 그것이 끝나면 불의 제사가 이어진다. 각 세션 사이에는 준비하느라 또 텀이 뜬다. 인도에서 결혼식까지 치러 본 나로서는 익히 아는 그 무한 루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그 감각.
여기서부터 나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압권은 따로 있었다. 푸자 하루 전부터 몸을 정결히 하기 위해 단식을 한 탓에 기운이 없다며, 정작 오늘의 주인공인 집의 안주인이 방으로 들어가 쉬어버린 것이다. 손님들을 거실에 그대로 둔 채로 말이다.
'아니, 자기 집들이에 손님을 두고 자러 간다고?' 싶지만, 인도의 대가족 문화에서는 그리 큰 결례가 아니다. 손님도 그저 한 식구이니 알아서 편히 있으라는 것이다. 서로 격식을 차리지 않는 그 무던함. 실제로 방치된(?) 손님들 누구도 화를 내지 않고 그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다들 이 느긋한 리듬에 익숙하다는 증거다. 다만 그 리듬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 하나만이 속으로 '지금 대체 뭘 기다리는 거지, 이건 언제 끝나는 거지' 하며 아득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의 백미를 목격했다. 의식을 주관하던 펀딧마저 지쳐버린 것이다. "그냥 빨리 하고 끝냅시다."라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제라니. 하기야 펀딧들은 하루에 여러 집을 도는 경우가 많으니, 한 집이 이렇게 늘어지면 다음 일정이 줄줄이 밀려 속이 탈 만도 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집주인 쪽에서도 미안했는지, 커피며 간식이며 먹을 것을 자꾸만 시켜다 안겼다. "의식은 늦어져도 손님 배는 곯게 할 수 없다"는, 지극히 인도다운 접대의 정신이다.
우리는 결국 두 번째 푸자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중간에 자리를 떴다. 사실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고, 점심 약속이 있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양해를 구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도착해 오후 한 시가 되도록 푸자 하나가 겨우 끝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도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내가 먼저 가자고 총대를 멘 것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 왈. "아니, 나도 됐어. 충분해." 인도 출신인 그조차도 오랜만에 마주한 이 무계획과 늘어짐에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나중에 단체 채팅방을 확인해 보니 집들이 행사가 마무리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세상에.
성스럽고, 흥미롭고, 정겹다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구석이 공존하는 나라. 그것이 내가 아는 인도다. 오랜만에 만난 시댁 친척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스 코리아냐, 사우스 코리아냐"를 물으며 짓궂게 웃었고, 나는 이제 "남편이랑 결혼하려고 북한을 탈출했다"고 능청스럽게 받아친다. 이 정도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나도 어지간히 이 나라에 물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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