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표정을 연기할 순 없다
최근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카페를 가던 중이었다. 찻길 옆엔 주민들이 산바카라할 수 있는 데크길이 있었는데, 4~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데크길 출구로 나오고 있었다. 속도를 아무리 줄여도 차가 가까이 오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구로 나오더니, 그대로 내 차와 데크길 사이의 좁은 공간을 비집고 우리를 지나쳐 걸어갔다.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굳이 출구로 나오지 않더라도 데크길을 따라 걸었다면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훨씬 안전하게 갈 수 있을 터였다. 차 옆을 지나쳐 가는 그분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관상을 믿는다기보단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그 사람의 인상에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아무리 다정한 말을 해도, 챙겨주려는 모습을 보여도 유독 정감이 가지 않는 인상을 가진 이들이 종종 있다.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저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만남의 첫 순간부터 드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런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열에 일곱 정도는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부류에 속했다.
단지 얼굴만으로 어떻게 상대가 살아온 삶에 대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습관의 영향'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다리를 꼬고 앉으면 몸이 불균형해지는 것처럼 얼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미간이나 이마에 잡힌 굵은 주름, 내려간 입꼬리는 설령 상대가 별 생각이 없어도 '오늘 기분이 안 좋은 건가'라는 생각을 쉽게 하게 만든다. 예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불만인 듯 부루퉁한 입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을 치켜뜨고 상대를 흘겨보는 듯한 모습. 사소해 보이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겐 얼굴에서도 겹치는 특징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들은 다르다. 얼굴에서 특유의 표독스러움이나 냉철함이 아닌, 따뜻하고 밝은 느낌이 난다. 웃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억지로 웃는 게 아닌, 정말로 즐거워서 웃고 있기에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만약 당신이 구독자 76만 명인 유튜브 채널 '가요이 키우기'에 등장하는 가요이라는 분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처음 듣는다면 시간 날 때 채널의 영상 중 하나만 보더라도, '왜 우리는 밝은 사람에게 끌리는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글을 적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자신이 밝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혹여나 살아온 삶에 대해 자바카라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사실 후회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니까.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그때부터라도 고치려고 하면 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려보면, 잠깐의 후회 정도는 귀여운 애교 수준이다. 과거의 선택들을 붙잡고 애도하는 시간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힘들어지는 건 결국 나뿐이다. 여전히 힘들지만 힘들었던 시간들을 웃으며 놓아줄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