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가장 사적인 시간을 위한 물건, 매화틀
(아래의 글은 9.11일자 게시물을 온라인카지노북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이미 읽으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왕은 하루 종일 왕좌에 앉아 있었을까? 역사바카라 속 임금은 대개 근엄하다.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나라의 큰일을 결정하고, 때로는 전쟁과 인사 문제까지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왕을 현실의 인간이라기보다 특별한 존재처럼 바라볼 때가 많다. 하지만 왕도 밥을 먹었고, 잠을 잤으며,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똥도 눴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조선의 임금은 도대체 어디에서 볼일을 봤을까?
궁궐에 화장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이 볼일을 볼 때마다 궁궐의 화장실을 찾아 걸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상하다. 왕이 움직이면 시중드는 사람들이 따라붙어야 했고, 궁궐 안에서도 왕의 움직임에는 여러 절차와 질서가 따랐을 것이다. 그래서 왕이 머무는 가까운 곳에서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 있었다. 이름부터 묘하다. 매화틀이다.
매화틀은 지금의 이동식 변기와 비슷하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실제 왕실에서 사용한 매화틀이 남아 있다. 나무로 만든 좌대 가운데에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에 배설물을 받아낼 용기를 놓도록 되어 있다.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되어 있다. 화려한 왕실의 물건들을 떠올리다가 이런 물건을 만나면 조금 당황스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매우 실용적이다. 왕에게도 볼일을 볼 장소와 도구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이름이 매화틀일까? 이름만 들으면 매화를 감상하는 데 사용하는 물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에는 궁중의 완곡한 표현이 숨어 있다. 궁중에서는 대변을 ‘매(梅)’, 소변을 ‘우(雨)’라고 부르는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우틀’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민간에서 ‘매화틀’로 불렸다는 설명이 전해진다. 대변과 소변이라는 말을 직접 말하는 대신 조금 점잖게 돌려 표현한 셈이다.
여기까지 알아보면 또 하나 궁금해진다. 왕이 매화틀에서 볼일을 본 다음에는 어떻게 했을까? 인터넷이나 여러 글을 찾아보면 궁녀나 나인이 왕의 용변을 처리했다는 이야기, 의관이 왕의 대변을 살펴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는 이야기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왕의 몸에서 나온 것이니 왕의 건강을 살피는 데 중요한 정보였을 것이라는 설명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듣고 있으면 꽤 그럴듯하다. 그런데 역사 이야기를 쓸 때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 번 멈출 필요가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와 사료로 확인되는 사실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왕의 건강과 일상에 관한 기록을 상당히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승정원일기》는 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이 작성한 기록으로, 왕의 행동과 건강 상태, 신하들과 나눈 대화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런데 이번에 확인한 기록에서는 왕이 매화틀에서 실제로 용변을 보았다는 구체적인 장면이나, 누가 왕의 용변을 처리했는지, 의관이 그것을 살펴 건강을 진단했다는 내용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매화틀의 존재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실제 유물이 남아 있고 왕실에서 사용한 이동식 용변기라는 설명도 확인된다. 다만 매화틀이라는 물건의 존재와 그것을 둘러싼 세부적인 이야기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매화틀은 확인되는 사실이지만, 그 위에서 왕이 어떤 방식으로 볼일을 보았고 누가 뒤처리를 했는지까지 모두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상상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 빈틈이 재미있다. 우리는 역사 속 왕을 대부분 왕좌 위에서 만난다. 왕관을 쓰고 신하들을 내려다보거나, 전쟁을 지휘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매화틀이라는 작은 물건을 보고 있으면 그런 왕의 모습이 조금 달라진다. 왕도 화장실이 필요했다. 왕도 배가 아팠을 것이고, 급하게 볼일을 봐야 하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왕이라도 인간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오랜 기간 경복궁에서 화장실 유적이 발굴되지 않았다. 왕과 왕비는 매화틀을 이용했지만 나머지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용변을 봤을까? 1991년부터 대대적인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경복궁에서는 2021년에서야 드디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https://www.yna.co.kr/view/AKR20210708129700005?input=copy)
그래서 매화틀은 단순한 옛날 변기가 아니다. 왕이라는 특별한 존재와 인간이라는 평범한 존재가 만나는 물건이다. 왕은 나라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배설이라는 가장 사적인 생리 현상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왕의 생활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거대한 역사 뒤에 숨어 있던 한 인간의 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바카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똥을 더럽고 사소한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바카라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똥을 눈다. 왕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똥을 어디에서 누었는지, 그것을 누가 치웠는지, 똥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조선의 임금이 어디에서 볼일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먼저 작은 나무 변기 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 궁궐의 화려한 건물도 아니고 왕좌도 아니다. 왕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용했던 작은 물건, 매화틀이다.
왕도 볼일을 봐야 했다. 그리고 그 당연한 사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가 역사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