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똥을 싼다. 왕도 그랬고, 농부도 그랬으며, 이름을 남긴 위대한 인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먹고 마시고 배설한다. 너무 당연해서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적어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똥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똥은 한 번도 그렇게 간단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똥은 곧 문제가 되었다. 어디에서 볼일을 볼 것인가, 누가 치울 것인가, 치운 똥은 어디로 가져갈 것인가를 해결해야 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문제가 있었다. 똥은 골칫거리이면서 동시에 농사를 살리는 거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똥을 모았고, 썩혔고, 밭으로 가져갔다. 어떤 곳에서는 똥이 사고파는 물건이 되기도 했다.
화장실의 모습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어떤 곳에서는 집 밖에 뒷간을 만들었고, 어떤 곳에서는 요강을 방 안에 두었다. 제주에서는 돼지우리와 화장실을 결합한 통시가 등장했고, 중국에서는 사람이 사용하는 화장실 아래에 돼지를 기르는 구조까지 만들어졌다. 백제의 왕궁리 유적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화장실의 흔적과 함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식을 짐작하게 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똥은 생활의 흔적만 남긴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똥과 오줌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화장실에는 측신이 산다고 믿었고, 갑자기 화장실에 들어가면 신의 노여움을 살까 봐 헛기침을 하기도 했다. 제주 설문대할망 이야기에서는 거대한 여신의 똥이 오름이 되고 오줌이 섬의 모습을 바꾸기도 한다. 가장 더럽다고 여기는 것이 오히려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똥은 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매일 남의 똥을 치워야 했고, 누군가는 그 똥을 돈을 주고 사서 농사를 지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똥을 치우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이 되었지만,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의 삶은 좀처럼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가 깨끗한 도시를 이야기할 때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똥은 어느 순간 정치와 슬롯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1966년 김두한의 국회 오물투척 사건에서는 똥과 오물이 정치적 항의의 상징이 되었다.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는 노동자들이 똥물을 뒤집어쓴 사건도 있었다. 같은 똥과 오물이 어떤 때는 자원이 되고, 어떤 때는 모욕이 되고, 또 어떤 때는 저항의 무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똥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옛날 화장실 이야기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살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무엇을 버리며, 그 버려진 것을 누가 처리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생활의 역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하는 ‘쓰레기’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 달랐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똥을 몸에서 나오자마자 없애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농업슬롯에서 똥은 농사를 위한 자원이었다. 사람의 배설물과 가축의 분뇨를 모아 발효시키고 밭으로 가져가는 일은 농사를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일이었다.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거름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 도시가 커지고 위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똥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을 이용해 하수도로 흘려보내는 현대식 화장실은 우리에게 놀라운 편리함을 가져왔다. 이제 우리는 변기의 물을 내리는 순간 똥과 작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사라진 것일까.
똥은 하수구 어딘가로 흘러갔고, 하수처리장에서 다시 처리된다.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그것을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똥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얻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버려진 줄 알았던 것이 다시 자원이 되는 것이다.
돌고 돌아온 셈이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둘러싼 역사인지도 모른다. 더러운 것으로 볼 것인가, 두려운 것으로 볼 것인가, 돈이 되는 것으로 볼 것인가, 농사를 살리는 거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없애야 할 쓰레기로 볼 것인가. 시대와 슬롯에 따라 답은 달랐다.
그래서 이 바카라에서는 똥 자체보다 똥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려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왜 기침을 했는지, 제주 사람들은 왜 돼지와 화장실을 한 공간에 두었는지, 백제 사람들은 어디에서 볼일을 보았는지, 중국과 일본에서는 똥이 어떻게 거래되었는지, 박제가는 왜 거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사람들은 화장지가 없던 시절 무엇으로 뒤를 닦았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똥이 정치적 저항의 도구가 되었는지를 하나씩 따라가 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우스워 보였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똥을 따라갔을 뿐인데 농업의 역사가 보이고, 도시의 역사가 보이고, 노동의 역사가 보이고, 신앙과 정치의 역사가 보인다. 역사는 언제나 궁전과 전쟁터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먹고 자고 일하고 사랑하고 병들고 죽었던 일상의 공간에서도 역사는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일상의 한가운데에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아주 평범한 것이 있었다.
똥이다.
우리가 매일 화장실에서 뒤로 보내는 그것을 역사에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싼 똥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