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을 비운 사람들

by크눌프

요강은 밤을 편하게 만들어 준 물건이었다. 뒷간이 집 밖에 있던 시절,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마당을 지나 화장실까지 가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특히 겨울밤에는 요강의 존재가 고마웠을 것이다. 방 한쪽에 작은 그릇을 놓아두고 필요할 때 사용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강에는 한 가지 문제가 따라다녔다. 아침이 되면 누군가는 그것을 비워야 했다.


요강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이 일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밤에 요강을 사용하고 다시 잠들면 그만이지만, 아침에는 누군가가 요강을 들고 일어나야 한다. 내용물을 적당한 곳에 처리하고, 요강을 씻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오늘날에는 변기에 물을 내리면 배설물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강을 사용하던 시대에는 배설물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직접 치워야 했다.


그렇다면 그 일을 누가 했을까. 모든 집에서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가족이 직접 처리하는 집도 있었을 것이고, 집안일을 맡은 사람이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양반가처럼 집안에 노비나 하인이 있었던 곳에서는 청소와 물 긷기, 빨래와 부엌일처럼 여러 가지 일상적인 허드렛일이 이들의 노동으로 이루어졌다. 요강을 비우는 일 역시 이런 생활 노동과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기에서 함부로 “조선시대에는 노비가 요강을 비웠다”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집안의 규모와 신분, 지역과 시대에 따라 실제 모습은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누가 요강을 비웠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궁궐이라고 해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왕도 용변을 보았고 왕비도 마찬가지였다. 궁궐에는 수많은 사람이 생활했으니 그만큼 많은 배설물도 생겼을 것이다. 왕실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음식과 의복뿐 아니라 청소와 오물 처리도 필요했다. 다만 왕이 사용한 요강을 정확히 누가 비웠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없다. 왕의 식사나 의례는 꼼꼼하게 기록하면서도, 그 뒤에서 누군가가 요강을 치운 일은 굳이 기록할 만한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요강이 재미있는 역사 자료가 된다. 요강은 분명 남아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고 치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도자기나 놋쇠로 만든 요강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그 요강을 매일 씻고 비웠던 사람의 이름은 알기 어렵다. 역사에는 이런 일이 많다. 당시에는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 기록하지 않았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우리가 가장 알기 어려운 역사가 된다. 사람들은 요강을 사용했지만, 요강을 비운 사람들은 역사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요강 하나의 이야기가 집 밖으로 나가면 문제가 훨씬 커진다. 한 집에서 나오는 분뇨는 그 집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분뇨가 생긴다. 서울처럼 인구가 밀집한 곳에서는 집집마다 나온 오물과 분뇨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모으고, 누군가는 옮겨야 했다. 요강을 비우는 작은 일이 도시 전체의 분뇨 처리 문제로 커지는 순간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앞서 살펴본 ‘똥장수’와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사람들의 집이나 화장실에서 나온 분뇨를 수거하고 운반하는 일을 했다. 분뇨는 농사에 이용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옮기는 일도 생겼다. 우리가 앞에서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한 역사를 따로 살펴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에는 거름으로서의 가치보다 그 분뇨가 사람들의 집에서 빠져나와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까지 누가 그 일을 담당했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생각해보면 요강은 참 이상한 물건이다. 한 사람에게는 편리함을 주지만, 그 편리함은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방 안에 요강이 있다는 것은 그 집에 화장실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아침마다 그것을 처리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 노동도 커진다. 한 집의 요강을 비우는 일에서 시작해 여러 집의 분뇨를 수거하고 운반하는 일로 발전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 과정을 거의 보지 못한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면 눈앞에서는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실제로 배설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수관을 따라 이동하고, 처리시설을 거치며, 그 과정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다. 달라진 것은 우리가 그 노동을 직접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요강을 들고 나가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과정이 건물과 관과 시설 뒤에 숨어 있다.


그래서 요강을 보면 사용자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가 그 요강을 만들었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것을 씻고 비우고 옮겼는지도 중요하다.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역사만 따라가다 보면 요강은 그저 옛날 사람들이 사용했던 작은 변기로 끝난다. 그러나 그 요강을 둘러싼 노동까지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요강은 한 사람의 사적인 용변을 다른 사람의 노동과 연결했던 생활용품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요강은 생활사를 공부하기에 좋은 물건인지도 모른다. 왕의 요강이든 평범한 사람의 요강이든, 결국 누군가는 그것을 비워야 했다. 누군가는 그 일을 집안일의 일부로 했고, 누군가는 도시의 분뇨를 처리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았다. 기록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공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매일 화장실을 사용하고, 누군가는 우리가 배출한 것을 처리한다. 다만 이제는 요강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볼 일이 없을 뿐이다. 요강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진 것은 배설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요강은 왜 사라졌을까. 단순히 더 좋은 변기가 나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과 도시의 모습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요강이 방 한구석에서 자취를 감추고,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된 과정을 따라가면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집 안의 화장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보인다.


이제 요강 이야기의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요강은 대체 언제, 어떻게 우리 생활에서 사라졌을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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