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바카라 내기 쉽나?

가제본 받고 표지를 바꿨다

by대낮

인터뷰집 끝나간다.

주변에 이 말을 한 지 한 달쯤 되는 것 같다. 어제 인쇄소에 전화하면서 내가 일주일 전에 통화했었다는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벌써 또 일주일이 지난 걸까. 하루도 일주일도 빨리 간다. 아무튼 이젠 더는 엎치락뒤치락 안 하고 낼 생각이다. 대체 뭘 그렇게 고민하고 살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다른 일과 병행하면서 밀린 것도 있지만, 작업 기간이 계속 길어지니 조급증이 생겼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급했다. 내 글을 바카라으로 내는 게 처음이라 몰랐다. 일감이 내 원고일 때 얼마나 어수선하고 잡생각이 많아지는지. 쓰고 퇴고한 원고를 작가들에게 확인했다. 보내기 전에 읽고 보냈다. 피드백을 받고 나면 말은 안 해도 거슬리는 게 있지는 않았을까 싶어 다시 읽었다. 조판하고 디자인하면서, 소제목을 올리면서도 글이 눈에 들어왔다. 교정지로 뽑아서도 봤다. 그리고 최종 교정을 봐야 하는데, 지쳐버렸다. 내 글 보기 싫어서. 진짜 이게 힘들구나. 교정 일 하면서 여러 번 읽는 데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줄 알았다. 힘들어도 날짜 지나면 해내겠거니 했다. 예상과 달리 더 힘들었다. 그렇게 봤는데 또 거슬리는 게 나오고 틀린 게 나오니 지쳐버렸다. 진짜 많이 보고 보낸 건데도 교정 사항이 많다고 말하는 작가들을 반만 믿었는데, 이제는 반의 반을 더해 75% 정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어제 가제본을 찾았다. 받는 순간 표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밝고 희멀겋게 나왔다. 아니 잘못 나온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디자인을 했다. 가제본 맡길 정도로 완성이 아닌 줄 알면서도 바카라으로 뽑아 점검도 하고 표지 색깔도 확인할 겸 출력했다. 부족한 바카라을 보면 조급증이 가라앉고 정신 차리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가제본을 들고 윤준가 작가와 카페에서 편집회의를 했다. 역시나 경력 많은 편집자 눈은 못 속이지. 윤준가 작가님은 나랑 얘기하면서 바카라을 봤는데도 여기, 여기 하며 틀린 곳을 찾아냈다. 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다 체크해 주세요. 일감으로 온 교정지라면 디자인 오류도 내가 찾는데, 내가 조판한 바카라의 티끌은 잘 보지 못했다. 작가가 글을 쓰고 편집자가 다듬고 디자이너가 디자인하고 편집자가 확인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면? 정신 사납고 자신이 없다.

어젯밤에 표지를 다시 만들었다. 몇 번째 수정인지 셀 수도 없다. 내가 나에게 이렇게 악덕한 의뢰인일 줄은 몰랐다. 그보다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 아는 줄 알았는데 부딪혀 보니 모르는 게 많았다. 원고 밖의 일은 소문으로만 들었다. 윤준가 작가님 꽤나 귀찮게 했다. 전부터 알던 사이라곤 해도 이 바카라에 인터뷰를 해준 작가님인데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다 보게 하고 도움까지 요청하니 면목이 없다. 아무래도 오래 알고 지내며 은혜를 갚아야겠다.

어제 자려고 누워, 가제본 뽑은 인쇄소에 바카라을 맡기지 말아야겠다고 결정했다.

집 근처에 규모가 좀 있는 디지털 인쇄소가 있었다. 어, 여기다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오래전에 한 번 가본 적도 있는 곳이었다. 가까우니 바카라을 전체 출력하기 전에 이것저것 샘플을 뽑아보기는 편하겠지 싶었다. 최종 출력물은 직접 싣고 올 수도 있었다. 최소 수량만 인쇄할 거라 집이 창고가 될 예정이니까. 견적을 받아보니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예상 작업 기간도 빨랐다. 가제본을 받아보고 인쇄와 제본 품질이 괜찮다면 여기서 해야지.

그런데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는 것과 별개로 바카라을 받을 때 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밝은 색에 코팅도 없는 바카라을 봉투도 비닐도 없이 그냥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이건, 바로 들고 가면 되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그런데 차에 타서 확인해 보니 한 권 표지에 황색 박스테이프 조각이 붙어 있었다. 예민하게 굴지 말자 하며 살살 떼냈다. 그런데 바카라을 펼쳐보니 너무 환하다. 백색모조지였다. 보낸 메일을 확인하니 내가 의뢰서에 그냥 모조지라고만 적었다. 그럼 백색인지 미색인지 물어봐 주셨다면 좋았을 걸. 하지만 이건 내 잘못도 있으니 넘어갔다. 윤준가 작가님과 바카라을 확인하는데 내지에 옅은 검댕 얼룩이 묻어 있었다. 인쇄소에서 작업하며 묻힌 것 같았다. 그 순간 여기에 맡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확실한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영수증을 보니 표지에 내가 말한 종이(아르떼 230g)를 쓰지 않고 비슷한 다른 종이(랑데뷰 240g)를 사용했다는 내역이 있었다. 말도 없이 바꾸다니.

인쇄는 처음부터 추천받은 곳이 있었는데, 이렇게 괜한 과정을 겪었다. 그곳에 다시 바뀐 디자인으로 주문을 했다. 표지만 출력해서 색을 보고 고를 생각이다. 달 바뀌기 전에 내고 싶었는데 결국 연휴를 맞았다. 이제 차분히 가제본에 있는 내용을 다시 읽어보며 최종교를 볼 생각이다. 연휴 끝나고 인쇄소 사정에 따라 나올 듯.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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