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카라은 천천히 거니는 일이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는 출퇴근과 달리 나에게 산바카라이란 때로는 정해진 길을 잠시 벗어나 보는 일, 생각하지 못한 풍경을 마주하는 설렘, 목적이 이끌지 않는 자유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몰두하는 삶에 몰아넣은 스스로의 정신이 원래 누렸어야 할 자유로움을 채워주는 사뭇 호사스러운 시간이 산바카라이다. 지금처럼 한낮 더위가 한창인 계절이 오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시간에 잠시 누릴 수 있는 산바카라은 더 소중해진다.
살아가는 모습 모두 제각각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나에게 있어서 일상이라는 시간은 무척 단순하고 예측할 수 있는 과정이다. 오전 7시면 밤사이 잠들어 있던 몸을 깨워 일으켜 세운다.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급히 마치고는 출근길 버스에 오른다. 어떤 날은 길이 좋아서, 다른 날이 그렇지 않아서 도착 시각은 매번 다르지만, 일터에 도착해서는 하루 동안 주어진 과제를 해결해간다. 점심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8시간을 한 자리에서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며 지낸다.
하루 8시간이라니!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반려동물을 5시간 이상 동물 우리나 발코니에가 가둬두거나 묶어 두는 것은 불법이라는 기사를 읽은 일이 있는데 그만 실소를 하고 말았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반려동물도 5시간 이상 갇혀 있지 않을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비록 족쇄나 목줄은 없다 해도 주5일 동안 매일 8시간을 한 공간에서 맡은 바 임무를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업무상 오는 연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착용하기 시작한 스마트워치에서 매시간 잠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일어서서 걸으라고 재촉해주기 시작했는데, 그 안내에 따라서 잠시 일어서서 건물 안을 걷는 짧은 산바카라으로 조용한 탈출을 작은 행복으로 감행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산바카라이란 이처럼 소소한 일상의 반란, 나만의 모험, 때로는 마음속 무거운 짐 내려놓기를 연습하는 시간이 되곤 했는데, 오늘 전하고 싶은 산바카라은 이와는 결이 조금 다른 산바카라에 관한 것이다. 혼자만의 여유를 벗 삼은 것과는 또 다른 치유의 시간에 관한 기록이다.
도시농업공동체로 알려진 혜윰뜰에는 여러 얼굴이 있는데 그중에는 독서모임이 있다. 도시농업공동체 시작의 뿌리가 되어 준 작은도서관에서 시작된 모임인데, 서로 의무감으로 어렵게 구속하지 말자는 의미로 모임 이름을 ‘느슨하고 희한한 바카라수다’라고 정하고 있다. 독서모임 회원 중에는 도시농부 활동을 함께 하는 이웃도 있어서 오가는 길에 텃밭에서 인사 나누기도 하지만, 혜윰뜰 독서모임은 텃밭 활동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진 소중한 만남이다.
얼마 전에는 혜윰뜰 바카라수다 모임의 이른 아침 산바카라이 있었다. 어느 누군가의 제안으로 시작된 아침 산바카라 제안은 그동안 함께 할 기회를 좀처럼 찾기 어려웠던 모두에게 소리 없이 쌓여온 그리움을 씻어낼 시간이 돼 줄 것 같았다. 아침 산바카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그중에 한 가지 표현을 빌려본다면 ‘보물 찾은 기분이 드는 힐링의 시간’이 될 것 같았다.
함께 하는 산바카라은 혼자 유유자적하게 걷는 산바카라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산바카라에서 ‘바카라’이라는 글자는 우리말로 하자면 지팡이를 의미하는데 짧은 상식에 기대어 상상해본다면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형상화한 표현인 듯하다. 나에게 산바카라이라는 말의 의미는 휴식과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홀로 걷는 시간을 의미했는데, 이날 혜윰뜰 바카라수다의 산바카라은 사뭇 달랐다. 혼자 하는 산바카라은 길을 나서는 순간이 되어서야 산바카라이 시작된다. 첫걸음 이후 다음 걸음을 세어보면서 오로지 내 안으로 집중하는 시간이 혼자만의 산바카라이라면, 함께 하는 산바카라은 걷기 시작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바카라수다의 산바카라은 그랬다.
다음날 산바카라을 각자 준비하며, 서로에게 부탁하거나 바라지 않았음에도 선물 같은 배려가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산바카라 뒤 허기를 달랠 수 있는 김밥을 준비하고, 다른 이웃은 아침 시간 어울릴 법한 커피를 챙기기로 했다. 음식 재주 없다는 한 이웃은 삶은 달걀을 챙겨오겠다는 말로 포근함을 더했다. 혼자 하는 산바카라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떼는 첫걸음부터 시작이라면, 함께 하는 산바카라은 배려와 나눔이 더해져 서로에게 의지하여 첫걸음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느껴졌다.
나는 이날 이웃과 소중한 산바카라을 함께 하지 못했다.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지만, 서로를 이해로 감싸주는 이웃임을 알기에 크게 변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른 아침의 산바카라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던 차에 함께 하는 단톡방에 몇 장의 사진과 짧은 영상이 날아들었다. 그 속에는 함께 하지 못한 이웃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금씩 나누어 준비해온 아침상은 서로 상의가 없었음에도 완벽한 아침 식탁이 되었다.
비록 이날 함께하지 못했음에도 전해지는 것이 있었다. 완벽한 산바카라 식탁 사진과 함께 전해진 바카라수다 회원 햇살 님의 산중 산바카라 시 낭송은 아침을 깨우는 산새 소리와 어우러져 듣는 이를 한걸음에 산바카라의 동행으로 삼아주었다. 조금은 차가운 아침 바람을 두 뺨에 맞으며 걷는 상쾌함, 머리 위 나뭇잎 사이로 살짝 비추며 얼굴을 간지럽히는 햇살도 없어서 함께 걷고 있는 이웃들이 담아가고 있을 현장감이 주는 치유의 만족감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겠지만, 그런 것이 없는 중에서도 전해지는 마음들이 있었다. 적어도 회원 시 낭송 시간 동안에 나는 그곳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낭송 속에 들려오는 산새 소리에 묻어 있는 이웃의 배려가 참 감사했다.
산바카라은 분명 건강에 좋다. 의학적인 조언을 참고한다면 면역력 향상을 위한 비타민 D 합성을 위해서도 햇살과 함께 하는 산바카라은 유익하다. 물론 우리는 면역을 위한 햇살 받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기에 따로 영양제를 챙겨 먹지만, 산바카라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산바카라은 치유이자 회복이고 때로는 성찰이자, 일상에서 쌓아온 크고 작은 이루지 못한 소망의 잔해를 정돈하여 나를 새롭게 해주는 일이다.
도시농업공동체 혜윰뜰과 독서모임 바카라수다,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모임은 나에게 있어서는 소망에 대한 해답 같은 곳이 되어 주었다. 나는 이날 아침을 함께 하지 못하였음에도 아침 산바카라의 동행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시 생활에서 배려할 수 있고 나눔 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사소한 행복에 감사한 하루였다. 혜윰뜰 텃밭과 독서모임 바카라수다는 마을에서 사람같이 살고 싶다는 내 희망에 대한 응답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