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담는 마음

by이해의 등대

중학생 시절 어머니의 상차림을 돕던 나에게 어머니는 늘 밥은 두 번 나누어서 담아주기를 부탁하셨다. 한 번에 담으면 정이 없다는 이유였다. 호기심이 넘치던 시절이라 나는 그 이유를 묻곤 했는데, 내 질문에 어머니는 말 없는 미소로 답하실 뿐이었다. 아마도 쉬운 답을 알려주기보다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매번 상차림을 할 때마다 밥그릇에 밥을 담으며 관찰했다. 두 번 담을 때 혹시나 내가 모르는 특별한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에 담으면 밥알이 눌려서 식감이 나빠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안고 관찰하고 고민해보았지만, 끝내 한 번에 담으면 정 없다는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4인의 단출한 가족이었지만, 사업을 하면서 직원들의 식사까지 바카라임지느라 매번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큰일이었다. 반찬을 준비하고 상차림을 하고 식사 뒤에 정리하는 일이란 나의 시선에서는 고행과도 같은 과정이었다. 행여나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싶어 간을 보고, 불 조절을 하는 주방에서의 어머니 모습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 있다. 함께 식사하는 식구가 많다 보니 끼니마다 주방의 분주함이란 상상 이상이었지 싶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어머니가 밥 담을 때 혹시나 급한 마음에 한 번만 담지 않나를 세고 있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지간히 철없던 나였다. 어찌 되었건 중학생인 나의 관찰 기억에 어머니는 한번도 밥을 한 번에 담는 일은 없었고,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지나갔다.


시간은 지나고 대학 시절에는 학내식당을 주로 이용하고 늦게 귀가하다 보니 어머니의 집밥을 맛볼 일이 줄어들었다. 대학 학내식당을 이용하면서도 나는 버릇처럼 밥 담는 손길을 유심히 지켜보곤 했는데, 예외 없이 능숙한 솜씨로 밥을 한 번에 척 담아내 주었고, 갓 지은 따스운 밥이 한창 잘 먹을 나이인 나에게 맛없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그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밥을 두 번 나누어 담는 것에는 역시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근 10년에 가까운 관찰을 끝내고 결론을 지은 때가. 대학 졸업 후 온라인 게임생활에서는 밥을 뜨는 것을 볼 기회도 없는 공깃밥으로 식사를 했으니 사실상 졸업과 함께 밥 담는 일을 관찰하는 나의 작은 취미도 마침점을 찍게 되었다.


혜윰뜰 텃밭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이면 농사지은 작물을 나눔 한다. 이 일은 도시농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데, 텃밭에서 키운 작물을 나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텃밭이라는 표현은 쉽게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흔히들 이곳은 내 구역이라는 의미로 텃밭이라 칭하곤 하는데, 텃밭 가꿈을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이나 쓸 법한 말이다. 텃밭에서 배추라도 한번 키워본 도시농부라면, 텃밭이란 매일 쉼 없는 보살핌과 자연이 주는 시련과 연이은 투쟁, 텃밭 작물을 가해하는 끊임없는 해충과의 결전을 펼치는 전장이기 때문이다. 내 텃밭을 제대로 가꾼다는 것은 시련 앞에서 굴하지 않는 마음을 온전히 지켜내는 일이다. 텃밭뿐 아니라 마을 활동에 함께 하는 대부분의 일에는 이렇게 마음과 정성을 공감의 표현으로 벼려내는 노력이 따른다.


그렇다 보니 작고 소박한 나눔 한번에도 이와 같은 정성이 어디에나 묻어 있다. 더군다나 서투른 실력으로 어려운 시련을 맨몸으로 맞으며 배우며 키워낸 것이다. 너무도 작고 작은 나눔이기에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다른 수많은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혜윰뜰에서도 매년 봄과 가을이면 텃밭 수확물을 조금씩 나눔하고 있다.


천성이 게으른 나는 나눔 하는 날에도 함께 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는데, 언젠가 한 번은 수확물 나눔 하는 자리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참여하는 이웃이 저마다의 텃밭에서 이런저런 작물을 수확해서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나눔을 위한 봉투에 담는 일은 손이 꼼꼼한 회원의 몫이라,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옆에서 응원만 했다. 옆에서 잔심부름하며 나눔 봉투에 작물을 담아내는 모습을 보는데 문득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한참을 지켜보고서야 그 감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눔 봉투에 작물을 담으면서 담고 덜어내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나는 불현듯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의문의 답을 찾았다.


“왜 그렇게 담고 빼고 하세요? 대충 한 번에 담으시지요.”


이 한마디 질문에 너무도 당연한 답이 전해졌다.


“드시는 분들은 이때만 기대하고 있는데, 이왕이면 고르게 드실 수 있게 담아야지, 그걸 대충 담으면 정성이 없지요.”



두 번 나누어 담는 마음에 담긴 먹는 이를 위한 배려와 정성, 이것을 이해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밥 먹는 양이 유난히 적었다. 마르고 마르다 보니 별명이 조기가시였다. 그만큼 말랐음을 표하는 말이었는데, 어머니는 내 밥을 뜰 때마다 담고 덜기를 여러 번 하셨다. 분명히 남길 것을 알면서도 넉넉하게 담아낸 밥을 다 먹기를 바라는 마음과 먹는 것으로 불편할 내 마음을 알기에 헤아림으로 덜어내기를 반복하셨을 마음을 나는 너무 늦게 배운 것 같다.


비록 배움은 늦었지만, 어머니가 심어준 가르침이 영 의미 없지는 않았나 보다. 혜윰뜰에는 텃밭 모임과 함께 도서관 독서모임 바카라수다가 있는데, 얼마 전에 함께 나누어 읽을 바카라을 전해야 할 일이 있었다. 10여 종의 바카라을 고르게 나누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각자에게 전해줄 10권의 바카라을 가방 하나에 담았다. 다 담고 들어보니 너무 무거운 것에 마음이 불편해서 들 수 있을 만큼, 한 가방에 담았던 바카라을 조금 덜어내서 나누어 담아 전했다. 밥 담으며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배려의 마음이 씨앗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도 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두 번 나누어 밥 담는 세상 모든 이에게 나는 오늘 마음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고, 어제의 상처를 보듬을 마음의 안식을 찾아가고 있으니, 두 번 나누어 담는 마음은 세상을 구하는 소중한 보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배려, 정성, 사랑과 같은 다양한 색을 띠고 있지만, 결국 살아갈 힘을 담아내는 고결한 마음이다. 참 늦은 깨우침이지만, 이제라도 두 번 담는 마음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쁘다. 지금껏 세상 바람맞으면서도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기억할 수 있어서 오늘이 행복하다.


앞으로는 나도 밥을 두 번 나누어 담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배운 것처럼 나에게 소중한 이들에게 똑같이 그 마음 전하려 한다. 당장에 답을 말하지 않아도 그들도 언젠가 자신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만의 해답이 세상 살아가는 힘이 되어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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