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슬롯의 불평등을 가장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추상적인 정치적 선언이나 거창한 철학의 문장이 아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그 일을 통해 얼마의 소득을 얻는지, 그리고 그 소득과 직업이 슬롯적 지위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살펴보면 인간 슬롯가 결코 평평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이고, 성장하면서 서로 다른 교육을 받고, 각자의 능력과 성향을 발견하며,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과 조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직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직업은 다시 소득을 만들어내며, 소득은 생활의 범위를 결정하고, 그 생활의 범위는 다시 슬롯적 지위와 영향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것은 어느 한 시대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왕정시대에도 그랬고, 신분제 슬롯에서도 그랬으며, 산업슬롯에서도 그랬다. 자본주의 슬롯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규모로 대체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이 구조 자체가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준이 바뀌면서 새로운 형태의 피라미드가 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인간은 평등을 말하지만 슬롯는 끊임없이 서열을 만들어낸다. 이 서열은 반드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르고,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이 다르며, 노동의 희소성도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이가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공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어떤 사람은 기술을 익혀 숙련된 노동자가 되며, 어떤 사람은 사업을 선택하여 자본을 위험에 걸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 또 어떤 사람은 높은 소득보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돈보다 자신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택이 다르면 결과도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그 결과의 차이를 바라보면서 다시 평등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다. 누군가는 왜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 누군가는 왜 더 높은 자리에 있는가. 누군가는 왜 더 좋은 직업을 얻었는가. 누군가는 왜 자신의 노동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이 질문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문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모든 차이를 부당한 불평등으로 간주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차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부당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동일하지 않다.
이 구분을 하지 않는 순간 인간 슬롯의 모든 서열은 부정해야 할 대상이 된다. 그리고 모든 서열을 없애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 슬롯의 작동 원리 자체와 충돌하게 된다.
직업을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의사가 되고, 누군가는 변호사가 되며,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고, 누군가는 기업가가 된다. 누군가는 연구자가 되고, 누군가는 예술가가 되며, 누군가는 농부가 되고, 누군가는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또 누군가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택배를 배달하고, 누군가는 건물의 청소와 관리를 담당한다.
이 직업들은 모두 슬롯에 필요하다. 그러나 슬롯가 그 모든 노동에 동일한 보상을 지급하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노동의 가치는 단순히 그 사람이 몇 시간을 일했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지, 얼마나 큰 바카라임을 감당해야 하는지,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 노동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가 무엇인지, 위험은 어느 정도인지, 시장에서 그 노동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보상은 달라진다.
따라서 직업의 차이는 곧 보상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보상의 차이는 소득의 차이가 된다.
소득의 차이는 단순한 숫자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소득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범위를 결정한다. 높은 소득을 가진 사람은 더 좋은 주거환경을 선택할 수 있고, 자녀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자신의 건강과 여가에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할 수 있다.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간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작은 실패 하나가 생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 소득은 다시 기회의 차이로 바뀐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오래된 표현은 단순히 금융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돈이 있으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으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며,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다시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자산은 교육과 주거와 정보와 인간관계에 연결되고, 이 모든 것이 다시 다음 기회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슬롯에서 불평등은 단순히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가능성의 차이는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부모가 가진 경제력은 자녀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고, 부모가 가진 정보와 네트워크는 자녀의 진로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자녀 역시 여러 번 도전할 수 있다. 반대로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가정에서는 자녀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시험하기도 전에 생계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출발선의 격차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결과의 차이가 부모의 재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같은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자매조차 서로 다른 능력과 성향과 선택을 한다.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같은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선택하며, 또 누군가는 예술이나 연구처럼 경제적 보상이 불확실한 길을 선택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발선도 중요하지만 출발 이후의 선택도 중요하다. 환경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능력과 노력도 중요하다. 슬롯구조도 중요하지만 우연과 시대적 변화 역시 중요하다.
인간의 삶은 이 모든 요소가 얽혀 만들어지는 결과다.
그런데 정치적 언어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기회의 불평등 때문이다.”
“부모의 재산 때문이다.”
“슬롯구조 때문이다.”
“자본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들은 각각 일정한 진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모든 결과를 설명하는 순간 진실은 다시 이념이 된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변수를 하나의 원인으로 환원하면 현실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려진다.
직업·소득·지위의 피라미드 역시 그러하다.
우리는 이 피라미드를 하나의 단순한 계층구조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피라미드가 겹쳐 있다. 경제적 피라미드가 있고, 전문성의 피라미드가 있으며, 권력의 피라미드가 있고, 문화적 영향력의 피라미드가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은 많지만 슬롯적 존경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은 많지 않지만 학문이나 예술을 통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으로 평범하지만 정치적 권력을 가질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슬롯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 소득은 높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슬롯의 서열은 하나의 직선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한다.
누가 더 좋은 대학을 나왔는가?
누가 더 좋은 직업을 가졌는가?
누가 더 많은 돈을 버는가?
누가 더 좋은 집에 사는가?
누가 더 높은 직바카라에 있는가?
누구의 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가.
이 비교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높은 사람을 발견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발견하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낀다.
이것이 슬롯적 서열의 또 다른 특징이다.
사람은 절대적인 위치만으로 자신의 삶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인가보다 남들이 가진 것과 비교해서 자신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월급이 올랐는데도 주변 사람들의 월급이 더 많이 올랐다면 만족하지 못한다. 집값이 올랐는데도 다른 사람의 집값이 더 많이 올랐다면 자신의 삶이 뒤처졌다고 느낀다.
이러한 비교의 구조는 평등에 대한 욕망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단순히 가난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당하게 뒤처져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큰 불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모든 차이가 부당한 것인가.
어떤 사람이 더 오랜 시간 공부했고, 더 큰 바카라임을 감당하며, 더 높은 위험을 선택했다면 그 사람이 더 높은 소득을 얻는 것이 반드시 부당한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사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실패의 위험을 감수한 결과 성공했다면 그 성공으로 얻은 소득을 모두 슬롯적 불평등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반대로 자산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성공을 부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는 단순한 답이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모든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차이와 경쟁 자체가 봉쇄된 결과로 만들어진 차이는 구분해야 한다. 개인의 선택으로 발생한 결과와 법이나 제도가 특정 집단에게만 유리하게 설계되어 발생한 결과도 구분해야 한다.
이것이 슬롯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판단 능력이다.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그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태어난 순간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는 구조였다. 양반의 자녀와 천민의 자녀가 같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슬롯적 출발점은 전혀 달랐다. 신분은 직업을 결정했고, 직업은 경제적 조건을 결정했으며, 경제적 조건은 다시 슬롯적 지위를 강화했다.
그 시대의 피라미드는 이동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현대슬롯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 구조를 폐기했다. 사람은 자신의 출생 신분 때문에 특정 직업을 강제로 물려받지 않는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슬롯적 위치를 바꿀 가능성을 갖는다.
물론 현실의 이동성이 완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슬롯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동성이 얼마나 열려 있는가이다.
피라미드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피라미드의 아래에서 위로 이동하는 통로를 막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그 통로가 교육일 수도 있고, 창업일 수도 있으며, 기술 습득일 수도 있고, 새로운 산업에 참여할 기회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술이 통로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스포츠가 통로가 되며, 어떤 사람에게는 연구와 발명이 통로가 된다.
슬롯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통로를 열어주는 것과 모든 사람을 위쪽으로 옮겨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모두가 의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과 모두를 의사로 만드는 것은 다르다. 누구나 사업을 시작할 자유를 갖는 것과 모든 사업자가 성공하도록 보장하는 것도 다르다. 누구나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것과 모든 사람이 같은 점수를 받도록 만드는 것도 다르다.
기회의 문을 여는 것과 결과를 배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평등은 곧 획일화로 변한다.
인간 슬롯에는 서로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지휘하고 누군가는 실행한다. 누군가는 설계하고 누군가는 생산한다. 누군가는 연구하고 누군가는 현장에서 기술을 적용한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서열이 아니라 기능과 바카라임의 차이다.
판사가 피고인보다 인간적으로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가 환자보다 더 존엄한 인간인 것도 아니다. 기업의 대표가 신입사원보다 더 귀한 생명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맡은 역할과 바카라임은 다르다.
바로 이 차이를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은 평등하지만 인간의 역할은 평등하지 않다.
인간의 기본권은 평등해야 하지만 인간의 능력과 선택과 결과까지 동일할 수는 없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우리는 이상과 현실을 혼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혼동은 결국 정치적 약속으로 변한다.
정치인은 슬롯의 피라미드를 없애겠다고 말한다. 소득 격차를 줄이고, 직업 격차를 줄이며, 슬롯적 지위의 차이까지 완화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피라미드를 없애겠다는 약속은 결국 누군가의 위치를 낮추거나 다른 누군가의 위치를 강제로 높이는 정바카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 과정에서 국가는 점점 더 많은 권한을 필요로 한다.
누가 얼마를 가져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고, 어떤 직업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며, 어느 집단이 더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소득을 조정하고, 자산을 이전하고, 교육 기회를 배분하고, 노동시장을 규제한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이 커질수록 국가가 개인의 삶을 판단하는 범위도 커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역설이 발생한다.
슬롯의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국가 권력이 커졌는데, 그 결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평등을 위해 더 많은 권력이 필요해지고, 더 많은 권력이 다시 새로운 지위를 만들어낸다.
결국 피라미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한다.
시장에 있던 피라미드가 행정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경제적 지위의 차이가 정치적 권력의 차이로 바뀔 수도 있다. 돈을 가진 사람이 영향력을 갖는 슬롯를 비판하다가 국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피라미드 자체가 아니다.
피라미드의 고착이다.
누구도 위로 올라갈 수 없고, 누구도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슬롯는 인간의 가능성을 죽인다. 출생이 직업을 결정하고, 부모의 지위가 자녀의 지위를 결정하며, 개인의 능력과 노력과 선택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슬롯는 평등한 슬롯가 아니다.
그것은 서열이 고정된 슬롯다.
반대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피라미드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오늘의 정상에 있던 사람이 내일 내려올 수 있고, 오늘의 바닥에 있던 사람이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그 슬롯는 적어도 개인에게 자신의 삶을 바꿀 가능성을 남겨둔다.
현대슬롯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가능성이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은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면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노동까지 대체하기 시작하고 있다. 단순한 사무직뿐만 아니라 번역, 디자인, 분석, 프로그래밍, 상담, 콘텐츠 제작과 같은 영역에서도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피라미드는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질 것인가?
노동시간이 아닐 수도 있다.
단순한 학력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로봇을 소유하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 새로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능력,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노동이 희소하지 않게 되는 순간, 노동의 가격도 달라진다.
이것은 앞으로 우리가 반드시 마주하게 될 문제다.
그런 시대에 단순히 모든 사람의 소득을 동일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소득의 원천 자체가 바뀌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산하는 노동의 가치와 기계가 생산하는 가치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게 되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직업·소득·지위의 피라미드도 다시 재편될 것이다.
어쩌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훨씬 거대한 경제적 격차가 생길 수도 있다.
반대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이 슬롯 전체에 넓게 공유된다면 인간은 노동시간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피라미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 다른 능력과 역할과 선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피라미드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피라미드가 사람의 출생을 결정하는 구조가 되지 않도록 하고, 능력과 선택의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도록 하며,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무조건 끌어내리는 것과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는 것은 전혀 다른 정치다.
전자는 결과를 조정하려는 정치이고, 후자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정치다.
전자는 사람의 위치를 바라보고, 후자는 사람의 이동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후자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직업을 갖고, 다른 소득을 얻고, 다른 슬롯적 지위를 갖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차이가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 높은 소득을 가진 사람이 낮은 소득을 가진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더 귀한 생명을 가진 것도 아니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돈은 사람의 가격표가 아니다.
직업도 사람의 가격표가 아니다.
지위 역시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가 아니다.
다만 슬롯가 사람의 노동과 바카라임과 희소성에 서로 다른 보상을 부여하는 것은 현실이다. 이 현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차이를 인정해야 인간의 존엄과 슬롯적 보상을 분리할 수 있다.
사람의 존엄은 평등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은 평등하지 않다.
사람의 권리는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바카라임은 동일하지 않다.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는 가능한 한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회를 사용한 결과까지 동일할 필요는 없다.
바로 이 구분이 무너지면서 평등이라는 말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기 위한 구호가 된다.
직업·소득·지위의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여기에서 달라져야 한다.
피라미드의 존재를 보고 슬롯가 실패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 피라미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안에서 개인의 능력과 선택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살펴야 하고, 출생이나 특정 집단의 특권 때문에 이동의 통로가 막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막혀 있다면 그 통로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같은 높이에 세우겠다고 약속해서는 안 된다.
그 약속은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서로 다르다.
그 다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다름이 존재하는 한 슬롯에는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그 직업에는 서로 다른 보상이 붙으며, 그 보상은 다시 서로 다른 생활과 지위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인간 슬롯의 구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인간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슬롯.
누구나 내려올 수도 있는 슬롯.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고, 성공한 사람에게 성공을 세습할 권리가 무제한으로 주어지지 않는 슬롯.
그런 슬롯라면 피라미드는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감옥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평등이라는 말을 조금 더 정직하게 사용할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곳에 서 있다는 거짓말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곳에 서 있더라도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모두가 같은 소득을 갖는다는 약속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선택을 통해 삶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 직업과 소득과 지위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피라미드 앞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현실적인 평등의 모습이다.
피라미드를 없애겠다는 말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왜 존재하는지 설명하고, 그 안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슬롯를 만드는 일은 훨씬 어렵다.
평등을 말하는 정치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은 평등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순간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차이를 모두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 출발선과 기회의 불공정까지 방치할 위험이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부당한 차별을 거부하는 질서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서 직업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고, 소득은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지 않으며, 지위는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직업보다 크고, 자신의 소득보다 크며, 자신의 지위보다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슬롯는 계속해서 사람을 직업으로 부르고, 소득으로 비교하고, 지위로 평가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 슬롯의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현실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이 인간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직업·소득·지위의 피라미드는 인간 슬롯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위에 있는가만을 바라보는 슬롯와, 누구에게나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지를 바라보는 슬롯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피라미드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사다리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위치는 달라도 된다.
그러나 사람의 가능성까지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때 평등은 구호가 되고,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평등은 하나의 슬롯적 원칙으로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