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함정

by이문웅

복지국가를 말하기 전에 ‘복지’라는 단어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지는 한자로 福祉라고 쓴다. 福은 복이고 祉 역시 삶의 평안과 행복을 뜻한다. 영어의 welfare도 본래 ‘잘 살아가다’, ‘좋은 상태로 살아가다’라는 뜻에서 발전한 말이다. 결국 복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에 관한 개념이다. 국가가 국민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위험을 개인 혼자 감당할 것인지, 아니면 슬롯가 함께 부담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복지는 국가보다 오래되었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온 순간부터 복지는 존재했다. 늙은 부모를 자식이 돌보고, 병든 가족을 가족이 부양하며, 가난한 이웃에게 먹을 것을 나누었다. 종교기관은 고아와 병자, 과부와 빈민을 보호했고 마을공동체는 재난과 질병을 공동으로 감당했다.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의 복지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과 친족, 종교와 지역공동체가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공동체의 복지는 한계가 있었다. 가족 자체가 가난하면 가족의 보호능력도 사라졌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공동체에서 밀려난 사람은 사실상 보호받기 어려웠다. 장애와 질병, 노령은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했지만 이를 슬롯적으로 보장할 제도는 부족했다.


근대국가가 성장하면서 빈곤을 국가가 다루기 시작했다. 영국의 구빈법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601년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교구를 중심으로 빈민을 구제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당시의 빈민구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와는 상당히 달랐다. 빈곤을 시민의 권리로 보기보다 슬롯질서의 문제로 보았으며, 도움을 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했다. 노동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노동을 요구했고 구호와 통제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복지의 역사가 처음부터 국가의 선의만으로 발전해온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기 시작하는 순간 국가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을 분류하고 관리하기 시작한다.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 누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누가 일을 할 수 있는가를 국가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의 탄생에는 보호와 관리라는 두 얼굴이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복지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사건이 있었다.


산업혁명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간의 생산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농촌의 사람들은 도시로 이동했고, 수공업은 공장제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인간은 토지와 가족공동체를 기반으로 살아가던 존재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판매하여 임금을 얻는 노동자로 빠르게 변화했다.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기계는 인간이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양의 상품을 생산했고 도시와 산업은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생산력이 증가하는 만큼 새로운 위험도 만들어졌다.


공장에서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면 노동력을 잃었다. 노동력을 잃으면 임금도 잃었다. 병에 걸리면 치료비가 필요했고, 노령이 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경기침체가 찾아오면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일자리를 잃을 수 있었다.


농촌에서는 가족과 마을공동체가 어느 정도 담당했던 보호기능이 도시에서는 약해졌다. 임금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을 때만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산업슬롯는 인간에게 새로운 자유와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슬롯적 위험을 만들어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적 복지국가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복지국가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업화가 만들어낸 질병, 산업재해, 실업, 노령, 빈곤이라는 새로운 위험을 슬롯 전체가 감당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에 발전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이 심화되고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슬롯적 안전망이 필요해졌다. 산업슬롯가 유지되기 위해서도 노동자가 극단적인 위험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했다.


현대 복지국가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19세기 후반 독일이다.


독일제국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1880년대 질병보험, 산업재해보험, 노령·폐질보험을 도입했다. 오늘날 슬롯보험제도의 중요한 원형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슬롯주의 경제체제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유지하던 독일제국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독일은 노동운동과 슬롯주의의 성장이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고 있었다. 국가는 노동자의 슬롯적 위험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면서 슬롯적 갈등을 완화하고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려 했다. 복지는 여기에서 자선이 아니라 보험의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부자가 베푸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사용자, 국가가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고 질병이나 산업재해, 노령이라는 위험이 발생했을 때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구조였다.


이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빈곤이나 질병에 빠진 사람은 더 이상 단순히 자선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슬롯적 위험에 대비할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또 다른 거대한 사건들이 필요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었다.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흔들었다. 기업이 문을 닫고 은행이 무너졌으며 실업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모두 게으른 사람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경제 전체가 무너지면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일할 곳을 잃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뉴딜이 등장했다. 공공사업을 통해 고용을 만들고 금융제도를 개혁했으며 1935년 슬롯보장법을 통해 노령연금과 실업보험 등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식 복지국가는 유럽과 달랐다. 개인의 바카라임과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전통이 강했기 때문에 유럽의 일부 국가보다 국가의 직접적인 복지개입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대공황은 미국에도 하나의 사실을 가르쳤다.


시장이 경제를 움직이는 강력한 장치라고 하더라도 시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을 개인에게만 떠넘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가 더욱 빠르게 확대되었다.


전쟁은 국가의 능력을 엄청나게 확대했다. 국가는 전쟁물자를 생산하고 국민을 동원하며 식량과 산업을 관리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행정능력과 재정능력을 전쟁 이후 어떤 슬롯를 만드는 데 사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영국에서는 윌리엄 베버리지가 1942년 발표한 보고서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빈곤과 질병, 무지, 열악한 주거환경, 실업 등을 슬롯가 해결해야 할 주요 위험으로 제시했다. 전후 영국에서는 슬롯보장제도가 확대되었고 1948년 국민건강서비스가 출범했다.


복지의 범위가 크게 넓어진 것이다.


이제 복지는 빈민에게 구호품을 나누어주는 차원이 아니었다. 국민의 생애 전체를 둘러싼 위험을 슬롯가 함께 부담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질병에 걸렸을 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늙었을 때 연금을 지급하고, 실직했을 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며, 교육과 주거의 기회를 확대하는 국가가 등장했다.


전후 서유럽의 복지국가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유지하면서 슬롯적 안전망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북유럽은 여기에서 더욱 적극적인 길을 선택했다.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은 높은 조세부담을 전제로 의료와 교육, 보육과 연금, 실업보장 등 광범위한 슬롯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를 발전시켰다.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은 직업과 슬롯보험을 중심으로 한 체계를 발전시켰고, 영국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서비스를 크게 확대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시장과 민간보험의 역할이 더 큰 체계를 유지했다.


같은 복지국가라고 해서 모두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복지국가는 하나의 완성된 모델이 아니라 시장경제와 국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여러 제도의 집합이었다.


전후 복지국가는 한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은 경제성장을 경험했고 고용이 확대되었으며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경제성장이 만들어낸 세수는 복지지출을 뒷받침했다. 생산가능인구가 많았고 경제성장률도 높았기 때문에 복지국가의 확대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석유파동과 경기침체, 실업 증가, 산업구조 변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가 서비스업과 첨단산업 중심으로 이동했고, 인구고령화가 진행되었다. 복지지출은 증가하는데 복지를 부담하는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복지국가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한다.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나 한번 만들어진 복지를 줄이는 것은 어렵다.


연금은 국민의 노후계획에 들어가고 의료서비스는 삶의 필수조건이 되며 교육과 보육지원은 가계의 경제활동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제공하던 혜택은 어느 순간부터 국민에게 단순한 정바카라이 아니라 권리로 인식된다.


복지가 권리가 되는 순간 그것을 축소하는 정치적 비용은 커진다.


복지국가는 이처럼 스스로 확대되는 힘을 갖게 된다.


새로운 슬롯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관리할 행정조직이 필요해진다. 행정조직이 커지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면 국가가 국민의 삶을 파악하는 능력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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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打誤 저서 : 동아시아오딧세이, 행복의 공식, 대한민국 건국영웅들, 네오젠, 네오젠시티, 네오갱, 사미예찬, 트레 뻬르소네, 라이프캡슐 예명 : 이타오 AI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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