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유로비트/파라파라 틈새시장

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19

by이정미

유로비트와 파라파라 시장은 일본에서도 거의 항상 틈새시장이었던 듯하다. 심지어 전국에 유로비트와 파라파라 광풍이 불었던 2000년 전후조차, 절대 다수의 디스코텍은 평소에는 일반적인 춤을 추는 손님들을 받고 특정한 요일에만 파라파라 손님을 받았다. 파라파라의 거점 중 하나였던 9LoveJ마저, 하루 종일 식당으로 영업하다가 밤 11시부터 테이블을 치우고 파라파라 클럽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파라파라만 가지고는 장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유로비트도 비록 여러 번 유행하기는 했지만 항상 호불호가 크게 갈렸고, 유행이 끝나면 곧바로 ‘촌스러운 음악’ 취급을 받았다.


그러니 일본 바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유로비트나 파라파라가 뭔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2000년쯤 일본의 제3차 파라파라 붐에서 영향을 받았던 대만과 홍콩, 에이벡스가 2006년에 작정하고 파라파라를 수출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도가 예외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의 대중문화를 항상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대만은 일본의 파라파라 유행도 받아들였다. 에이벡스가 발매한 파라파라 비디오들은 대만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유통됐다. 홍콩에서도 일부 비디오가 정식 수입됐다. 2001년에는 일본의 파라파라 선수권 대회에 대만과 홍콩의 지역 예선이 추가됐다고 한다.


홍콩의 인기 영화배우 겸 댄스가수 곽부성은 2001년에 ‘파라파라 사쿠라(芭啦芭啦櫻之花)’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출연해 파라파라를 췄다. 영화의 주제곡도 마찬가지로 ‘파라파라 사쿠라’라는 제목이고 유로비트 스타일이다. 영화는 반응이 그저 그랬던 모양이지만 주제곡은 곽부성의 최고 히트곡 중 하나라고 한다. 곽부성은 한국 가수 최창민의 곡 중 유로비트 요소가 강한 ‘그녀의 뒤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를 광둥어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에이벡스의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인다. 2004년부터 일본에서 제4차 파라파라 붐을 부르짖으며 파라파라와 유로비트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에이벡스는, 2006년에는 독일어권 시장으로 눈을 돌려 샤나두(Shanadoo)라는 걸그룹을 수출했다. “우리랑 같이 파라파라 배워요”라는 일본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데뷔곡 ‘King Kong’은 차트 15위까지 오르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고, 샤나두는 이 곡에 맞춰 파라파라를 추며 독일어권 사람들에게 파라파라를 알렸다. 다만 기존의 유로댄스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유로비트보다는 유로댄스 느낌이 더 많이 난다.


이런 예외들을 제외하면 전 세계가 언제나 유로비트/파라파라의 불모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세계 여기저기에는 꿋꿋하게 유로비트나 파라파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


내가 페이스북 그룹 ‘파라파라 인터내셔널’에 처음 가입했을 때 가장 놀란 점은 남미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남미는 K-컬처에 열광하는 곳이지만, 그전에는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때 함께 유입된 파라파라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있었던 듯하다. 원래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문화가 있던 덕분인지도 모른다. 다 같이 모여서 파라파라 영상을 찍고 유튜브에 올리는 모임이 여럿 있었고, 그중 ‘파라파라 칠레’ 같은 모임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보다 숫자는 적지만 북미와 유럽에도 파라파라를 열심히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여담으로 파라파라 커뮤니티에는 성소수자가 많은데, 특히 지금까지 내가 본 북미의 남자 파라파라 팬 중 절반은 게이였던 것 같다. 파라파라와 유로비트 문화의 뿌리인 디스코 문화가 성소수자들과 연관이 깊기도 하고, 파라파라가 팔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성소수자들의 춤인 보깅과 공통점이 있다 보니 보깅과 섞어서 추는 사람들도 있다.


유로비트의 인지도는 그나마 파라파라보다는 높다. 전적으로 ‘이니셜 D’ 애니메이션과 게임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진지하게 좋아하기보다 ‘이니셜 D 음악’ 또는 ‘밈 음악’으로 가볍게 소비하는 사람이 많다. 유로비트 골수팬들 중에는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다 못해, ‘Deja Vu’나 ‘Gas Gas Gas’처럼 밈으로 유명해진 이니셜 D 곡들을 싸잡아 경멸하는 사람들마저 있다. 어떤 팬덤이든 다소의 엘리트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솔직히 우스운 일이다. 특히 저 두 곡은 매우 잘 만들어진 명곡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Parapara Chile.png15년째 활동 중인 칠레의 파라파라 모임 '파라파라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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