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20
데이브 로저스의 음악을 사랑해 마지않던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데이브와 실제로 만났다.
데이브는 2016년 말부터 태국을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소속사와 결별하고(그리고 소속사의 사장이던 세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한창 방황하던 때였다. 동료 유로비트 뮤지션이자 오랜 친구인 데이비드 디마(본명은 다비데 디 마르칸토니오)가 방콕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 영향으로 태국을 찾게 된 것 같다.
2017년 3월, 나는 그것과 전혀 무관한 이유로 태국에 가게 됐다. 남편이 푸켓에 있는 리조트에서 쉬다 오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같은 해 가을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기로 이미 계획해 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푸켓 여행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형편에 너무 자주 해외에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남편을 따라 푸켓에 도착하니 좋긴 좋았다. 우리는 리조트에서 노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곳의 위치 정보를 태그했다. 그러자 데이브가 댓글을 달았다. 사진만 한 장 있고 그 외의 내용은 없었는데, 아마 태국 어딘가의 해변인 듯했다. 나는 그것이 ‘나도 최근에 태국 다녀왔어’ 정도의 뜻인 줄만 알고 대략 이렇게 답했다. ‘좋아 보이네요! 언제 다녀왔어요?’
그랬더니 그날 밤 데이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동안 내가 유로비트에 관련된 질문을 하고 데이브가 대답해 주는 식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은 있었지만, 데이브가 내게 먼저 메시지를 보낸 일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 지금 빠통비치에 있어.’
빠통비치는 우리가 있는 리조트에서 택시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50분 정도가 걸리니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어느 때보다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는 나와 남편이 그곳으로 가면 혹시 만나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데이브는 다음날 저녁에 오라고 선뜻 대답했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전개에 황당해 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했다. 남편은 유로비트에는 특별히 관심이 없었지만, 한때 전업 뮤지션을 꿈꿨을 만큼 음악을 좋아했다. 한 장르에서 성공한 뮤지션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데이브가 알려준 호텔로 향했다. 로비에 도착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데이브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살면서 여러 뮤지션의 덕질을 해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순간 울 뻔했다.
우리는 로비 테이블에 앉아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 남편, 데이브, 데이브의 태국인 일행까지 모두 네 명이 있었다. 물론 대화는 주로 데이브와 나 사이에 오갔다. 긴장해서 중간 중간 말이 끊기고 애꿎은 물만 들이키는 내게 남편이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에서 보던 데이브의 생활과 비교해서 호텔은 초라해 보였다. 혹시 이혼과 소속사 분쟁을 거치면서 재산이 거덜 난 것인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이유는 아니었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에 지갑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당장 쓸 돈이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저녁까지 먹었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고 데이브는 거의 다 대답해 줬다. 덕후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지갑을 잃어버린 데이브를 위해 저녁은 내가 내기로 했다. 데이브는 한 번 사양했지만 나는 유로비트의 제왕에게 저녁을 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하며 카드를 긁었다.
페이스북에 함께 찍은 사진과 간단한 사연을 올렸더니 ‘좋아요’와 댓글이 쏟아졌다. 내 친구들 중에 유로비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내 덕질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도 대체로 무언가의 덕질을 열심히 하는 중이거나 예전에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다. 데이브도 내 게시물을 공유했다.
현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꿈같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더 꿈같은 부분은, 이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