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유로비트가 뭔데? - 1

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03

by이정미

R.ef의 일부 곡도 유로비트를 모방했고 NRG의 곡들도 유로비트를 샘플링했는데, 둘은 서로 좀 다르게 들린다. 이 두 그룹의 음악은 어떻게 유로비트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까? 그리고 똑같은 유로비트라도 ZAM은 일본 가수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왜 R.ef와 NRG의 경우는 서양 가수의 곡일까?


이런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유로비트라는 장르의 성격, 나아가 역사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질문의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유로비트란 대체 뭘까?


유로비트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유럽에서 생겨났지만 일본 시장에 맞춰 변화한, 뚜렷한 멜로디 라인과 강렬한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특징인 댄스음악 장르.’ 유로비트는 이름에 ‘유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데서 알 수 있듯 유럽산이면서도, 거의 초기부터 일본인들을 의식해서 만들어졌으며 오랫동안 일본 시장 위주로 소비된 신기한 음악이다. 어떤 사연으로 이렇게 된 것인지, 유로비트의 출생의 비밀을 알아보자.




유로비트의 뿌리로 간주되는 장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탈로 디스코(Italo disco), 다른 하나는 하이 에너지(Hi-NRG)다. 이탈로 디스코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탈리아에서 생겨났고, 하이 에너지는 영미권에서 생겨났다. 두 장르 모두 1980년대의 디스코 음악이고, 신디사이저를 많이 사용했으며, 가사가 대체로 영어라는 공통점이 있다.


1980년대 중반 하이 에너지는 이탈로 디스코와 유로디스코의 영향을 받아 그전과는 다소 다른 음악이 됐다. (마찬가지로 이탈로 디스코도 하이 에너지의 영향을 받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두 장르는 점점 비슷해졌다) 영국에서는 유럽 대륙의 영향으로 새로워진 하이 에너지를 기존의 하이 에너지와 구분해서 ‘유로비트’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새 이름은 점차 널리 퍼져 나갔다.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도 서양과 마찬가지로 하이 에너지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서양에서 유로비트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자 일본인들도 이 단어를 받아들였다.


서양에서는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하이 에너지의 인기가 수그러들었고, 그때까지 하이 에너지와 사실상 동의어였던 유로비트라는 단어도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버블경제의 정점에 달해 디스코텍 문화가 한창 꽃을 피우던 일본에서는 하이 에너지/유로비트가 여전히 사랑받았다. 서양의 하이 에너지 작곡가들은 대부분 하이 에너지를 그만뒀고, 남아 있던 일부 작곡가들은 일본에 곡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인 작곡가들이 일본 유로비트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처럼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이탈리아산 유로비트를 이탈리안 유로비트라고 부르고, 영미권을 중심으로 서양에서 인기 있던 유로비트는 브리티시 유로비트라고 불러서 서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자는 하이 에너지의 영향을 받은 이탈로 디스코, 후자는 이탈로 디스코의 영향을 받은 하이 에너지라는 것이다. 말로 풀어놓으면 그게 그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실제 음악을 들어보면 좀 다르긴 하다.


이후 일본의 신생 음반사 에이벡스(Avex)가 이탈리아의 한 유로비트 레이블과 긴밀히 협업하며 유로비트의 공급에 주력했다. 에이벡스는 곧 일본 유로비트 시장을 독점하게 됐고, 다른 유로비트 레이블들도 에이벡스와 함께 일하게 됐다. 가수 중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조금 있었지만(벨기에인인 사만다 질처럼) 작곡가는 거의 모두 이탈리아인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탈리아산 유로비트가 일본에 자리 잡았다.


image.png벨기에 가수 사만다 질은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든 유로비트를 영어로 노래했다. 어쩌면 진정한 글로벌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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