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04
소수의 한국인도 일본을 통해 이탈리아산 유로비트를 접했다. 그리고 유로비트를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한국 가요들도 생겨났다. 유로비트 표절에 대해서 ‘친숙한 나라의 음악을 베끼면 쉽게 들킬 테니 생소한 이탈리아의 음악을 베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는데, 알고 보면 바로 옆 나라인 일본에서 유행하던 음악이다.
이탈리아인 작곡가들은 이제 유로비트의 거의 유일한 소비층이 된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춰서 유로비트를 다듬어 나갔다. 그리고 여러 해가 흐르면서 시대의 변화도 함께 반영되었다. 박자가 점점 빨라지고 사운드가 점점 강렬해지면서 예전 하이 에너지 시절과는 꽤 다른 음악이 됐다. 이 변화는 R.ef와 NRG의 음악을 비교해 봐도 느낄 수 있다. R.ef가 표절한 것으로 추정되는 ‘He-Hey Dancin’’과 ‘Don’t Tell Me Lies’는 1993년에 발표되었고, NRG가 샘플링한 곡들은 주로 1995년 또는 그 후에 발표되었다.
유로비트 곡을 번안해서 부르는 일본인 가수들이 나오면서 유로비트는 디스코텍을 벗어나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해졌다. 한 예로 아무로 나미에는 ‘Season’이라는 유로비트 곡을 번안해 ‘태양의 시즌’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고 6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ZAM은 이 번안곡을 표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곡과 번안곡의 사운드가 다르기 때문에 구분할 수 있다)
일본에서 유로비트의 인기는 대략 1999년에서 2000년에 최고조에 달했다. 유로비트에 맞춰서 추는 춤인 파라파라도 이때가 전성기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를 직접 접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유로비트와 파라파라가 워낙 일본을 휩쓸었다 보니 한국에도 약간은 전파됐다. 소유진의 ‘파라파라 퀸’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90년대 말부터 자동차 경주에 대한 애니메이션 및 게임 시리즈 ‘이니셜 D’에 유로비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후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유로비트를 알리는 발판이 됐다. 외국인들 중에는 아예 유로비트와 이니셜 D 음악을 동의어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까지도 유로비트가 등장하는 인터넷 밈은 대부분 자동차와 관련이 있다.
아쉽게도 2000년대부터 일본에서 유로비트는 빠르게 잊히기 시작했다. 대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해외의 유로비트 팬들이 유로비트를 즐기기는 훨씬 편해졌고, 유로비트 뮤지션들과 직접 교류할 기회도 생겨났다. 현재 유로비트는 오래된 리스너뿐 아니라 서브컬처와 밈 등으로 유입된 새로운 리스너도 대상으로 탄탄한 틈새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유로비트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유럽에서 이탈로 디스코와 하이 에너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영국인들이 지어 준 이름을 받고, 아직 걸음마를 할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계속 그곳에서 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항상 이탈리아인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탈로 디스코의 뚜렷하고 때로는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 하이 에너지의 강렬한 비트와 사운드를 물려받았지만 부모와는 다른 자신만의 모습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