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유로비트의 파편을 접하다

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01

by이정미

아마 1996년 1월의 어느 저녁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연예가중계’에서 룰라의 표절 논란을 떠들썩하게 다루고 있었다. 새 앨범의 타이틀곡이 일본 가요를 베꼈다는 것이다.


그날의 화제는 룰라에 그치지 않고 다른 가수들로도 넘어갔다. 한국 가요계의 일본 음악 표절이 고질적인 문제라고 했다. 방송에서는 여러 가수들을 차례차례 언급하며, 일본 원곡의 일부를 먼저 들려준 후 그 부분을 표절한 한국 곡을 들려줬다.


표절로 지목된 곡 중에는 ZAM의 ‘나만의 이유’도 있었다. 표절당한 원곡의 전주 부분이 흘러나왔다. 빠른 박자에 강렬한 신디사이저 음색, 또렷하고 대중적인 멜로디가 귀를 사로잡았다.


그때는 그런 음악을 유로비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당연히 몰랐다. 어린 나는 그저 생각했다. 세상에 저렇게 좋은 음악이 있었다니!


자막을 보니 원곡의 가수는 아무로 나미에, 곡 제목은 ‘태양의 시즌’이었다.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막혀 있던 당시조차, 아무로 나미에는 일본에서 워낙 대스타였기 때문에 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로 나미에의 태양의 시즌. 15초가 채 되지 않았을 시간 동안 나는 자막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머릿속에 잘 새겨 뒀다.


지금이라면 가수 이름과 곡 제목을 알아냈으니 바로 인터넷에서 그 곡을 찾아내서 들으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90년대였다. 인터넷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일본 음반의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반 가게에서 살 수도 없었다. 암암리에 일본 음반을 파는 가게나 리어카가 있었다고는 하는데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설령 알았다고 한들 초등학생인 내가 그런 곳들을 알아내서 갈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억해 두는 것뿐이었다. 유로비트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그 후로 여러 해를 기다려야 했지만, 그 짧고도 강렬하게 스쳐지나간 순간이 유로비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Taiyo no Season.jpg내 인생 첫 유로비트, 태양의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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