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5년째 파라파라나 추고 있다 - 02
그런데 내가 유로비트를 처음 들은 것이 정말로 1996년 초였을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ZAM 외에도 유로비트 표절 의혹이 있던(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연윤리위원회나 법원에서 정식으로 표절 판정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표절 같은) 한국 가요들이 있고, 그중에는 1996년 초보다 전에 나온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R.ef가 데뷔 앨범을 내놓은 것이 1995년인데, 이 앨범에서 유명한 두 곡이 기존의 유로비트 곡들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된다. R.ef의 데뷔곡 ‘고요 속의 외침’의 후렴 멜로디는 킹 앤 퀸(King & Queen)의 ‘He-Hey Dancin’’이라는 곡과 거의 똑같고, 심지어 1절 후렴 뒤로 이어지는 간주도 마찬가지다. 후속곡인 ‘상심’의 후렴 멜로디도 사만다 질(Samantha Gilles)의 ‘Don't Tell Me Lies’라는 곡을 아주 조금만 고쳤다.
물론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이고 지금도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그 앨범에서 ‘이별 공식’이라는 곡만 좋아했고 다른 두 곡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유로비트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되고 나서도 이 곡들의 표절 의혹에 대해 오랫동안 몰랐다.
‘고요 속의 외침’에 대해서 알게 된 순간은 조금 웃겼다. 내가 거실에서 원곡인 ‘He-Hey Dancin’’을 틀어 놓았는데, 방에 있던 남편이 듣다가 거실로 나와서 이게 도대체 무슨 곡이냐고 물었다. ‘고요 속의 외침’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처음으로 두 곡을 비교해 보게 됐다. 우리는 90년대의 온갖 표절에 단련된 세대이지만, 유명한 가수의 유명한 곡이 기존 곡과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R.ef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우로는 NRG가 있다. 1997년에 데뷔한 NRG의 1집과 2집은 기존 유로비트 곡들의 전주 부분을 많이 가져다 썼다. 일반적인 표절 의혹 사례들과는 다르게 보컬 부분의 멜로디는 비슷하지 않다.
허락을 받고 전주 부분을 샘플링한 것인지, 무단으로 샘플링한 것인지, 처음에는 무단으로 샘플링했다가 나중에 합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원저작자 측과 샘플링한 측 당사자들만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 다만 데뷔곡 ‘할 수 있어’의 리믹스 버전(실제 활동은 이 버전으로 했고, 뮤직비디오에도 이 버전이 들어갔다)은 예외여서, 발매 당시부터 음반에 전주 부분의 출처인 Domino & Aki의 ‘Hot & Soul’을 확실하게 표기했다.
유로비트 표절이 의심되는 곡 중 가장 나중에 나온 것으로는 소유진의 ‘파라파라 퀸’이 있다. 2001년 6월에 발표되었는데, 같은 해 1월에 나온 유로비트 컴필레이션 앨범 Super Eurobeat Vol. 114의 수록곡 중 무려 네 곡과 비슷하다. 마치 각 곡의 서로 다른 부분을 가져와 짜깁기를 한 것 같다.
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파라파라를 알린 ‘파라파라 퀸’의 존재에 항상 감사하지만, 원곡들과 비교하면서 듣다 보면 조각조각 이어 붙인 것이 마치 프랑켄슈타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한 곡만 골라서 정식으로 번안을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파라파라 퀸’을 발매한 SM 엔터테인먼트와 Super Eurobeat 시리즈를 발매하던 에이벡스는 당시에 협업하던 사이였으니 번안 작업도 쉬웠을 텐데.
다행히도 국산 유로비트 중에 표절이 의심되는 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창민의 ‘그녀의 뒤엔 항상 내가 있었다’는 당시에는 테크노로 불렸지만, 나는 이 곡이 꽤 훌륭한 유로비트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이야기한 곡들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노라조의 ‘빵’도 유로비트 느낌이 난다(유로비트와 해피 하드코어의 중간에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한 파라파라 팬이 이 노래에 맞춰서 파라파라 안무를 만들기도 했다.
유로비트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 세대 전후로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이 곡들을 들어 봤을 것이다. 유로비트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