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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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로그》

PART 4 — 〈헝가리〉


제20화 〈경우의 수〉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회의실의 무거운 공기 속으로 떨어진 질문이었지만, 누구도 무엇을 묻는 것인지 되묻지 않았다.


2022년 생성형 AI의 대중화가 시작된 뒤, 28년이 흘렀다.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일상뿐 아니라 국가 운영의 중심에도 자리 잡았다. 경제와 외교, 안보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AI에게 가능한 미래를 묻는 것은 당연한 절차가 되었고, 그 예측이 실제 상황과 맞아온 경험은 오랜 신뢰로 쌓여 있었다. 이 회의실의 화면을 채운 분석과 앞으로의 상황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역시 국가전략 AI가 내놓은 결과였다.


국가전략본부장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벽면을 채우고 있던 전력예비율과 식량 비축량, 산업가동률과 실업률, 치안 조직의 이탈률이 하나의 시간축 위로 겹쳐졌다. 공급과 생산을 나타내는 선들이 내려가는 동안 실업과 이탈을 나타내는 선들은 위로 치솟았고, 그 변화가 반영될 때마다 정부의 통제력을 나타내는 푸른 선이 조금씩 꺾였다.


화면이 한 달 뒤에 멈췄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30일 안에 현 정부가 국가 통제력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90.3퍼센트입니다.”


대통령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 달도 버티기 어렵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일부 경로에서는 그보다 이른 시점에 중앙의 지시가 지방과 치안 조직에 전달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벽면 한가운데에 숫자가 떠올랐다.


90.3%


숫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회의탁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로와 불안을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대통령은 한동안 그 숫자를 바라보다 탁자에 놓인 안경을 집어 들었다.


“잘못된 것 아닙니까?”


국가전략본부장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대통령은 화면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묻잖아요. 저 숫자가 틀렸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전력 공급이 회복되거나 식량 가격이 안정되고, 경찰과 행정조직의 이탈이 멈춘다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다만 별도의 대규모 공급 회복이 없다는 조건에서 확인된 변수들을 바꿔 반복한 시뮬레이션은 가장 낮은 값도 84.7퍼센트였습니다.”


대통령의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어젯밤 거리에서 보았던 수십만 명의 삶이 전력과 식량, 실업과 치안이라는 수치로 바뀌어 떠오르더니, 이제는 그 모든 사람의 두려움과 분노 위에 하나의 확률이 놓여 있었다.


90.3퍼센트.


정부가 명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더는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소수점 아래 한 자리까지 계산되고 있었다.


창밖에서 함성이 일었다.


처음에는 강 건너에서 밀려오는 낮은 울림에 불과했지만, 같은 말이 거듭되면서 닫힌 창 너머로도 구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통령은 물러나라!”


누군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


내무장관이 밤사이 들어온 보고를 열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인간 경찰 일부가 명령을 거부하거나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거점 도시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확인됐고, 몇몇 경찰서는 더 이상 중앙의 지시를 받지 않겠다는 공동성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은요?”


국방장관이 대답했다.


“지휘체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핵심 전투부대와 군용 안드로이드, 무인전력도 아직 중앙 통제 아래 있습니다.”


대통령은 안경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미간을 눌렀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 눈꺼풀 안쪽으로 밤사이 보고 영상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경찰 방패 위에서 산산이 깨지던 유리병과 돌이 날아든 순간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진압대의 검은 선, 그 앞에서 서로에게 밀려 넘어지던 사람들이 차례로 겹쳐졌다.


창밖에서는 다시 구호가 터졌다.


“군은 거리에 내보내지 마세요. 군용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덧붙였다.


“적어도 지금은.”


국방장관이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은 화면에 남아 있는 90.3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다 정보기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마니아도 이 상황을 알고 있겠죠.”


“알고 있습니다. 현지 정보망과 통신 분석을 통해 교차 확인했습니다. 루마니아 국가안보회의에서도 헝가리의 상황을 최상위 안보 위험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쪽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정보기관장이 대답하기 전에 대통령 오른쪽에 앉아 있던 총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버티는지를 보고 있는 겁니까?”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밤을 새운 흔적은 총리의 얼굴에도 남아 있었지만, 회의가 시작된 뒤 그는 한 번도 의자 깊숙이 기대지 않았고 화면에 새로운 수치가 나타날 때마다 자료의 해당 항목을 찾아 확인하고 있었다.


정보기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현 정부가 버티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얘기가 되잖습니까. 저쪽도 전쟁을 원하지 않고 우리도 원하지 않아. 원하는 것이 같다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조금 전까지 지쳐 있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기존 계약량의 절반만 보내줘도 좋습니다. 압송시설과 송전망을 공동으로 관리해도 되고, UN이나 다른 국제기구가 양쪽의 이행을 감시하게 해도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양보는 모두 내놓으세요.”


외교장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그 침묵에서 이미 대답을 읽었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안 해봤습니까?”


“해봤습니다.”


“전부?”


“그보다 더한 조건도 제시했습니다. 장기 구매가격을 인상하고 시설 유지비를 부담하는 조건은 물론, 일부 압송시설과 연결망을 국제기구의 감독 아래 공동 운영하는 방안까지 전달했습니다.”


“그런데도 거부했습니까?”


“루마니아는 자국의 전력 수요와 가스 비축량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짧은 대답 뒤로 압송시설의 영상이 화면에 떠올랐다. 헝가리를 향해 뻗은 굵은 관들은 파괴되지 않았고 밸브와 계기판도 멀쩡했지만, 유량을 나타내는 숫자는 영에 머물러 있었다.


관은 있었다.


그 안으로 보낼 가스는 국경 반대편의 발전소와 도시들에 배정되어 있었다.


대통령은 천천히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자기들도 우리가 무너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관은 열 수 없다는 거군요.”


“루마니아도 폭염과 가뭄, 전력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자기 국민에게 돌아갈 공급을 줄여 우리에게 보냈다가 부쿠레슈티와 주요 산업도시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외교장관의 설명이 끝나자 총리가 물었다.


“기다리는 동안 좋아지는 수치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국가전략본부장이 총리를 바라봤다.


“현재 자료만으로는 없습니다.”


“루마니아의 비축량은?”


“이번 달 안에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우리 식량과 전력은 줄어들고, 경찰의 이탈은 늘어나며, 루마니아가 우리에게 내줄 수 있는 양은 늘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총리는 화면에 떠 있는 30일이라는 표시를 바라봤다.


“그러면 저걸 협상에 쓸 수 있는 한 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군요. 그 전에 우리가 합의한 내용을 이행할 힘부터 잃을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국가전략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30일 동안 현 정부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역별 통제력 상실은 그 전에 시작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총리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총리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평화를 선택하는 일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상황은 움직입니다. 우리만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고 정보기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통제력을 잃은 뒤에는 어떻게 된다고 봅니까? 식량이 완전히 떨어지거나 전력망 전체가 무너지는 것보다 먼저 정부가 기능을 잃는다면, 그 자리는 누가 차지합니까?”


정보기관장이 자료를 넘기자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선들이 다시 시간축을 따라 움직였다.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고 경찰과 지방행정 조직의 이탈이 늘어날수록 정부의 통제력은 빠르게 떨어졌으며, 정치권의 분열과 군 내부 강경파의 결집을 나타내는 선이 그 아래에서 점차 굵어졌다.


마침내 화면 중앙에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쿠데타.


창밖의 함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은 그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잠깐 낮아졌던 구호는 다른 쪽에서 다시 시작됐고, 앞선 사람들의 외침을 뒤따르는 목소리가 받아내면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정보기관장이 말을 이었다.


“루마니아가 두려워하는 것은 현재의 헝가리 정부가 아닙니다. 그들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그다음에 들어설 정부입니다.”


대통령은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현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군부 강경파가 무력 지휘권을 장악할 경우, 국내의 식량과 에너지 위기를 외부와의 충돌로 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 표적이 루마니아겠군요.”


대통령의 시선이 지도 위를 움직였다. 헝가리와 루마니아 사이의 국경 아래로 송전선과 가스관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었다.


“예. 에너지 시설과 공급망을 장악한다는 명분이 가장 직접적으로 이용될 겁니다.”


대통령은 화면에 표시된 국경을 한동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외교장관이 협상하고 에너지장관이 다시 열어야 할 선이었지만, 쿠데타라는 단어가 그 위에 놓이자 송전탑과 압송시설 뒤로 군대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루마니아가 우리 정부의 생존을 바라는 겁니까?”


“예. 현 정부가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루마니아에도 최선입니다.”


“우리가 수습하지 못하면요?”


정보기관장은 잠시 숨을 골랐다.


“루마니아군이 먼저 국경을 넘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들은 국제적으로 선제공격의 바카라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대신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국경 전력을 증강하고 방공망과 지휘시설을 분산하며, 주요 에너지 시설의 경비를 군사 수준으로 끌어올릴 겁니다.”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공격할 때를 준비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는 양쪽 모두 총을 든 채 서로를 바라보게 되겠네요.”


국방장관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국가전략본부장을 바라봤다.


“우리 쪽 분석은 어떻습니까?”


슬롯지표가 사라진 자리에 수백 개의 시뮬레이션 경로가 펼쳐졌다. 정권 붕괴와 군부 개입, 쿠데타와 국경 충돌의 순서는 조금씩 달랐지만, 군부 강경파가 지휘권을 장악한 경로에서는 붉은 선들이 루마니아 국경을 향해 집중됐다.


“현 정부가 통제력을 잃고 군부 강경파가 국가 지휘체계를 장악할 경우, 루마니아와의 군사충돌 가능성은 현재 모델에서 97퍼센트를 넘습니다.”


대통령의 입술 사이로 낮은 숨이 빠져나왔다.


“결국 전쟁이군요.”


“군부 강경파가 지휘권을 장악한다는 조건에서는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물었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자동화 군사력도 넘어갑니까?”


국방장관이 화면 위에 군 지휘체계를 띄웠다. 대통령과 국방부, 합참, 전략전력통제망으로 나뉜 인증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한 사람이 암호를 빼앗는다고 모든 전력이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전략망의 최고관리 권한과 합참 지휘권, 각 군 핵심 지휘관들의 인증이 복수로 일치해야 군용 안드로이드와 무인전력에 새로운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정상적인 지휘체계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쿠데타가 군 수뇌부 일부의 동조 아래 이루어지고, 지휘통제센터와 인증권한을 동시에 장악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계는 어느 정부가 합법적인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요구된 권한이 모두 일치하면 새로운 명령을 따릅니다.”


대통령은 화면 속 인증선들을 바라봤다.


“지금 우리가 통제하는 기계들이 한 달 뒤에는 이 정부를 무너뜨리거나 국경을 넘는 데 쓰일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가능합니다.”


그때 총리가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쿠데타를 막는 데 성공하더라도 지금의 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구도 바로 답하지 않자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군부가 선동해서가 아닙니다. 전기가 끊기고 공장이 멈췄으며, 물과 밀가루를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강경파 몇 명을 체포한다고 발전소에 연료가 생기거나 비축창고에 곡물이 쌓이지는 않습니다.”


내무장관이 굳은 얼굴로 총리를 바라봤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총리는 대통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30일 안에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쿠데타가 일어날 이유가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통령은 한동안 총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호전적인 목소리도, 승리를 장담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총리 앞에 펼쳐진 자료에는 국경의 군사시설보다 국내의 전력 배정과 식량 비축 현황이 먼저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총리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가능한 선택을 모두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이 끝난 뒤에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창밖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대통령이 고개를 돌리자 강 건너 건물 사이로 검은 연기가 새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에 청소차가 지나갔던 도로였다. 멀리서는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길가에 멈춘 차량 한 대의 창문 밖으로 불길이 치솟는 것은 보였다.


그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다 다시 지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루마니아에서 시작된 공급망 하나가 국경을 넘어오다 붉은색으로 끊겨 있었다.


대통령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무엇을 물으려는지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지만, 먼저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 뒤 대통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먼저 움직이면?”


회의탁자를 둘러싼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모였다.


대통령은 자신이 방금 입 밖으로 꺼낸 말을 되씹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국가전략본부장을 바라봤다.


“분석했을 것 아닙니까.”


“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슬롯지표와 통제력 상실 시뮬레이션이 사라졌다.


유럽 동부의 전술지도가 나타났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루마니아는 공급망 반대편에 있는 이웃 나라였다. 외교장관이 전화를 걸어 밸브를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상대 정부가 자국 사정을 이유로 거절하던 나라였다.


이제 같은 지도의 국경선 위로 붉은 화살표들이 나타났다.


“루마니아가 전시 대비를 완료하기 전에 무인 항공전력으로 주요 방공망과 지휘통신시설을 동시에 타격하고, 국경에 배치된 군용 안드로이드 기계화부대가 서부의 에너지 거점과 연결망을 확보하는 제한전 시나리오입니다.”


붉은 화살표들은 국경을 넘어 주요 시설을 향해 뻗어갔지만 부쿠레슈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치 전쟁조차 지도 위에서는 필요한 만큼만 잘라낼 수 있다는 듯, 선들은 발전시설과 가스 저장·압송 거점 주변에서 가지런히 멈춰 있었다.


대통령이 물었다.


“초기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요?”


“81.6퍼센트입니다.”


화면 한쪽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81.6%


대통령은 그 숫자를 바라보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90.3퍼센트로 시선을 옮겼다.


현 정부의 국가 통제력 상실 가능성.


90.3퍼센트.


선제공격의 초기 작전 성공 가능성.


81.6퍼센트.


국가전략본부장이 대통령의 시선이 두 숫자 사이를 오가는 것을 보고 덧붙였다.


“두 수치는 직접 비교할 수 없습니다. 90.3퍼센트는 30일 안에 현 정부가 국가 통제력을 상실할 가능성이고, 81.6퍼센트는 전쟁을 시작했을 때 초기 군사목표를 확보할 가능성일 뿐입니다. 시설을 점령한 뒤 전쟁이 얼마나 이어질지, 루마니아가 언제까지 저항할지, 주변국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대통령은 그 경고를 들었지만 두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81.6퍼센트는 언제까지 유지됩니까?”


본부장이 시간에 따른 변화를 화면에 띄웠다.


붉은 선은 처음 몇 시간 동안만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하루를 넘긴 지점부터 빠르게 꺾였다.


“루마니아가 아직 전면적인 전력 분산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나온 값입니다. 저들이 쿠데타 위험을 근거로 방공망과 지휘시설을 옮기기 시작하면 성공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현재 정보로는 24시간 안에 일부 전력의 분산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통령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30일이라고 했잖습니까.”


“그것은 정부 통제력에 대한 분석 기간입니다.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초기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도 남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총리가 화면의 시간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 달을 기다렸다가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이군요.”


대통령은 그를 보지 않았다.


“아직 전쟁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압니다.”


“그런데 총리께서는 이미 시작된 전쟁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총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대답했다.


“저는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전쟁을 없애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루마니아 사람들도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바카라임이 없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총리는 화면 속 루마니아 서부의 도시들을 바라봤다. 국경 가까운 아파트와 공장, 송전소와 압송시설 위로 군사표식이 겹쳐 있었다.


“하지만 기다렸을 때 죽을 사람들도 같은 화면 위에 올려주십시오. 부다페스트에서 물을 구하지 못하는 아이와 전력이 끊길 병원의 환자, 쿠데타 뒤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죽을 병사와 민간인도 함께요. 바카라임이 없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은 대꾸하지 못했다.


국가전략본부장이 두 개의 시뮬레이션을 나란히 띄웠다.


하나는 현 정부가 지금 제한 작전을 시작하는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정부 붕괴와 쿠데타를 거친 뒤 양국이 전면전에 들어가는 경우였다.


군 병력 손실.


기반시설 파괴.


민간인 사상자.


피란민 예상 규모.


정확한 숫자 대신 예측 범위가 넓게 펼쳐졌지만, 두 경우의 차이는 분명했다. 양국이 모두 대비를 마친 뒤 전면전이 시작되는 경우, 군인과 민간인의 예상 사상자는 즉시 시작되는 제한 작전보다 2.4배에서 3.1배까지 늘어났고, 피란민은 세 배를 넘을 가능성이 높았다.


본부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 붕괴 뒤 실제로 전면전이 벌어진 경우와 비교한 것입니다.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피해가 발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한 작전 역시 확대될 수 있고, 그 경우에는 피해 추정도 달라집니다.”


대통령의 눈은 민간인 사상자라는 항목에 멈춰 있었다.


방공망 주변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송전소와 압송시설에서는 누군가 교대시간을 기다리며 일하고, 국경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있을 것이다. 헝가리의 실업률도, 부다페스트의 폭동도, 거리에서 경찰에게 날아간 돌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바카라임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의 머리 위로 자신이 무인기를 보내야 한다.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의실 어디에서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눌렀다. 새벽부터 이어진 피로 때문인지, 화면의 흰빛 때문인지 눈꺼풀 안쪽이 뜨겁게 욱신거렸다.


한동안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사이렌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이렌이 사라진 자리에 구호가 다시 밀려들었다.


“대통령은 물러나라!”


대통령이 손을 내렸을 때 목소리에는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힘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우리가 지금 움직이는 경우보다, 정부가 무너진 뒤 시작되는 전쟁에서 사람이 두세 배 더 죽을 수 있다는 겁니까?”


“두 전쟁을 지금 설정한 조건으로 비교하면 그렇습니다.”


“예측이 틀릴 수도 있겠죠.”


“그렇습니다. 양쪽 시나리오 모두 오차가 큽니다.”


“그런데도 이 숫자를 보여주는군요.”


본부장은 고개를 숙였다.


“결정에 필요한 자료라고 판단했습니다.”


대통령은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지금 움직이면 자신이 전쟁을 시작한다.


기다리면 정부가 통제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고, 그 뒤 지휘권을 장악한 사람들이 군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때쯤이면 루마니아도 방공망과 전력을 분산하고 국경을 요새화했을 것이며, 양쪽 모두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전쟁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의 몸과 삶을 부술 수 있었다.


화면에는 두 개의 전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명령해야 시작되는 전쟁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명령이 더는 닿지 않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이었다.


그 사이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했다.


그러나 그 길을 찾을 시간을 묻기도 전에 창밖에서 다시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리가 조용히 물었다.


“초기 시설을 확보하면 공급을 재개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에너지장관이 자료를 확인했다.


“발전시설과 가스 저장·압송 거점뿐 아니라 국경까지의 연결망을 함께 확보해야 합니다. 시설이 크게 파괴되지 않고 운영 인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라면, 전력은 사흘에서 닷새, 가스는 압송망 점검을 포함해 일주일 안에 제한 공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산업용 전력은?”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일부 공장은 열흘 안에 재가동할 수 있습니다.”


“정부 통제력 상실 가능성은 얼마나 내려갑니까?”


국가전략본부장이 새로운 조건을 모델에 입력하자 90.3이라는 숫자가 흔들리며 낮아졌다. 그러나 계산이 끝난 뒤에도 총리는 그 결과를 보고 기뻐하지 않았다. 그가 확인한 것은 전쟁으로 확보한 공급이 헝가리를 얼마나 오래 버티게 할 수 있는가였다.


대통령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의실 너머로 아침의 부다페스트가 보였다. 어젯밤 불타던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고, 다뉴브강을 건너는 다리 위로 피켓을 든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높은 곳에서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아 모두 작은 점처럼 보였지만, 대통령은 그 점 하나하나가 물을 사고 밀가루를 구하며 멈춘 공장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조금 전 불붙었던 차량 위로 아직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바람이 연기를 옆으로 밀어낼 때마다 도로의 일부가 드러났고, 그 너머 광장에서는 머리 위로 든 피켓들이 같은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대통령은 물러나라!”


이번에는 구호가 더 또렷했다.


그들은 자신이 물러나면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전기가 돌아오고, 공장이 다시 열리고, 아이에게 마실 물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밤이면 가족이 같은 식탁에 앉고,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가 이어지기를 원했다.


대통령은 창틀에 손을 얹었다.


자신이 물러난 뒤에도 저 관이 열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대신한 사람이 같은 지도를 펼쳐놓고 더 늦은 시간에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아직 협상할 시간은 있습니다.”


뒤에서 국방장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통령은 창밖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밖의 저 사람들에게 한 달을 더 기다려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국방장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돌아섰다.


“저들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계산하고 있고요.”


총리가 대통령을 바라봤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전쟁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총리께서 그 말을 하니 뜻밖이군요.”


“협상이 가능하다면 해야 합니다. 다만 협상이 실패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힘까지 버리면서 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은 자리로 돌아왔다. 탁자 위에 내려놓았던 안경을 쓰고 외교장관에게 말했다.


“루마니아 정부에 다시 연락하세요. 오늘 안에 정상회담을 요청합니다.”


“예.”


“기존 공급량의 일부라도 좋고 공동관리도 좋습니다. 국제기구의 보증도 받으세요.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테이블 위에 올립니다. 관리권이든 가격이든,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먼저 내놓으세요.”


외교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한 달을 버틸 만큼만 열어달라고 하세요. 영구적인 공급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길을 찾을 시간만 달라고, 부탁해서라도 밸브를 열어달라고 하세요. 체면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사과할 것이 있다면 사과하고, 나중에 대가를 치르라면 치르겠다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외교장관이 자료를 챙겼다.


대통령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국방장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관.”


“예.”


이번에는 다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의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조금 움직이다 멈췄고, 유리 표면에 비친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창밖에서 다시 함성이 일었다.


“작전계획도 준비하세요.”


자료를 챙기던 외교장관의 손이 굳었다. 국방장관 역시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준비만 하세요. 당장은 실행하지 않습니다. 외교장관의 협상이 끝나기 전에는 어떤 부대도 국경을 넘지 않습니다. 타격 명령도 별도로 승인하겠습니다.”


잠시 후 국방장관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복도의 밝은 빛이 바닥을 길게 가르고 들어왔다.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은 거의 동시에 밖으로 나가 몇 걸음을 나란히 걸었다. 한 사람의 손에는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안이 들려 있었고, 다른 사람의 단말기에는 아직 승인되지 않은 작전계획이 떠 있었다.


복도 끝에서 길이 둘로 갈라졌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지만, 어떤 인사도 오가지 않았다.


외교장관은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복도 끝에서는 이미 부쿠레슈티와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참모들이 통신자료와 협상안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방장관은 왼쪽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작전통제실의 두꺼운 문이 열렸고, 대기 중이던 장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 벽면 전체를 덮은 동유럽 전술지도가 밝아졌다.


헝가리와 루마니아 사이로 길게 뻗은 국경선.


그 위로 아직 실행되지 않은 붉은 화살표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회의실에 남은 총리는 두 장관이 나간 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대통령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총리는 말을 걸지 않은 채 화면에 남아 있는 30일과 24시간을 차례로 확인했다. 두 숫자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회의실의 시계에서는 그사이에도 시간이 흘렀다.


한쪽 복도에서는 전쟁을 막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전쟁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제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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