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절
《신의 로그》
PART 3 — 〈몽골〉
제13화 〈사절〉
오트라르에서 살아남은 상인이 있다는 소식이 진영에 도착했다.
남자는 여러 교역로를 거쳐 동쪽으로 이동하다 몽골의 초계병에게 발견되었다. 자신이 오트라르로 향했던 상단의 생존자라고 밝히자, 초계병들은 더는 제 힘으로 걷기조차 어려운 그를 말에 태워 본영으로 데려왔다.
돌아온 기병들 사이에 낯익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에센은 하던 일을 내던지고 달려갔다.
그러나 말 위에서 병사의 어깨에 기댄 채 진영으로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도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살이 빠진 얼굴에는 광대뼈가 날카롭게 솟아 있었고, 햇볕과 먼지에 거칠어진 입술은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여러 날 갈아입지 못한 옷에는 검게 굳은 피와 흙이 엉겨 붙어 본래의 색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병사 두 명이 양옆에서 붙잡아주며 그를 말에서 내렸다. 땅에 닿은 다리는 몸의 무게를 받아내지 못하고 힘없이 휘청거렸고, 병사들이 급히 팔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릎부터 꺾였을 것이다.
그제야 에센은 알아봤다.
마리암의 아버지였다.
앞으로 나아가던 에센의 걸음이 그대로 멎었다.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순간부터 에센의 시선은 이미 그의 어깨 너머를 훑고 있었다. 함께 떠났던 상인도, 길게 이어지던 낙타도, 짐을 가득 실은 말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로 혹시 뒤늦게 나타날 얼굴 하나를 찾으며 몇 번이나 시선을 옮겨보았지만, 먼지를 뒤집어쓴 기병들 뒤에는 빈 초원만 길게 펼쳐져 있었다.
마리암은 없었다.
가슴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아직 아무 말도 듣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자신보다 먼저 답을 알아버린 듯했고, 에센은 바싹 마른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마리암은요?”
남자의 눈꺼풀이 떨렸다.
에센은 남자의 뒤편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지금 눈앞에 없는 것뿐일 수도 있었다. 다른 상인들과 뒤에서 오고 있거나, 다쳐서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몰랐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마리암은 어디에 있어요? 함께 돌아온 것 아닙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못한 채 품속으로 손을 넣었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지 몇 번이나 옷자락을 헛짚다가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찾아냈고, 꽉 쥐고 있던 주먹을 에센의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펼쳤다.
붉은 홍옥수 세 알이 떨어졌다.
에센은 그것들을 내려다보다 자신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리암이 떠나기 전 직접 묶어준 홍옥수 팔찌가 그곳에 있었다. 떠나던 아침에는 같은 짜임과 같은 빛깔의 팔찌가 마리암의 손목에도 감겨 있었다.
남자의 갈라진 입술이 몇 번이나 움직였지만, 목구멍에 걸린 말을 끌어내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아이가…… 나를 살렸다.”
에센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남자의 눈은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피와 흙으로 얼룩진 얼굴에서 초점이 아득하게 멀어졌고, 에센은 무슨 말을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리암이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에 남겨졌는지,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을 꺼내는 순간, 눈앞의 남자가 겨우 빠져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에센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닫혔다.
손바닥 안에서 홍옥수 세 알이 서로 부딪쳤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
그날 밤 에센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거의 사라진 뒤에도 불 가까이에 혼자 앉아 있었다.
장작이 타들어가며 붉은 숯으로 무너질 때마다 작은 불티가 밤공기 속으로 떠올랐고, 멀리에서는 말들이 코를 푸는 소리와 발굽으로 땅을 긁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평소의 에센이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말들의 상태를 살폈겠지만, 그날은 불빛 너머로 한 번도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소매를 걷었다.
마리암과 나누어 찬 홍옥수 팔찌가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마리암이 직접 손목에 묶어준 뒤 한 번도 풀어본 적이 없는 매듭이었다. 고개를 숙인 채 끈을 조이던 손가락이 떠올랐고, 에센은 그 손길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듯 손톱 끝으로 매듭을 조금씩 밀어냈다.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힘으로 잡아당겼겠지만 끈이 끊어질까 두려워 몇 번이나 손을 멈췄다가 다시 만졌다. 한참 뒤에야 단단히 조여 있던 매듭이 느슨해지면서 붉은 구슬들이 손목을 떠나 손바닥 위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에센은 작은 팔찌를 오래 바라봤다.
처음 만난 날, 말이 말린 살구를 훔쳐 먹는 바람에 자신을 말도둑이라 부르던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몇 해 뒤 다시 만났을 때 키가 컸다는 말 대신 늙었다고 놀리던 얼굴과, 장터를 찾아갈 때마다 기다린 적 없다는 듯 눈을 흘기면서도 결국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모습도 뒤따랐다.
마지막으로는 낮은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있던 저녁이 떠올랐다.
돌아오면…… 나랑 살자.
그 말을 꺼내기까지 자신은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았고, 마리암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들더니 마침내 아주 짧게 대답했다.
응.
에센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그러나 웃음은 끝까지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는 다른 손을 펼쳤다.
마리암의 아버지가 가져온 홍옥수 세 알이 불빛을 받으며 손바닥 위에서 붉게 빛났다. 자신이 차고 있던 구슬과 같은 돌이었지만, 그중 하나는 어디에 세게 부딪쳤는지 가장자리가 조금 깨져 희끗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에센은 그 흠집을 손톱 끝으로 한 번 만졌다.
손끝에 걸리는 거친 감촉이 아주 작았는데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에센은 팔찌의 매듭을 완전히 풀어 끈 끝을 펴냈다. 매듭에 쓰였던 부분까지 곧게 늘인 뒤, 마리암의 첫 번째 구슬에 끈을 밀어 넣었다. 두 번째 구슬도 그 뒤를 따랐고, 가장자리가 깨진 마지막 구슬이 자신의 구슬 곁에 닿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손목에 나뉘어 있던 홍옥수가 하나의 끈 위에서 맞닿았다.
에센은 조금 길어진 팔찌를 다시 손목에 감았다. 마리암이 만들어주었던 매듭을 그대로 되살리려 했지만 손가락이 몇 번이나 멈췄고, 결국 남은 끈을 짧게 잡아 두 번 겹쳐 묶었다.
붉은 구슬 세 알이 더해진 팔찌는 전보다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에센은 그것을 한동안 내려다보다 소매를 끌어내려 모두 가렸다.
그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이 시간이면 마지막으로 말들의 다리와 발굽을 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에센의 발걸음은 말들이 묶여 있는 곳을 지나, 병사들의 무기와 갑옷이 놓인 천막으로 향했다.
───
다음 날 아침, 수부타이는 자신의 말을 살피러 왔다가 몇 걸음을 남겨두고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에센이 말 한 필에 안장을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수부타이의 말을 돌보고 수없이 안장을 얹어온 아이였으니, 말의 등에 안장깔개를 펴고 그 위에 안장을 올린 뒤 배 아래로 손을 넣어 복대를 잡아당기는 동작에는 눈으로 확인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익숙한 리듬이 배어 있었다.
달라진 것은 에센의 몸에 걸려 있는 것들이었다.
허리에는 칼이 있었고 등에는 활과 화살통이 걸려 있었다.
수부타이는 아무 말 없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에센을 바라봤다.
에센은 복대를 당긴 뒤 말의 몸을 따라 손을 움직여 깔개가 접힌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허리에 찬 칼집은 허벅지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비스듬히 놓여 있었고, 활도 말을 달릴 때 걸리적거리지 않을 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두 자신이 가르친 것이었다.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아도 손이 먼저 제자리를 찾았다. 수부타이는 에센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아주 조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에센이 몸을 돌리자 허리의 칼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수부타이의 시선이 그곳에서 멎었다.
칼을 차는 법도 자신이 가르쳤다. 붙잡힌 손을 빼는 법과 가까이 달려든 상대를 밀어내는 법, 말에서 떨어졌을 때 몸을 웅크리는 법도 가르쳤다. 전쟁터를 따라다니는 아이가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먼저 칼을 뽑으라고 한 적은 없었다.
에센은 복대를 마지막으로 당긴 뒤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수부타이는 입을 열려다가 에센의 얼굴을 조금 더 바라봤다.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눈가가 거칠었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어릴 때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집을 부리던 얼굴과 닮아 있었으나, 이번에는 무슨 말을 기다리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수부타이가 가까이 다가갔다.
에센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에센의 무장을 훑어보다 어깨를 가로지른 화살통의 끈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화살통이 너무 낮다. 이대로 달리면 등에서 흔들린다. 급하게 뽑을 때 손이 헛가면 네가 먼저 맞아.”
끈을 위로 당겨 길이를 줄이고 느슨한 부분을 조였다. 에센이 몸을 돌리자 화살통이 조금 움직였고, 수부타이는 다시 끈을 잡아당겼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은 곧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손바닥 아래에는 제법 단단해진 어깨가 있었다. 언제 이렇게 넓어졌는지, 수부타이는 잠시 그 어깨를 누른 채 에센의 얼굴을 바라봤다.
“장군님.”
그제야 손을 놓았다.
“몸을 한 번 더 돌려봐라.”
에센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활도 화살통도 걸리는 곳이 없었다. 수부타이는 그것을 확인하고서야 한 걸음 물러났다.
에센의 손이 허리의 칼자루에 닿았다.
수부타이는 그 손을 잠깐 내려다봤다가 자신의 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전장에서는 내 곁을 벗어나지 마라.”
“예.”
수부타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에센도 더 말하지 않고 소매를 끌어내렸다. 그 안에서 마리암의 구슬 세 알이 더해진 팔찌가 손목에 닿았다.
───
오트라르에서 벌어진 일이 칭기즈 칸에게 보고되자 에센은 곧 서쪽으로 군대를 움직이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몽골의 보호 아래 호라즘으로 들어간 상단이 학살당했고, 그들이 가져간 막대한 재산도 모조리 빼앗겼다. 약 사백오십 명이라는 숫자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에센은 그 안에 마리암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적어도 이제는 칭기즈 칸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겼다.
명령은 실제로 내려왔다.
그러나 에센이 기다리던 명령은 아니었다.
칭기즈 칸은 군대가 아니라 사절을 보내기로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에센은 잘못 들었다는 듯 수부타이를 바라봤다.
“상인들을 죽인 호라즘에 사람을 또 보낸다는 겁니까?”
수부타이는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돌려가며 촉의 끝이 휘어지거나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그래. 칸께서는 먼저 사절을 보내 오트라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답을 들으실 생각이다.”
“무슨 답이 더 필요합니까? 장사하러 간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까지 빼앗았습니다. 마리암도 그곳에서 죽었는데, 이제 가서 무엇을 더 확인하겠다는 겁니까?”
말이 빨라질수록 에센의 목소리에는 자신도 감추지 못하는 분노가 묻어났다. 예전 같았으면 칸의 결정에 의문이 생겨도 수부타이 앞에서 이 정도까지 밀어붙이지 않았겠지만, 소매 아래에는 마리암의 홍옥수 세 알이 함께 꿰여 있었고 이제 에센에게 오트라르는 지도 위의 먼 도시가 아니었다.
수부타이는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을 모으고 군대를 움직이면 되니까.”
“그렇다면 시작하면 되잖습니까.”
“끝내는 것은 다르다.”
에센이 입을 다물었다.
수부타이는 바닥에 놓인 화살 하나를 집어 다른 것들과 나란히 맞추며 말을 이었다.
“상인들을 죽인 것이 오트라르 총독의 독단인지, 호라즘 술탄의 뜻인지 아직 확인해야 한다. 술탄이 바카라임자를 넘기고 빼앗은 재산을 돌려준다면, 한 사람의 죄 때문에 호라즘 전체와 싸울 이유는 없어.”
에센도 그 말의 뜻은 알아들었다.
전쟁이 시작되면 오트라르의 병사들만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수많은 전장을 따라다닌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천, 수만의 병사가 움직이면 그들을 먹일 가축과 곡식이 필요했고, 성 하나를 공격하면 그 안에서 장사하던 사람과 밭을 갈던 사람, 전쟁이 왜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함께 휩쓸렸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다면 사절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곧장 오트라르로 가서 마리암을 죽인 자들을 찾겠습니다.”
에센의 손가락이 소매 아래의 팔찌를 눌렀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요.”
수부타이는 분노로 굳은 에센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봤다. 질바카라하는 기색도, 달래려는 표정도 없었다.
“그래서 네가 칸이 아닌 거다.”
에센은 더 말하지 못했다.
수부타이는 오트라르의 총독과 술탄을 나누어 말했지만, 자신에게는 둘 다 마리암이 돌아오지 못한 땅의 사람들이었다.
바카라임자를 넘겨받는다고 해서 마리암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쟁을 벌이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에센은 그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소매 아래의 구슬만 손가락으로 세게 눌렀다.
───
칭기즈 칸의 요구는 복잡하지 않았다.
상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은 바카라임자를 넘겨라.
오트라르의 총독 이날축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 요구를 가지고 서쪽으로 떠날 사절은 세 사람이었다. 무슬림 대표 한 사람과 그를 수행할 몽골인 두 사람이 말에 올랐고, 칭기즈 칸은 당장 서쪽으로 군대를 보내는 대신 세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맡겼다.
에센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이전 같았으면 사절들이 떠나는 광경에 오래 시선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허리에는 칼이 있었고 등에 활이 걸려 있었으며, 소매 아래에서는 자신의 팔찌에 더해진 마리암의 홍옥수 세 알이 손목의 움직임을 따라 다른 구슬들과 부딪치고 있었다.
세 필의 말이 서쪽으로 움직였다.
진영의 천막들이 뒤로 멀어지고 초원의 낮은 언덕을 하나 넘자 사람의 모습부터 작아졌다. 조금 뒤에는 말과 기수가 한 덩어리의 검은 점처럼 보이다가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에센은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한동안 서쪽을 바라봤다.
───
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몽골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군대는 가축에게 먹일 풀이 있는 곳을 따라 조금씩 자리를 옮겼고, 멀리 떨어진 부대에서는 전령들이 쉼 없이 오갔다. 장수들은 병력과 말의 상태를 점검했으며 병사들은 활줄을 갈거나 무뎌진 화살촉을 손질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진영이었다.
그러나 서쪽으로 사절을 보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전령 하나가 들어올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찾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손을 움직였지만, 진영 전체가 보이지 않는 소식 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었다.
서쪽에서 기병이 나타난 것은 어느 날 오후였다.
먼 초원에서 올라온 초계병의 신호가 차례로 본영까지 전해지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모였다. 말을 손질하던 에센도 손을 멈춘 채 햇빛과 먼지 속에서 천천히 커지는 기병들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거리 때문에 몇 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에센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세 사람이 떠났다.
돌아오는 사람은 둘이었다.
두 필의 말이 진영 가까이 들어왔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번졌다. 에센은 무엇이 이상한지 알아차리기까지 잠깐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 모두 살아 있었고, 눈에 띄는 큰 상처도 없었다. 그러나 떠날 때 턱과 뺨을 덮고 있던 수염이 흉하게 잘려나가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대표 사절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린 뒤 주변의 시선을 피하지도,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은 채 곧장 칭기즈 칸의 게르로 향했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조금 전까지 퍼져 있던 웅성거림이 차례로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잘려나간 수염과 비어 있는 한 사람의 자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수부타이는 다른 장수들과 함께 게르 안으로 들어갔고, 에센은 밖에 남았다.
두꺼운 펠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쪽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에센은 게르 입구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기다렸다.
───
게르 안은 조용했다.
칭기즈 칸은 돌아온 두 사람의 보고를 한 번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사절이 술탄 앞에서 어떤 말을 전했고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대표가 어떻게 붙잡혔으며 두 사람이 어떤 모욕을 당한 뒤 돌아오게 되었는지까지 모두 들은 뒤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좀처럼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호라즘의 술탄 무함마드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날축을 넘기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칭기즈 칸의 말을 전하러 간 대표 사절을 죽였고, 함께 간 두 몽골인의 수염을 깎아 모욕한 뒤 돌려보냈다.
보고가 끝난 뒤에야 칭기즈 칸이 물었다.
“그자가 내 사절을 죽였다는 말이냐?”
수염이 잘린 사내가 바닥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칸. 대표로 갔던 사람은 그곳에서 죽었고, 저희 두 사람만 이 모습으로 돌아가라며 풀어주었습니다.”
칭기즈 칸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오트라르의 상단이 학살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그는 곧바로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 상인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은 바카라임자를 넘기라고 요구했고, 그 말을 전할 세 사람을 서쪽으로 보냈다.
한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
두 사람은 수염이 잘린 채 돌아왔다.
이제 그가 보낸 상인도, 그가 건넨 말도, 그 말을 전한 사람도 모두 같은 곳에서 거부당했다.
게르 안에 앉은 장수들은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화로에서 타던 마른 연료가 안쪽으로 무너지며 붉은 불티를 잠깐 튀겼고, 그 작은 소리가 들릴 만큼 침묵이 깊어진 뒤에야 칭기즈 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군에 알려라.”
그가 장수들을 둘러봤다.
“전쟁을 준비한다.”
───
수부타이가 게르 밖으로 나왔을 때 에센은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명령이 내려졌는지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묻지 않았다.
수부타이가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백호장들을 불러야겠다. 따라와라.”
두 사람은 말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함께 걸어갔고, 에센은 늘 그랬듯 수부타이의 말부터 끌어내 등에 손을 얹어 상태를 살폈다. 안장깔개를 펴고 그 위에 안장을 올린 뒤 배 아래로 복대를 넘겨 힘껏 당겼으며, 굴레와 등자의 길이까지 차례로 확인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없이 반복해온 손놀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부타이의 말을 모두 준비한 뒤에도 에센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옆에 묶여 있던 자신의 말을 끌어냈다.
안장깔개를 펴고 안장을 얹은 뒤 배 아래로 손을 넣어 복대를 당겼다. 활을 등에 걸고 화살통을 수부타이가 고쳐준 높이에 맞춘 다음, 허리의 칼을 손으로 한 번 눌러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소매 아래의 팔찌를 만졌다.
자신의 홍옥수 사이에 더해진 세 알이 손끝에 닿았다. 가장자리가 깨진 한 알은 손가락이 지날 때마다 작은 흠이 걸렸고, 에센은 그 거친 자리를 찾은 뒤에야 손을 놓았다.
수부타이가 먼저 말에 올랐다.
에센도 등자에 발을 걸고 안장 위로 몸을 끌어올렸다. 두 필의 말이 나란히 서자 초원의 바람이 말갈기와 두 사람의 옷자락을 같은 방향으로 밀었고, 에센의 소매 아래에서는 한 줄로 이어진 홍옥수들이 손목에 가볍게 부딪쳤다.
수부타이를 따라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수없이 그의 뒤를 따라 전쟁터를 오갔고, 전투가 끝나면 피와 땀에 젖은 말을 받아 고삐를 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에센의 허리에도 칼이 있었다.
제1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