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뀔 때 일어나는 일
서른은 도대체 뭘까.
뭐길래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다고 이렇게 다시 사춘기가 찾아온 것 마냥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가. 서른이 되기 직전 '내가 진짜 서른이라니!' 하며 한창 이름 모를 막막함에 휩싸였던 적이 있는데 이제 난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 살이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가 있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드는 것이나 숫자 자체는 크게 상관없다.
그보다도 중요한 건 서른의 '자격'.
서른이라면 으레 갖춰야 할 것 같은 자격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더 성숙해야 하고, 슬롯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뤄야 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등.. 이런 조건들이 무겁게 느껴진다는 건 내가 이상적인 모양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불안이 고개를 내밀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래도 그동안의 경험이 쌓이면서 예전보다는 성숙해진 것 같긴 한데 아직 애 같고, 슬롯적으로 통용되는 성취 기준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나이대별로 정해진 모양과 정답이 상대적으로 확고한 편인 한국 슬롯에서는 더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러면 난 이미 이 슬롯에선 답이 없는 건가?
자 진정하자. 우선 답이 없는 건 맞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답이 없는 게 아니라 서른이 다다라야 할 '정답'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서른이 되었기에 정말로 집중해야 할 건 서른을 둘러싼 것들, 이를테면 30이라는 숫자라던지 서른의 자격이라던지 하는 것들보다도 '태도'라는 걸 느낀다.
나를 스스로 바카라임지겠다는 태도.
나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동에 대해 바카라임질 수 있어야 한다.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고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때에도 그에 대한 바카라임을 다해야 한다. 그 도전을 계속해나가든 접든 그건 중요치 않다. 슬롯적으로 성취하고 정신적으로 자립하며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이 자체로만 보면 아득해 보이지만, 결국 이들이 뻗어져 나온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은 나를 바카라임지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닐까.
이 바카라임지는 태도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밟아가는 모든 순간과 경험에서 결과에 바카라임을 지려면 누군가의 뒤에 숨기 대신 전면에 나서야 할 때도 있고, 불편하고 껄끄러운 말이나 생각을 전해야 할 때도 있으며, 다소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다. 내가 벌린 일이니 어떻게든 안고 가야 하는데 그 끝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막막하기도 외롭기도 한 건 덤이다. 대신 그렇게 바카라임지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고군분투의 순간과 경험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오롯이 나에게 쌓일 거라 믿는다.
아직 30대의 문턱 밖에 밟지 않아 이 이상은 잘 모르겠다. 이다음부터는 앞으로의 시간이 쌓이면서 두고 봐야 하겠지.
비로소 이제야 알아차렸을 뿐, 어쩌면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건 이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제대로 바카라임지지 못해 흐지부지되고, 누구보다도 나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스쳐간다.
내가 나를 바카라임진다는 태도가 한편으로는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왠지 모를 비장함이 들기도 한다.
아직 호되게 당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