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게워내고 채워낸 복국

바다가 그저 바다로 보이던 날

by블루버드

자려고 누웠을 때 아무 걱정이 안 들면 그게 행복이란다. 모 연예인이 한 말이던가, 꽤나 공감된다. 이런 행복 가지기란 쉽지 않다는 건 모든 어른이 알 테다. 근 몇 년 사이 이런 시절을 딱 몇 주 간 가져보았는데, 지금 다니는 회사의 최종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입사할 때까지였다. 이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할 새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혼자 부산으로 떠나기도 했다. 3박 4일 일정이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은 많지 않았다. 부산에서 여러 큰 행사가 열렸던 때다. 나와 비슷한 문화 감도를 가진 친구들 다수도 혼자 부산에 와 있었다. 그 덕에 혼자 놀고 싶을 땐 마음껏 혼자 놀았고 밥친구 술친구가 필요할 땐 이들과 시간을 조율해 부산 어디선가 만나 어울렸다. 타지에서 한 신기한 경험이기도 하다.

나 혼자 락페스티벌에 가는 날 아침이었다. 마찬가지로 부산에 있던 한 학교 후배와 아침 식사를 하자고 번개 약속을 잡아 해운대 금수복국에서 만났다. 식사를 하려고 자리에 앉...지 못하고 바로 화장실부터 갔다. 전날 또 다른 친구, 동아리 후배와 서면에서 엄청나게 과음한 탓에 손쓸 새 없이 숙취가 밀려온 것이다. 식사를 하기도 전에 속을 게워냈다. 이런 상태에서 뭘 먹을 수나 있을까.

그래도 아침부터 불러내 만났으니 먹어야 하지... 하며 국물부터 조금 먹어봤는데 웬걸. 복국은 어떤 음식과도 달랐다. 아주 맑고 살짝 꼬릿한 진한 향의 육수, 거기에 통통한 콩나물과 갓 숨 죽은 미나리. 모두 해독에 특효였던 것이다. 뭘 마시기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복국은 끼니가 되어주는구나. 국물부터 조금씩 마시다가 콩나물 건져먹고, 그러다 복어 살도 간장 소스에 콕콕 찍어먹고, 밥을 반술씩 떠서 국물에 살짝 담가 먹다 보니 거의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밥은 내가 샀다. 후배는 입사 축하한다며 자기가 조만간 꼭 내 뒤를 따라 기자가 될 거라 했다. 네가 반드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추억이다 S야. 네팔에서 취재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지?


복국님은 게다가 먹고 뒤탈도 없었다. 복어란 얼마나 멋진 음식인 건가. 복어의 독을 감수한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이 같은 행복은 없었을 테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복어식용사에 빗대기엔 아주 적합하진 않지만 일단 지금 그 말이 떠오르네. 나는 지금 낙 속에 있다. 해운대 해변 앞 돌계단에 혼자 턱을 괴고 앉아 이렇게 생각했다. 아 평온하다. 행복해. 더 이상 시험도 공채도 없다.

합격, 취업, 어떤 성공들은 성취해 내는 성과다. 열심히 노력해야만 기쁘게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여러 운도 따라줘야 하고 시기가 맞아야 한다. 나와 가족의 건강이 기본으로 담보돼야 한다. 조력자 없이는 모든 게 어렵다. 뒷받침 돼야 하는 조건은 따지자면 수도 없이 많다. 하필 이 모든 게 맞아떨어져서 내가, 마침내, 가장 원하던 회사로의 입사를 앞두고 있단 사실이 정말 좋았다. 비로소 평온했다. 바다에 안겨있는 듯하면서도 온 바다를 품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바다를 바라보아도, 파도를 '역경'으로 대체해 생각하며 '그래 내가 다 이겨내자', 으레 하던 이런 식의 생각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바다가 그냥 바다로만 보였다, 자려고 누워서 그냥 잠드는 사람처럼. 신기한 일이었다.


입사 전 나는 사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다만 전에 없이 평온하게만 했다. 크고 작게 이기고 싶었던 사람들. 갈등하던 사람들. 감사한 사람들과 미안한 사람들. 돌이켜보니 내가 잘못했던 사람들. 도저히 용서 안 되던 사람들. 이해도 안 되고 이해하기도 싫던 사람들. 모두모두 잔잔한 마음속에서 하나씩 곱씹어보곤 무탈히 흘려보냈다.

이렇게 0에 가까운 마음으로, 다만 조금 들뜨고 긴장된 기분으로 입사했던 것 같다. 겨우 2년 전이다.




글, 사진: 블루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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