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가 끝나고서야, 오늘 내린 눈이 예뻤다
입사 후 수습기자 시절(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매일 거대한 막막함에 시달렸다. 기자 일이 대단히 정형화 돼있을 거라 기대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변화 지향적이란 점에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현직(수습은 현직 아니라고요, 아 네네네)이 되고 나니 매일 '미션임파서블'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참 많이 힘들었다. 왜 스스로 판단했냐고 혼나고, 왜 생각 없이 했냐고 혼나고, 왜 이렇게 시간을 많이 쏟았냐고 혼나고, 너무 건성으로 한 거 아니냐고 혼나고. 일찍 보냈다고 혼나고, 늦게 보냈다고 혼나고, 혼나기 싫어서 고민 많이 해서 썼는데 생각 없이 썼다고 혼나고, 혼날 것 같았는데 고생했다고 갑자기 기분 좋게 넘어가고...
한 손에 꼽히는 만큼의 선배들에 의해 내 모든 업무가 정해지던 수습기자 시절. 잘했다 고생했다 한 마디 듣기 참 어려웠고 그런 말 해주는 선배들은 무려 성인군자로 보였다.
"지금 밖에 나가서 시민 인터뷰 좀 따고 와."
지시의 전부였다. 첫눈이 폭설로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지시를 내린 선배는 그때 총을 맞았다. 기자 은어인데 현장 챙기기나 기사 쓰는 걸 갑작스레 떠맡았단 뜻이다. 선배는 저녁 뉴스에 들어갈 리포트를 3시간 안에 만들어야 했다. 위에서 반영하라고 한 내용도 소스도 많았다. 심지어 더 원했다. 그래서 현장에 가서 추가 멘트를 따는 일을 내게 맡긴 것이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 어떤 바카라임감과 어떤 요령으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배는 너무나도 바빠서 절박한 표정이었고 곧 노트북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늘 그렇듯, 일단 해야 했다.
영상취재 선배, 오디오맨과 사람이 많이 오가는 인근 지하철역에서 만났다. "네가 마이크 차고 할 거야? 아니지, 와빠 들고 할 거지?"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잘 모르겠으니 선배가 판단해 주세요. 결국 정석대로 와빠를 들고 시민 인터뷰를 했다. 방송사 로고가 찍힌 마이크를 들었단 뜻이다.
"오늘 첫눈이 함박눈으로 내리고 있는데 좀 어떤 기분이세요?"
"햐아~ 너무 예쁘고 좋아요. 좋죠. 오랜만에 설레네요."
엥? 뭐라셔. 이번 인터뷰는 실패다. 몸을 잔뜩 움츠리고 종종걸음으로 걷는 저분을 붙잡아보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oo 소속 기자입니다. 오늘 첫눈이 함박눈으로 좀 많이 내리고 있는데 어떤 기분이신가요?"
"너~~~~~~무 좋죠 당연히. 이쁘고. 빨리 가서 아내랑 애들 보고 싶다."
의아했다. 왜 다들 짜증이 안 나있지? 오늘 기사의 야마(주제)가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한 시민 불편"이란 건 알고 있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만큼 아침부터 눈발을 헤치고 마와리 돌고 현장 다니느라 이미 지쳐있었다. 그런데 시민들은 눈이 예쁘다고 행복해했다. 대체 왜? 하늘에 내리는 쓰레기잖아! 오늘은 짜증이 나고, 명백히 짜증 날만한 날씨잖아.
결국 묻다 보니 출퇴근길 불편하단 멘트, 눈이 갑자기 쌓여 돌아다니기 미끄럽고 관절이 아프다는 멘트 등을 땄다.
회사로 돌아와서 타임코드를 찾고 그림을 찾는 등 얼마간 제작도 도왔다. 리포트 제작은 숨 가쁘게 이뤄졌다. 내가 따온 멘트도 기사에 들었다. 이날 내 이름은 '취재지원'으로도 오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그냥 선배의 수발로 산 하루였다. 아무 보람도 없이, 근데 뭔가 많이 잘못한 하루라는 찝찝함을 잔뜩 안은 채. 사실 그게 매일 일과였다. 죄인 혹은 (단독거리를 가져와도) 그림자 취급받던 서글펐던 수습의 하루하루.
저녁 8시 무렵 일이 끝나서 저녁밥을 먹으러 아무 설렁탕집을 갔다.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았다. 유독 국물이 뽀얗고 진했다. 맛도 고소했다. 건더기도 잡내 하나 안 나고 진짜 맛있었다. 파를 팍팍 넣어 먹고 소면도 한 덩이 더 추가했다. 먹다가 메뉴판을 다시 보니 한우 설렁탕이었다. 고기국물에 흰밥을 먹으니까 몸이 녹고 기운이 좀 돌기 시작했다. 바깥풍경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 위로 눈이 두껍게 쌓였다. 예쁘다. 오늘 진짜 예쁘구나. 설렜겠구나. 에휴, 소주도 한 병 시켰다.
나는 밖에 눈 온다 하면 그 많은 아침잠도 포기하던 사람이었다. 겨울마다 가족들이 날 놀리려고 혹은 깨우려고 숱하게 거짓말로 밖에 눈이 온다고 했다. 눈을 보고 싶어서 매번 속았다. 그만큼 첫눈은 더 반겼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날은 아침부터 다른 기분이었다. 새벽 무렵 일어나 보니 닫힌 불투명 이중창 너머로 눈빛이 들어왔다. 예보대로 과연 눈이 많이 왔나 보다, 오늘은 어떤 더 끔찍한 날이 또 펼쳐질까, 싶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55166
수습기자 때 가장 많이 한 말, "자살하고 싶다" [수습기자교육] ① 반인권적 노동환경 ...
2015년 오마이뉴스 기사다. 십 년 넘게 흐르면서 이젠 주중 근무시간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다. 밤새던 '하리꼬미'는 '마와리'가 됐다. 저때보다 여러모로 명확하게 나아졌다. 하지만 기자들은 기자업을 배워야 한단 이유로 여전히 부당한 일들을 참고 견뎌 정기자가 된다. 사기업에서 이런 일들이 자행됐다면 본인들이 눈에 불 켜고 기사를 쓸 일도 여기선 용납된다. 비단 수습기자교육뿐 아니라,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것 같은 기자 집단에서 뻔뻔하게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말과 행동을 하고도 '기자라서' 아무 일도 없는, 아이러니하고 이상한 일들은 회사생활 내내 두더지처럼 자꾸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제도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다. 필요악이라고? 아니다. 모두가 똑같이 키워져서 똑같이 훌륭해진 게 아니다. 꼭 그런 식으로 안 키워도 잘 크던 후배들을 보았다. 더불어 지금 당장이라도 마와리 돌리고 이리저리 정신 개조시키고 싶은 현직 시니어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는가.
이제는 다 '닦여진' 기자가 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물론 참 많이 미숙했지만, 배울 거 다 배우고도 못하던 게 아니었다. 꼭 그렇게 '혼'나야 했을까. 알고 보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어떤 선배들. 아무것도 모르던 수습기자에겐 그들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고 어떤 것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남겨 내가 오랫동안 튼튼하게 재건되지 못했다. 뭐 그래, 나도 맷집 약하다. 때리는 대로 피하지도 못했고 뼈도 못 추슬렀다. 근데, 그들도 살다가 어느 날 철렁하고 깨달았으면. 꼭 그렇게 굴어야 했던 게 아니었음을.
글: 블루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