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집으로
큰일 났다! 시모다시(下田市)에 도착하기 전부터 슬슬 어둑어둑해지더니 우리 가족을 태운 작은 자동차가 목적지에 닿을 무렵에는 사방에 이미 새카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실, 큰일이라고 부를만한 일이 실제로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다. 그렇지만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한 아이 둘을 태우고 있던 터라 이런 걸 큰일이라고 안 하면 어떤 게 큰일이겠냐 싶은 심정이었다. 예약한 숙소는 오후 다섯 시까지가 체크인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고 미리 연락해 두었기에 셀프 체크인을 할 수 있도록 호스트가 집 앞에 열쇠 보관함을 설치해 둔 상황이었다. 이제 숙소에서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다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실만 하면 되는데 안내 자료를 봤을 땐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주차장 입구가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 눈에는 안 보였다. 낯선 거리를 헤매고 있는 남편을 보며 우리 집 인간 내비가 오늘은 왜 이러나 의아해하던 찰나, 그러면 그렇지! 지도와 주변 도로를 번갈아 살펴보던 남편이 거짓말처럼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노천 주차장 입구를 찾아냈다.
숙박객을 위해 계약해 두었다는 자리를 찾아 차만 세우면 이제 정말로 숙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오 마이갓, 이번에는 주차 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긴 자동차 여행 내내 잘 참아주었던 아이들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우리 언제 내려?" 첫째 아이의 긴박한 목소리에 조만간 둘째의 울음까지 보태질 것만 같다. 나는 급한 마음에 조수석 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주차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호스트가 세워두었다던 파란색 라바콘,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파란색 라바콘이 놓인 빈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차장을 급하게 몇 바퀴나 돌았지만 라바콘이 세워진 자리에는 모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빈 공간에는 파란색 라바콘이 없었다.
우리끼리 어떻게든 일을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결국엔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혹시 모르시겠으면 기다려 주세요. 5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체크인 시간이 이미 세 시간 반이나 훌쩍 지난 늦은 저녁에 연락을 하는 것부터가 미안한 일이었다. 그래서 채팅 메시지만으로 명확하게 안내를 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주차장으로 오겠다니. 갑자기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휴, 퇴근하고 쉬고 계셨을 텐데...
정말로 5분쯤 후, 불콰한 얼굴의 중년 남성 두 명이 주차장 입구로 들어섰다. 둘 중 더 호리호리한 아저씨가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었는데 일을 마치고 동네 친구들과 한잔 걸치고 있다가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오셨다 했다. 와, 술자리를 중간에 끊고 왔다고? 내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와 고멘나사이를 랩 하듯 되풀이하는 동안 드디어 주차가 완료되었고 운전에 지친 남편과 화장실이 급한 첫째, 그리고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인 둘째와 트렁크에 있던 짐가방이 차례로 자동차에서 내렸다.
"정말 감사해요. 친구들이 기다리고 계실 텐데 어서 가보세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주차장을 떠나려는데 두 분 모두 그대로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더니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숙소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했다. 집이 언덕 위에 있어서 계단을 꽤 올라가야 한다며, 밤인 데다 어린아이들, 게다가 무거운 짐까지 있으니 우리끼리는 힘들 거라며 도와주겠다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감사한 일이어서 다시 한번 진심 담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몇 번이나 건네며 그분들과 함께 주차장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고 동네 어귀라 그랬는지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는 있었지만 주변은 어두웠다. 풀벌레 소리와 쏴아하는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는 왕복 2차선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일렬로 걸어가다가 왼쪽으로 꺾어 조금 더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침묵 속에서 내리 걷기만 하는 게 어색한 것은 우리 가족이나 그분들이나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적당한 대화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예의 있게 주고받고 있었다. 가을이라 그런지 날이 빨리 어두워지네요. 어두워서 길 찾기 힘드셨죠? 아, 뭐 조금요. 이 동네는 조용하네요. 네, 밤이니까 아무래도.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시모다 분이신가요?"
"はい! 下田の人間です!"
"하이! 시모다노닝겐데스(네! 시모다 사람입니다)!"
어딘가로 슬슬 빠져나가려던 영혼이 도로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간 듯 신나는 목소리에 앞을 보며 걷던 나는 고개를 돌려 아저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변화는 나 혼자만 눈치챈 것이 아니었는지 남편도 슬쩍 아저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분은 우리에게 시모다는 처음이냐고 물었다. 일본은 여러 번 여행했고 이즈반도에도 몇 차례 왔었지만 시모다까지 내려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답했다. 크지 않은 동네지만 아름다운 곳이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라며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라고 시모다의 닝겐께서 말씀하셨다. 그때까지 별말씀 없으셨던 친구분도 시모다 찬가에 가세했다. 그 사이 우리 일행은 숙소로 이어지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우리끼리였다면 정말로 힘들 만한 계단이었다. 무거운 여행짐을 번쩍 든 아저씨들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당장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울상이던 첫째 아이도 어느새 대화에 끼어들어 종알종알 이야기를 보태더니 흥이 났는지 동생의 유모차는 자기가 직접 들고 올라가겠다고 나섰다. 꼬마가 정말로 씩씩하다는 아저씨들의 칭찬세례에 기분 좋아진 첫째 아이를 선두로 우리 일행은 긴 계단을 올라 드디어 숙소 앞에 도착했다. 아저씨들의 친절 덕분에 셀프체크인 아닌 셀프체크인을 했던 그날, 우리는 숙소 문 앞에서 서로에게 안녕을 고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 앞에 서서 잠깐 고민했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들어오셔서 저희랑 같이 맥주 한 잔 하시겠냐고 물을까 말까.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둘째는 이미 잠잘 시간을 넘긴 터라 그 말을 마음에만 담아 두고 말았지만 다음번에 다시 시모다에 가면 그때는 한번 말해보고 싶다. 우리 가족은 이미 주차장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이제는 가로등이 다 꺼진 밤에도 단번에 숙소까지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그 동네를 파악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그분들께 연락을 취해 이번엔 도움이 아니라 맥주 한 잔 어때요라고 말을 건네보고 싶다. 시모다의 닝겐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기분 좋게 여행을 시작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