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바사 박물관

1,300미터의 항해

by간서치

2026년 8월 7일 금요일 · 스톡홀름


도서관을 나와 바사 박물관으로 갔다. 사실 이 건물은 전날 저녁에 먼저 보았다. 바닷가를 걷다 보니 지붕 위로 배의 돛대가 솟아 있었는데, 바사호의 돛대가 원래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 주려고 세워 둔 것이라고 한다. 그때는 문 닫을 시간이 지나 겉모습만 보고 돌아왔다.


바사 박물관을 보지 않았다면 스톡홀름에 오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입장료가 어른 한 사람에 240 크로나, 우리 돈으로 3만 원이 넘었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333년 만에 바다에서 올라온 배


배를 지키려고 안을 서늘하게 둔다고 들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리 서늘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배 한 척이 눈앞을 꽉 채운다. 1628년에 만든 스웨덴 군함 바사호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입이 벌어졌다.


바다 밑에 333년 동안 잠겨 있던 배인데, 지금 보이는 나무의 98%가 그때 그 나무라고 한다. 400년 가까이 된 배가 이렇게 멀쩡하다니, 보존 상태가 최고였다.


한쪽에는 배를 바다에서 건져 올린 과정을 보여 주는 안내판과 영상이 있었다. 1956년 안데르스 프란센이라는 사람이 배를 찾아냈고, 1961년 4월 24일 마침내 물 위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영상 앞에서 한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스톡홀름 앞바다는 소금기가 적어서, 바닷속에서 나무를 갉아 먹는 벌레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덕분에 나무가 썩지 않고 거의 그대로 남았다.


1628년이면 조선은 인조 6년이다. 바로 한 해 전에 후금이 쳐들어온 정묘호란이 있었고, 8년 뒤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우리가 전쟁으로 힘들던 바로 그때, 여기서는 이런 배를 만들고 있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배를 지은 사람은 스웨덴 사람이 아니라 네덜란드 출신 조선공 헨리크 휘베르트손이었다고 한다. 바사호가 가라앉고 25년 뒤인 1653년, 일본으로 가던 네덜란드 배 한 척이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닿았다. 그 배에 탄 하멜 일행은 13년 동안 조선에 붙잡혀 있다가 일본으로 탈출했고, 그 이야기를 『하멜 표류기』로 남겼다. 서양에 조선을 처음 자세히 알린 바카라이다.


같은 시절 네덜란드 사람들은 북쪽 스웨덴에서 왕의 군함을 짓고, 동쪽 끝 조선의 바닷가에까지 닿았던 셈이다.



화려한 조각으로 덮인 배


배 뒤쪽으로 돌아가니 위에서 아래까지 온통 조각이었다. 옆에 놓인 배 모형을 보니, 원래는 이 조각들이 빨강, 파랑, 금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지금은 바닷물에 색이 다 빠져 나무색만 남았다. 싸우러 나가는 배라기보다 왕의 힘을 자랑하려고 만든 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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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곳곳에는 사람과 짐승 조각이 붙어 있다. 박물관 한쪽에는 그 가운데 몇 점을 원래 색대로 칠해 다시 만들어 두었다. 색을 입히니 전혀 다른 배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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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머리에는 금빛 사자가 앞으로 달려들 듯 붙어 있다. 사자가 앞발로 쥔 방패에 바사 왕가의 문장이 그려져 있고, 그 한가운데에 곡식 단이 들어 있다. 스웨덴 말로 곡식 단을 ‘바사’라고 부른다. 왕가 이름도 배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처음에는 바이킹 배와 관련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바이킹이 바다를 누비던 때는 8세기에서 11세기로, 바사호보다 600년쯤 앞선다. 바사호는 바이킹 배가 아니라, 바사 왕가의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왕이 만들게 한 군함이다.


아이들도 웅장한 배를 보고 감탄했다. 400년 전에 이런 기술과 권력이 있었다니, 그 시대 역사도 바이킹 역사도 다시 공부해 보고 싶다고 했다.



왜 가라앉았을까


내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것은 배 옆구리에 아래위 두 줄로 나 있는 대포 구멍이었다. 대포를 두 층에 나누어 싣다 보니, 아래층 구멍은 물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바사호는 첫 항해에서 1,300m쯤 가다가 가라앉았다. 1628년 8월 10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였다. 대포를 64문이나 싣고 조각까지 잔뜩 달아 위쪽은 무거운데 폭은 좁았으니, 중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배가 기울었고, 축포를 쏘려고 열어 둔 아래층 구멍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한참 들여다본 바로 그 구멍이다. 배를 만들 때 이미 흔들림 시험에서 위험하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그 경고는 무시되었다. 150명쯤 타고 있었는데 30명쯤이 목숨을 잃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 배가 지금까지 보여 주고 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앞으로 일을 할 때 이 배를 좋은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바사 박물관은 배 한 척이 건물 하나를 가득 채운 곳이었다. 들어설 때의 놀라움이 나올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유럽에서 가장 센 군함을 만들려다 첫 항해에서 가라앉은 배인데, 지금은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찾는 박물관이 되었다고 한다. 한 시간 가까이 둘러보고 나오면서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스톡홀름을 떠나며


이렇게 스톡홀름에서의 1박 2일이 끝났다. 준비를 많이 못 하고 와서 걱정했는데,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꽉 찼다. 첫날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술부터 사고, 시청사와 구시가지를 지나 노벨 박물관에서 한강의 작은 찻잔을 보았다.


둘째 날은 왕립도서관에서 악마의 성경을, 바사 박물관에서 가라앉았던 군함을 보았다. 노벨상을 받은 바카라, 도서관에 남은 바카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배까지,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것을 보았다. 시청사 안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미리 준비해서 와야겠다.


박물관을 나와 서둘러 크루즈 터미널로 향했다. 오후 4시 30분, 핀란드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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