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백야의 캠핑장

릴레함메르에서 레샤스코그까지

by간서치

2026년 8월 1일 토요일 · 릴레함메르에서 오타를 거쳐 레샤스코그까지, E6와 E136 도로 200km


오타의 마트


릴레함메르에서 다시 E6 도로를 타고 110km, 1시간 30분을 올라가면 오타에 닿는다. 호숫가마다 캠핑장이 눈에 띈다. 여기 사람들에게는 이런 멋진 풍경 앞에서 캠핑이 일상인 것 같다.


오타를 거쳐 가기로 한 이유는 저녁에 먹을 장을 보기 위해서다. 구글 지도를 보니 여기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큰 상점이 없을 것 같았다.


노르웨이에는 KIWI, REMA 1000, Coop Extra 같은 마트가 흔하다고 알고 왔다. 우리가 들른 곳은 겉이 깔끔하고 주차장이 넓은 KIWI였다. 초록 간판 옆에는 영업시간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7-23.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산속 작은 마을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 보니 생각보다 큰 도시였고, 마트도 그만큼 늦게까지 문을 열었다.


오늘 저녁은 캠핑장에서 고기를 굽고 노르웨이 연어에 와인을 곁들일 계획이다. 정육 코너에서 목살 한 팩을 집었다. 1kg에 109 크로네, 1.2kg짜리 한 팩이 우리 돈으로 약 2만 원이다. 연어는 400그램 필레 한 팩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마트의 반값쯤이었다.



와인은 마트에 없다


마트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맥주는 있는데 와인이 없다. 멘붕이었다. 오늘 저녁은 연어와 고기에 와인이어야 하는데.


검색을 해 보니 빈모노폴레트라는 국영 판매점에서만 팔고, 토요일에는 오후 3시나 4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하필 오늘이 토요일이다.


오타에도 판매점이 한 곳 있었다. 다행히 이 지역은 3시가 아니라 4시 마감이다. 마트에서 5분 거리, 현재 시간은 3시 45분. 그대로 뛰었다. 와인 한 병 때문에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을 이렇게 뛰어다닐 줄은 몰랐다.

숨을 고르며 조금 달달하고 값도 적당한 것이 있느냐고 점원에게 물었다. 그분이 내민 것은 리스보아 포르타다 와인이었다.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마셨던 맛이 떠올라 반가운 마음에 그걸로 정했다. 문 닫기 직전에 뛰어 들어와 추천까지 받아 나오려니 민망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저녁상은 완성되었다.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다. 노르웨이에서 술을 사려면 기준은 도수 4.7퍼센트다. 그 아래인 맥주는 마트에서 살 수 있고, 그보다 높은 와인과 독주, 도수 높은 맥주는 국영 판매점인 빈모노폴레트에서만 판다.


마트에서 파는 맥주도 판매 시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평일은 저녁 8시, 토요일은 오후 6시까지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아예 팔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이보다 더 이르게 정할 수는 있어도 늦출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계산대에서 주류 바코드가 아예 찍히지 않으니 직원에게 사정해도 소용이 없다.


빈모노폴레트는 그보다도 짧다. 보통 평일은 오후 6시, 토요일은 오후 3시 또는 4시까지 열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문을 닫는다.


오늘 350km를 달렸다


오타에서 E6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다가, 돔바스에서 E136 도로로 갈아타 서쪽으로 간다.



오늘 달린 거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오슬로 공항에서 릴레함메르까지 150km 2시간, 릴레함메르에서 오타까지 110km 1시간 30분, 오타에서 레샤스코그바트네트 캠핑장까지 90km 1시간 20분. 모두 350km에 4시간 50분이다.


내일 갈 트롤스티겐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고 오늘 이만큼을 달렸다. 숙소를 정할 때는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며 오타나 돔바스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움직일까 한참 고민했다. 지나고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 백야 덕에 조금 늦게 도착해도 저녁을 차려 먹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980 크로네의 캠핑장


저녁 6시 30분, 드디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붉은 오두막 한 채가 서 있고, 처마 끝에 노르웨이 국기가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오래된 아이스크림 광고판이 있었고 리셉션이라 적힌 나무 팻말이 있었다.


노르웨이의 숙소는 대개 침구와 수건이 별도 비용이다. 여기서 빌린 캐빈은 그것까지 포함해 980 크로네, 우리 돈으로 약 16만 원이었다. 값이 저렴한 대신 화장실과 샤워가 안에 없어 공용을 써야 한다.


리셉션 유리창에 붙은 안내문에는 화장실과 샤워가 근처 붉은 건물에 있고 온수를 쓰려면 자동판매기에 10 크로네 동전을 넣으라고 적혀 있었다.


배정받은 캐빈은 검게 칠한 판자벽에 초록 지붕을 얹은 작은 집이었다. 문을 여니 이층 침대와 테이블, 그리고 작은 냉장고가 전부였다.



캠핑장에서의 저녁


체크인할 때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다시 해가 쨍하게 난다. 밖에서 연어와 고기를 굽고 와인을 마시는 것이 오늘의 로망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8월인데도 바깥은 몹시 추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털 달린 겉옷을 여미고 다닐 정도다. 그래도 야외 테이블에 상을 차리기로 했다. 캠핑장까지 와서 안에서 먹을 수는 없다.


추위는 알코올로 먼저 녹인다. 맥주는 마트에서 세 종류를 샀다. 하이네켄, 링네스, 그리고 프뤼덴룬.

그중 파란 캔인 프뤼덴룬이 제일 맛있어서, 이번 여행 내내 이 맥주만 찾게 되었다.


캔 라벨을 읽어보니 프뤼덴룬(Frydenlund)이라는 이름 아래 파트욀(Fatøl)이 적혀 있다. 노르웨이 말로 생맥주라는 뜻이라고 한다. 1859년 오슬로에서 시작한 양조장이고, 가운데 별은 하이네켄의 붉은 별처럼 악령을 막아 맥주가 상하지 않게 지켜 준다는 표식이다. 맨 아래 문구는 이렇다. For oss som elsker øl. 맥주를 사랑하는 우리를 위하여. 한국에 돌아가면 건배사로 한번 써먹어 봐야겠다.


점심이 햄버거 하나였으니 종일 제대로 먹지 못한 셈이다. 얼른 고기부터 구웠다. 캐빈 안 식탁에 전기 핫플레이트를 올리고 프라이팬에 목살을 얹는다. 연어도 같이 굽는다.


야외 테이블을 닦고 상을 옮겼다. 빗물이 아직 남아 있는 자리에 종이 접시를 놓고 구운 목살을 쌓았다. 와인은 종이컵에 따랐다. 잔이 있을 리 없으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와인 라벨을 보니 리스본에서 봤던 나침반 문양이 금색으로 새겨져 있다. 대항해시대의 자부심을 담은 술을 북위 62도 캠핑장에서 마신다. 오늘 저녁 이 병은 확실히 제 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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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연어로는 부족해서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웠다. 추운 날씨에 뜨끈한 국물을 놓고 소주를 한 잔 마시니 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사실 햇반과 라면, 김치, 소주는 집사람이 챙겨줄 때 무겁다고 투덜댔던 것들이다. 그것이 노르웨이 첫날 저녁부터 전부 상에 올랐다.



2분 안에 끝낸 샤워


저녁을 먹고 씻으러 나선다. 캐빈 안에는 화장실도 샤워실도 없으니 공용 시설을 써야 한다.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를 종이 접시에 챙겨 들고 샤워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어색하면서도 색달랐다. 샤워기 옆 기계에 10 크로네 동전을 넣으면 2분 동안 온수가 나온다. 아무리 빨라도 그 두 배는 걸리겠거니 하고 동전을 두 개 한꺼번에 밀어 넣었다.


그런데 시간이 늘어나지 않고 그대로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2분이 끝난 뒤에 다음 동전을 넣어야 시간이 더해지는 방식이었다. 가진 동전도 없으니 남은 시간 안에 머리를 감고 몸까지 씻어야 했다. 군대 신병 시절에도 이렇게 짧게 씻어본 적은 없는데, 막상 닥치니 또 되기는 되었다.


그래도 화장실은 깨끗했고 샤워장도 붐비지 않았으니, 저렴한 값에 숙소를 잡은 것으로 만족했다.



밤 10시의 산바카라


모든 정리를 다 끝내고 근처 호수로 산바카라을 나갔다. 밤 10시가 다 되었는데 바깥은 아직 훤하다. 물은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해서 건너편 산이 그대로 비쳤다. 부두에는 노란 페달보트 두 대가 나란히 묶여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저것을 타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늦게 도착했고 일찍 떠나느라 끝내 물 위로 나가보지 못했다. 이 캠핑장에서 아쉬운 일은 그것 하나뿐이다.



22시 47분. 휴대전화 화면에 그렇게 찍혔고, 바깥 온도는 5도였다. 그제야 하늘이 조금 어둑어둑해진다. 말로만 듣던 백야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돌아오는 길에 본 공용 캐빈은 창문마다 노란 불이 켜져 있었다. 눈만 내렸다면 영화 속에서나 보던 크리스마스 풍경이었을 것이다. 내일도 많이 움직여야 하는 하루다. 긴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된다.



https://blog.naver.com/customs_man/224411577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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