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서 릴레함메르까지
2026년 8월 1일 토요일 · 오슬로에서 릴레함메르까지, E6 도로 150km
네덜란드 스키폴에서 한 시간 오십 분 만에 노르웨이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에 내렸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호텔까지 가는 방법이 문제일 줄 알았는데, 심야에도 숙소 근처로 가는 셔틀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셋이 타면 택시와 큰 차이가 없는 값이었지만,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출발한다는 이유 하나로 셔틀에 올랐다. 우리나라에도 공항 심야버스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노선이 더 늘어난다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노르웨이에서의 첫 숙소는 파크 인 바이 래디슨 오슬로 에어포트 웨스트다. 공항 곁의 흔한 비즈니스 호텔인데, 세 명이 함께 잘 수 있는 방을 조식까지 포함해 20만 원에 예약했다.
이번 여행 내내 셋이 한 방에서 자고 한 욕실을 나눠 써야 한다. 아빠와 대학생 딸, 그리고 대학생 조카. 딸과 조카는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라 서로 불편할 일이야 없겠지만, 이제 둘 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별수가 없다. 북유럽 물가로는 방을 두 개씩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으니, 여행 끝날 때까지 조금씩 참는 수밖에.
아침 식당은 북유럽 스타일답게 깔끔했다. 구리색 갓을 씌운 히팅 램프가 줄줄이 내려와 있고, 그 아래 무쇠 냄비마다 노르웨이어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STEKT BACON, SPEILEGG, HARDKOKT EGG. 읽을 줄은 몰라도 뜻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다.
빵 바구니 옆 유리병에는 얇은 크리스프브레드가 꽂혀 있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아침마다 버터를 발라 먹는다는 마른 빵이다. 한 조각을 집어 노란 치즈를 얹어 먹어보니, 김치를 부르는 맛이었다.
호텔을 나서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북유럽이라면 늘 맑고 공기가 좋을 줄 알았는데, 여름에는 비가 자주 온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보낸 닷새 가운데 날이 좋았던 것은 이틀뿐이었고 그중 하루도 이날 오전이 전부였다는 것은, 며칠 뒤에야 알게 된다.
렌터카는 공항 안에 있는 AVIS 영업소에서 빌리기로 예약해 두었다. 지난겨울 두바이에서 차를 빌릴 때 한 시간 넘게 기다렸던 기억이 있어 각오를 하고 갔는데, 이번에는 대기 줄이 거의 없었다. 차를 이렇게 빨리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에 빌린 차는 큰 캐리어 세 개가 넉넉히 들어가는 폭스바겐 ID.7, 전기차였다. 굳이 전기차를 고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노르웨이가 환경을 생각해 충전기를 촘촘히 깔아 두었다는 말을 믿었고, 휘발유 차보다 대여료가 쌌으며, 고속도로 통행료와 페리 요금도 덜 낸다고 했다. 산악 지역을 며칠씩 달려야 하는데 전기차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은 끝까지 남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처음 한두 번은 충전 앱을 설치하고 갔는데도 결제가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몇 번 해보고 로컬 충전 앱을 모두 깔고 나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급속 충전기에 꽂아두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면 배터리가 80퍼센트 가까이 차 있었다. 다음에 또 차를 빌린다면 역시 전기차일 것 같다. 값도 싸고 충전도 편한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제 출발이다. 공항을 나와 E6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길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자연이 펼쳐졌다. 오슬로에서 이만큼밖에 오지 않았는데 이런 경치라니. 이것이 앞으로 닷새 동안 볼 풍경의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때 알지 못했다.
왼쪽으로 따라붙는 미에사 호수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크다더니, 바다처럼 넓고 잔잔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며 연신 동영상만 찍다 보니 정작 사진은 몇 장 남지 않았다. 스위스보다 훨씬 낫다는 말을 셋이서 몇 번이나 주고받았는지 모른다.
구글 지도가 차의 큰 화면에 그대로 미러링되니 길 찾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 옆에서는 어쿠스틱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창밖 풍경과 드라이브 음악만 있으면 150km, 두 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화면 한쪽에는 바깥 온도가 17도로 떠 있다. 한여름에 17도라니.
곧 갈림길 표지판이 나타났다. 위쪽 화살표에 E6 트론헤임, 왼쪽에 E6 오슬로, 오른쪽에 213번 도로 릴레함메르, 그 아래 하얀 판에는 올림피아파르켄. 이곳이 199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도시라는 사실을 길 위에서 먼저 알려주는 셈이다.
릴레함메르에 들른 이유는 셋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했고, 차를 충전해야 했고, 무엇보다 동계올림픽이 열린 경기장을 보고 싶었다. 앞의 둘은 어디서든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사실은 세 번째가 제일 컸다.
한적해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너무 추웠다. 한국은 이 무렵 폭염주의보로 온 나라가 펄펄 끓고 있었는데, 8월 1일의 릴레함메르는 두꺼운 겉옷이 어울렸다. 챙겨 온 돗자리를 깔고 잔디밭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은 내리자마자 접었다.
대회가 열린 것은 1994년 2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던 참이었다. 새벽 중계를 챙겨 볼 형편이 아니었으니 제대로 본 기억은 없다. 그래도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땄던 김기훈과 전이경의 이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겨울의 장면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삼십 년이 지나 여기 서 보니 믿기지 않았다.
지난 시간만큼 흔적도 옅어졌다. 스키점프대까지는 올라가 보지 못했지만 오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닫혀 있는 듯했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붉은 벽돌 벽에 새겨진 오륜기와 잔디밭의 성화 봉송 조형물뿐이었다.
검은 철판을 사람 모양으로 오려낸 것 둘이 팔을 뻗어 횃불을 들고 달리는 자세다. 그해 겨울 이 잔디를 가로질러 달렸을 사람의 그림자만 남아, 와이어에 매달린 채 서 있었다.
돌아와서 다시 검색해 보니 스키점프대도 빙상장도 그대로 남아 겨울이면 대회를 치르고, 선수촌은 대학 기숙사가 되었다고 한다.
대회가 끝나면 시설은 사진 찍히기 위한 물건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앞의 표지판만 남는 경우를 우리는 여러 번 보았다. 릴레함메르는 반대편을 택한 셈이다. 기념하는 대신 사용했다. 휑하다는 첫인상은 이곳이 관광지가 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쓰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돗자리를 포기했으니 어디든 들어가 사 먹어야 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살인적인 물가 앞에서는 그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버거킹이다.
그런데 이 집의 전망이 대단했다. 손님도 거의 없어서, 종이봉투 하나를 들고나가면 그 넓은 테라스가 전부 우리 것이 되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전망이라고 할 수 있지, 하며 웃었다. 버거킹 깃발 세 장이 흐린 하늘에 나부끼는 아래에서 먹은 와퍼가, 이날 가장 값싸고 가장 전망 좋은 한 끼였다.
이 도시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집이 남아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시그리드 운세트, 1928년에 상을 받은 여성 작가다. 대표작 『크리스틴 라브란스다테르』의 무대가 되는 구드브란스달렌 계곡의 입구가 바로 릴레함메르이고, 그가 살던 집이 시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에드바르 뭉크가 몇 년 전까지 천 크로네 지폐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나라에서 화폐에 얼굴이 오른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짐작이 간다. 운세트도 오백 크로네 지폐에 있었다고 한다.
올림픽은 이 도시에 열엿새 머물렀고, 운세트는 이십 년 넘게 여기서 살며 썼다. 그런데 그 집이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나는 경기장만 보고 떠났다. 신화바카라을 들고 북쪽으로 왔다면서 정작 이 나라의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지나쳐버린 것이다.
이제 릴레함메르에서 북쪽의 오타지역으로 다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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