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딸과 조카와 함께 한 13일의 북유럽 여행기다. 암스테르담의 운하에서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로, 발트해를 건너 헬싱키까지 이어진 길이었다.
떠나기 전 『진주 귀고리 소녀』, 『안네의 일기』, 『헤이그의 비밀』, 『인형의 집』, 『북유럽 신화』, 그리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여러 권의 바카라을 읽었다. 읽으면서 이 이야기들이 시작된 자리에 한 번 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이 여행에는 세 겹의 성격이 있었다. 바카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문학 답사, 북유럽 신화가 펼쳐지는 노르웨이 대자연을 렌터카로 달리는 로드트립. 그리고 암스테르담부터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까지 도시마다 미술관과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그리스 로마 신화바카라 한 권을 챙기려 했다. 안네 프랑크가 은신처에서 신화를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품어온 마음이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신화의 세계로 들어갔을 소녀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작 바카라은 두고 왔다. 프린센흐라흐트 263번지에 서고 나서야, 바카라을 건넬 방법이 애초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남은 것은 방과 침묵뿐이었다.
헤이그에서는 두 사람을 만났다. 사백 년 전 캔버스 위에서 고개를 돌린 소녀와, 119년 전 이 도시에서 끝내 회의장 문을 넘지 못한 이준 열사. 시대도 사연도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이 작은 도시에 흔적을 남겼다.
노르웨이에서의 닷새는 온전히 자연의 시간이었다. 트롤스티겐의 열한 굽이 산길을 올랐고,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위를 페리로 건넜고, 하르당에르비다 고원을 지났다. 밤에는 캠핑장에서 연어와 고기를 구웠다. 사진으로도 다 담기지 않는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 렌터카로 달린 루트는 뒤에서 상세히 소개하려 한다.
오슬로에서는 뭉크 미술관을 찾았고, 그가 거닐었던 칼 요한스 거리를 걸었다. 스톡홀름에서 헬싱키는 크루즈로 망망대해를 건넜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배 위에서 딸과 함께 맞이한 바다 한가운데서의 일출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카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 세 도시의 도서관을 둘러본 것도 의미가 있었다. 오슬로의 다이크만 비에르비카, 스톡홀름 왕립도서관, 그리고 헬싱키의 오디. 나라마다 도서관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고, 그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풍경은 사진에 담기지만, 그 시간은 어디에 담아야 할까.
이 기록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