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자동문

by정아라

아는 사람을 만날 때는 종종 두 마리의 개가 출동한다.

선입견과 편견.


한 마리는 선입견이라 금방 흥분하고,

다른 한 마리는 편견이라 근거도 없이 확신이 넘친다.


양쪽에서 뛰어 나가 상대를 보고 왕왕 짖는다.

둘 다 집은 잘 안 지키면서 내 마음만 열심히 지킨다. ㅎㅎㅎ


현실의 개는 낯선 사람을 보고 짖지만

내 안의 두 마리의 개는 아는 사람을 보고 짖는다.


짖는 소리에 내 생각과 같은지 다른지 경계를 품고,

짖는 소리에 상대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잘 들리지 않으니

상대가 말할 동안 내가 할 말을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는 모르기 때문에

두 마리의 개가 뛰어나갈 수가 없다.


대신 '방문객'(주1)이라는 시가 튀어 나간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한 작가님이 최근 모르는 사람처럼 만나야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은 알려고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호기심이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과한 기대치가 없다.

모르는 사람이라 실망도 없다.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몰라서 호기심을 갖는다.

몰라서 알려고 한다.

몰라서 배우려고 한다.


아는 사람도 그렇게 만나야 한다.

그런데 방법이 문제다.

어떻게 하면 두 마리의 개를 묶어 놓을 수 있을까.


또 한 작가님과 코칭 실습을 하다가 대화 중 힌트를 얻어 연습해 본 적이 있다. '자동문'을 떠올렸고 질문을 바꾸었다.


어떻게 하면 마음 속 자동문이 닫혀 버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자동문이 그 사람와 나 사이에 있다고 상상한다.

자동문을 닫히지 않게 하는 방법은 몸을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내 마음의 자동문이 닫히지 않도록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지 않으니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상대 쪽으로 몸을 조금이나마 가까이 하니 그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짖던 두 마리의 개를 완전히 묶어 놓지는 못했다. 완전히 없앤다는 건 어쩌면 욕심이고 나에 대한 과대평가일 수도 있다.


대신 두 마리의 개가 내 앞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내 뒤에 있었다.


몸을 앞으로 당기니 내가 할 말을 하기보다는 '먼저 듣자'는 마음이 되었다. 상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집중이 되었다.


집중이 되니 한 박자 늦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집중이 되니 희안하게도 내가 할 말이 앞서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이 앞서니 않으니 상대의 말을 끊거나 끼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대화 습관을 바꾸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여전히 종종 내 말이 앞서고 여전히 남의 말을 뚝 끊어 버리기도 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정보와 기술이 나오는 시대.

매일 그 기술을 따라가려고 애쓰면서도

신기하게도 상대는 업데이트하지 않는다.


상대를 업데이트하지 않는 건,

내가 오래된 버전이라는 뜻이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다.


몇 년 전 저장한 파일을 열어 놓고,
새로운 내용을 덮어쓰지 않은 채 계속 읽고 있는 셈이다.


'저 사람은 원래 자기밖에 몰라.'
'원래 계산적이야.'

'원래 그래.'


원래.

참 무서운 단어다.

'원래'를 붙이는 순간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박제가 된다.시간은 흐르는데 나는 그 사람을 미라처럼 냉동실에 넣어 둔 셈이다.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데 업데이트하지 않고 옛날 버전만 쓰고 있는 셈이다.


그날 이후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한 번씩 되뇌인다.

오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한 번씩 외쳐본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

"오늘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


그럼에도 3분쯤 지나면 또 잊어 버린다.

그때마다 내 안의 두 마리 개가 슬금슬금 앞으로 나온다.

'아, 맞다. 이 사람 예전에도 이 얘기 했지.'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개를 따라갔다면, 이제는 개를 보며 웃는다.

'그래, 얘들아. 또 나왔구나. 산바카라은 좀 있다 하자.'


아무튼 자동문이 닫히지 않도록 해 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조금 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조금 더 귀를 내밀어 본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가 마음의 거리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은 머리에서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늘 몸이 먼저 길을 낸다.


등받이에서 등을 뗀다.
의자에서 5센티미터만 벗어나 본다.

그러고 보니 자동문은 손으로 억지로 붙잡는 문이 아니다.

가까이 가면 저절로 열린다.

사람도 비슷한 것 아닐까.

멀리서 판단하면 닫히고,
가까이 가면 열린다.


요즘은 가능하면 몸부터 먼저 움직여 본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본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도 움직인다.

어쩌면 관계를 바꾸는 일은 거창한 결심보다,
등받이에서 등을 떼는 일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자동문이 열린다. 그러면 나의 날뛰는 개들을 묶어 버릴 수는 없지만 조금 뒤로 보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 사소한 동작과 함께 나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아직 당신을 모릅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처음 만납니다."

"오늘 나는 모르는 사람을 만납니다."



주1> 정현종의 시,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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