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파인만'의 일종의 자서전을 다시 읽고 있다.
그는 잠시 하버드에서서 생물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 시절 "그 유명한" 생물학자 왓슨을 만난다. 그는 크릭과 함께 DNA 나선을 발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그는 한국의 생물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와. 이런 분을 실제로 만날 수도 있구나, 하면서 읽는데 더 놀라운 대목이 나왔다.
그가 프린스턴에서 대학원에 다녔던 시절 이야기였다.
한낱 대학원생의 발표 세미나에 196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진 위그너,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파울리의 배타 원리에 나오는 그 파울리(그도 194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심지어는 아인슈타인까지 참석한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시 그의 세미나에 '위대한 물리학자들'이 대거 들어온 이야기였다.
이쯤되자 파인만도 스스로 노벨상을 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교수들이 죄다 연구를 거듭하다가 노벨상을 받았는데 왜 자신은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겠는가.
청소년 시절,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던 경험 속에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다.
일이 바빠 사실은 자주 만나지 못한다. 많은 경우 친구들의 대화를 주로 뒤늦게 따라가는 편이다.
그런데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오래된 인연을, 그리고 서로를 귀하게 여긴다. 좋은 일에는 함께 기뻐하고 어려운 일에는 늘 서로를 도우려 하고 기도를 아끼지 않는다. 다들 바쁠 텐데 기꺼이 시간을 내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운다. 나는 친구들 발끝도 못 따라간다.
대학 시절 만났던 이들이 있다.
내 세계관을 통째로 바꾸게 했던 이들이다.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했던 이들이다. ’뜻을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했던 이들이다. 가치를 따라가는 삶을 알게 해 준 이들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내가 나답게 살도록 안내해 준 이들이다.
20대에 가던 길을 지금도 가는 이들도 많다. 이제는 후배들이 너무나 훌륭해져 앞서 가고 있다. 나는 그들의 작은 응원군 정도다. 세상 귀한 사람들이다.
함께 아이를 키웠던 많은 이들이 있다.
아이를 나 혼자 키우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이 주변의 좋은 어른이 되어 준 이들이다. 공동체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이들이다. 사람이 어디까지 가까워질 수 있는지, ‘숟가락 개수도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게 뭔지, 서로의 삶에 깊숙이 들어온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이들이다. 아이를 함께 키웠을 뿐만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한 이들이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준 이들이다. 이제는 평생의 친구가 된 이들이다.
나의 일터에도 좋은 분들이 많다.
맨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그 매력 때문에 이곳 사람들께 큰 흥미를 느꼈다. (예의 없게도 진짜 그랬다. '흥미'를 느꼈다) 롤모델이 될 만한 여성 활동가들이 많았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은 쾌활함을 보여주시는 분들, 치열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도 연구를 병행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놀랍고 좋았다. 지금은 모두 너무 든든하게 느껴지는 분들이다. 보면서 따라갈 수 있으니 행운이다.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는, 이 일을 시작하신 선생님도 그렇다. 존경하는 분이고 작은 시작이 지금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내가 힘 내서 앞으로 갈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계시다. 그의 절친이자 동료였던 선생님도 그렇다. 그 시작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분들. 한 분이 돌아가신 후 지금 곁에 계신 분들이 더 소중해졌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기를 늘 빌고 있으며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함께 새벽 독서하는 분들도 좋은 분들이다.
서로 다른 바카라을 함께 읽으며 읽은 바카라과 깨달음을 나누어 주신다. 쓰는 공통점으로도 묶여 있어, 나처럼 금방 싫증내는 사람도 이분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뭐라도 쓰게 된다. 하나 더. 각자가 의미를 두고 가는 길을 깊은 마음으로 서로 응원한다. 또 하나 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일터와 동료들을 너무 사랑하고 몰입해 있는데, 외부의 시선으로 객관화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를 정신차리게 해 주는 분들이시기도 하다. ㅎㅎㅎ
내가 많은 복을 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은데, 확실히 느끼는 복 받은 점 중 하나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살아오는 내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파인만은 주위에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스스로 노벨상을 받지 못하리라는 한계는 두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파인만도 노벨상을 받았다.
나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좋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말하자면 맑고 깨끗한 좋은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사는 물고기랄까. ㅎㅎㅎ
그러니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리라는 한계는 두지 않는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내가 의미를 두는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덕분에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ㅎㅎㅎ
오늘은 날짜가 지났어도 버리지 않고 화장대에 놓아둔 달력의 문구를 한 번 읽어 본다.
사람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삶'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사람의 준말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 신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