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바카라상 앞에서 바쁘게 회의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어느새 다리 밑에 와 있다. '냐옹'거리며 내 다리에 몸을 부빈다.
그 귀여움에 씩 한 번 웃고 다시 원고에 집중한다. 이번에는 아예 바카라상 위로 폴짝 뛰어올라온다. 대놓고 내 얼굴을 마주보면서 '냐옹'한다. 잠시 외면하고 일하고 있으면 아예 노트북을 베고 드러눕는다. ㅎㅎㅎㅎㅎ
'엄마 바쁘거든?'
그런 말은 하지 못한다. 결국 잠시 일을 멈추고 녀석을 쓰다듬어 준다. 자판에는 고양이 머리에 눌린 자판 때문에 엉뚱한 글자가 다다다다 출력되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난다.
급기야 품에 안고서 아기처럼 어화둥둥 한다. 이 녀석은 그렇게 해도 그대로 액체처럼 몸에 힘을 빼고 나에게 안겨 있다. 고양이 액체설. ㅋㅋㅋ 누가 만든 말인지 딱 맞는 말이다.
'골골골' 녀석이 부르는 노래가 내 몸의 진동으로 전해진다. 녀석을 한 번 꽈악 껴안아 본다.
아무리 바빠도 고양이가 다가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안아주는 것.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고 녀석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 주는 것.
어쩌면 그게 바로 내가 가진 사랑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큰 희생을 하거나, 엄청난 마음의 결심을 해야만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겠지만 고양이가 내게 가르쳐 준 사랑은 전혀 다른 모양이다. 그것은 효율성의 궤도에서 잠시 이탈해 조급함을 이겨내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존재에게 온전히 주파수를 맞추는 아름다운 순간에 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귀여움은 나에게 바쁨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법을 강제로 처방한다. 녀석을 안아 든 5분의 시간 동안, 타임라인에 잠시나마 쫓기던 영혼이 완벽하게 구원받는다. 귀여움이 나의 시간을 구했다. ㅎㅎㅎ
나에게 고양이가 알려 주는 사랑은 합리적인 일상을 유쾌하게 뒤흔들고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어느 날은 퇴근 시간이 지난 사무실에서 일과 씨름하고 있었다. 시계 바늘은 이미 퇴근 시간을 훌쩍 지나 달리고 있었고, 내 이성적 판단력은 ‘이것만 끝내고 깔끔하게 퇴근하자’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집에서 기다리는 고양이의 밥 시간을 알리는 신호다.
고양이가 없던 10여 년 전이라면, 알람이 울리든 말든 일을 끝내려고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효율을 중요시하던 나였다면 ‘조금만 더 하고 늦게 주지 뭐’ 하고 내 편리함을 우선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면 속 텍스트보다, 어두운 방안에서 배고프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녀석의 조그만 실루엣이 먼저 눈앞에 아른거린다. 결국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일을 중간에 끊는다. 냉큼 노트북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면, 마중 나와 반갑게 '냐옹'거리는 녀석들이 있다. 그릇에 밥을 채워주고, 와작와작 맛있게 먹는 소리를 들으며 흐뭇한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 나서 식탁 한쪽을 치우고 노트북을 다시 펼쳐 남은 일을 시작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참으로 비효율적인 동선이다. 사무실에 그대로 앉아 끝냈으면 훨씬 빨리 끝났을 일을, 고양이 밥을 주겠다고 서둘러 귀가했다. 이성적인 계산기만을 두드릴 때는 이해되지 않는 비합리성이다. 하지만 식탁 앞에 앉아 다시 야근할 때의 마음은 늘 충만하다.
기꺼이 번거로워지는 것, 나의 편리함을 기꺼이 포기하고 그 존재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 사무실에서 그만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 속에, 내가 세상에 내어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다정함이 담겨 있는 느낌이다. 귀여운 존재의 생존이 내 이성적 판단보다 우위에 서는 순간, 나는 계산하는 기계에서 비로소 사랑하는 인간으로 구원받는다.
고양이와 함께 산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고양이가 내 삶에 부려놓은 귀여움의 마법은 집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한 존재의 무해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자, 이상하게도 시선이 닿는 세상의 경계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출근길, 집앞 아스팔트 위의 비둘기 한 마리를 보았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 저벅저벅 들어온 비둘기가 무서웠더래서, 비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은근슬쩍 비둘기를 피해 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녀석의 움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자세히 보니 녀석은 참 바지런히도 움직이고 있다. 목을 앞뒤로 까딱까딱 흔들며, ‘구구구’ 소리를 내며 총총걸음으로 아스팔트 위를 쏘다녔다. 그 모습이 꼭 아침 일찍 서둘러 출근하는 우리 모습 같기도 하고, 제 몫의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또 하나의 작은 생명 같기도 했다. 이제는 그 구구거림도, 그 까딱이는 고개도 묘하게 사랑스럽고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통해 깨어난 ‘귀여움을 알아보는 눈’이 길가의 비둘기에게까지 닿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내 세계는 이전보다 훨씬 다정하고 풍요로운 곳이 되어 있다.
세상에는 우리를 지치고 팍팍하게 만드는 거대한 담론들이 가득하다. 성공, 효율, 경쟁, 생존 같은 무거운 단어들이 매일 우리를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주 작고 나약한 것들이라 느껴진다. 바쁜 일상을 강제로 멈추게 만드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분홍빛 발바닥, 밥을 달라고 조르는 똘망똘망한 울음소리, 길가에서 열심히 고개를 까딱이는 비둘기의 총총걸음 같은 것들 말이다.
이 대바카라 없이 무해하고 무조건적으로 귀여운 존재들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슬롯적 무장을 해제하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사랑을 꺼내 들게 된다. 무해한 귀여움은 누구도 해치지 않고 모두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나의 바쁨과 효율이라는 경직된 일상을 바로잡아주는 건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고양이의 부드러운 발바닥과 비둘기의 까딱이는 고개였다.
귀여움이 세상을 구할 수도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오늘, 메말라 있던 나의 하루를 내 곁의 귀여운 존재가 구원해 준 것만은 확실하다. 그 귀엽고 무해한 존재들이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는 것도 분명하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