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장미와 가시

Rose and Thorn

byHazel


내면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동안, 현실의 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10년 넘게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늘 내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온라인 게임인일 때에도 소소한 시도들은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크게 에너지를 쏟지는 못했다.

타의이기는 해도 쉬었음 청년이 된 신세, 전업 창업준비를 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실업급여라는 것도 받게 되어 다달이 생활비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결국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에 최적의 상황이 마련된 것이다.


같은 일도 어떻게 보냐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고 했던가.

마음속 흙탕물이 다 가라앉기도 전에 머리는 이번 기회에 꿈을 펼쳐보자고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처음 몇 달은 앱 개발을 했다.

개발자는 아니었지만 프로덕트 쪽 일을 오래 해왔고, 무엇보다 클로드 코드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스토어 출시까지 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다운로드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

웬만한 건 이미 차고 넘치는 시장에서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키는 앱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무엇보다 월급을 대체할 만한 비즈니스로 키우기에는 적절한 수익 모델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입질이 왔다.

쉬는 동안 여기저기 찔러보다가, 발명 아이디어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공모했는데 이게 덜컥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서비스나 플랫폼이 아닌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상상을 못 해본 영역이었다.

내가 해본 것, 할 줄 아는 것에 국한되어 있던 사업의 바운더리를 대차게 부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누가 그랬다. 요즘은 한 가지 진득하게 될 때까지 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하다가 되는 거 하는 시대라고.

무려 발명협회에서 내 아이디어를 지원해 준다고 하니 아무래도 이 길이 내 길인 것 같기도 했다.


지원사업을 준비하는 김에 동시에 여러 다른 제품 아이디어들도 함께 디벨롭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인사이트도 얻었다.

AI가 적어도 '발명'의 영역에서는 굉장히 서투르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학습하여 결과물을 내는 그들의 특성상, 아직 세상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내 머릿속에만 있는 물건을 적절하게 생성해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날로그로 돌아가 펜과 종이로 상상 속의 물건을 스케치하는 형식으로 이들을 학습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이해시킨 구조에 대해서는 어떤 소재, 하드웨어 기술들을 접목하면 될지 현실적인 도움은 받을 수 있었다.

AI의 여파로 해고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길에서 AI가 장악 못한 의외의 세이프존을 발견한 것이다.


뜻밖의 도전은 불안했지만 흥미로웠다.

가장 명확한 장점은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만들고, 주문을 받고, 배송한다.

아직 주문을 받는 단계는 아니지만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지부터가 시작이었던 서비스 창업과는 다른 분명함이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담당 변리사의 도움으로 생전 처음으로 특허도 출원했다.

내가 스케치한 물건이 세상에 물질화되고 실생활에 사용될 것을 생각해 보니 서비스를 출시할 때와 다른 짜릿함이 느껴졌다.


조용히 내뇌망상도 돌려본다.

사업가로서 번듯하게 성공해서 인터뷰를 하는 나.


"사업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다니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어요. 저는 좌절하지 않고 그때를 기회로 삼았죠."


입 안에서 웅얼웅얼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인터뷰의 답변을 준비해 본다.


하지만 반대로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마이너스 잔고를 맞이할 생각을 하면 참담했다.

기대만큼 시제품이 잘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공장과의 단가는 어떻게 맞추지, 아무도 안 사서 재고만 잔뜩 떠안으면 어쩌지, 더 좋은 카피 제품이 쏟아지면 어떡하지.

마찬가지로 서비스 개발과는 다른 리스크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 속으로 빠져들 때면 어김없이 떠난 줄 알았던 팀장이 나를 비웃으러 돌아왔다.

그 여자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 노출될 일도 없었을 텐데.

당면한 새로운 불안과 위험들은 어김없이 모두 그녀 때문에 일어난 일로 귀결되었다.

사업이 망한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거 봐요. 제가 사람 잘 봤죠. 해도 안 되는 사람 맞잖아요."



꾸역꾸역 자기 연민과 증오의 늪에서 여기까지 기어올라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한방에 나를 양지바른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회복과 치유에 숨은 함정을 발견한다.

잘 되면, 시련은 기회가 될 것이고

망하면, 시련은 나를 두 번 죽이게 될 것이었다.


시련 뒤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꽃길이라면 시련은 그저 좋은 자양분과 동기가 된다.

인생사 새옹지마, 고진감래, 똥차 가고 벤츠 오는 것이다.


하지만 시련 뒤에 있는 게 또 다른 가시밭길이라면?

AI로 인한 공황으로 모두가 실직자가 되고 나는 사업도, 재취직도 계속해서 실패한다면?

연이은 내리막에도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나의 여정은 결국 미래의 결과에 인질로 붙잡혀버렸다.

시련과 그 뒤의 삶을 분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구원은 그저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이 다음에 올 성공도 실패도, 결혼식 3주 전 당했던 부당해고와는 상관이 없다.

그때의 내가 아닌 오롯이 현재의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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