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은 적기 전에 이미 몸에 붙어 있다.
좋아하는 걸 찾으라는 말을 여러 해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 서류 한 장을 쓰다가 취미 칸에서 볼펜이 멈췄어요. 한참 들고 있다가 빈칸으로 두고 넘겼습니다. 이 나이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건 대체 어디서 찾는 걸까요?
퇴근길 지하철에서 맞은편 사람이 무릎에 뜨개질감을 올려놓고 있었다. 눈은 거의 손을 보지 않는다. 나는 출입문 옆에 서서 두 정거장 동안 그 손을 봤다. 안내 방송이 나오기 전에 그 사람은 실을 감고 일어섰다.
집에 와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맨 위에 하고 싶은 일이라고 쓰고 그 아래로 내려가지 못했다. 배우고 싶은 것을 적어 보다가 그것도 지웠다. 배우고 싶은 게 아니라 적을 것이 있었으면 해서 적고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서랍에 넣었다. 빈칸이 부끄러웠던 것은 칸이 비어서가 아니라 그 칸을 남이 들여다볼까 봐서다.
며칠 뒤에 식탁 의자를 옮기다가 등받이 한쪽 칠이 벗겨진 것을 봤다. 늘 같은 자리에 같은 방향으로 앉았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앉는 시간은 새벽이다. 알람을 맞춘 적이 없다. 그 시간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제일 크고, 나는 십 년 가까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거기 앉아 뭔가를 적었다. 처음에는 회의에서 못 한 말을 적었고, 그다음에는 팀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적었고, 지금은 그냥 적는다.
목록에는 한 줄도 못 썼는데 의자에는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없는 것을 찾고 있던 게 아니라 이미 닳고 있는 쪽을 세어 보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은 칸에 적히지 않고 닳은 쪽에 남는다. 신발 밑창이 한쪽부터 먼저 닳는 것과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은 드물고, 자기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을 쳐 주지 않는 사람이 많다. 어느 쪽으로 무게를 싣는지 모르고 걸어도 밑창은 알고 있다. 목록은 비어 있어도 하루는 비어 있지 않다.
지난 한 주 동안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우리가 되풀이한 동작은 무엇인가?
첫째, 목록을 새로 만들기 전에 지난 한 주를 되짚어 시킨 사람 없이 두 번 넘게 한 일을 찾는다.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자기 전에 지도를 열어 가 본 적 없는 골목을 따라가 보는 일, 장을 볼 때 안 써 본 간장을 하나씩 집어 오는 일이면 충분하다.
둘째,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같은 칸에 적지 않는다. 잘하는 쪽으로 기울면 서툰 일이 후보에서 먼저 지워진다. 오늘 저녁에는 못하는데도 자꾸 손이 가는 일 하나만 따로 적어 둔다. 잘하게 되는 문제는 나중에 따져도 늦지 않다.
셋째, 다음에 누가 취미를 물으면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내는 대신 요즘 되풀이하는 동작 하나를 그대로 말한다. 새벽에 좀 끄적입니다, 정도면 된다. 입 밖에 내 본 것과 속으로만 아는 것은 다음 주에 다르게 남는다.
흔한 실수는 좋아하는 것을 고를 때 남에게 말할 만한 것부터 골라내는 일이다. 나도 아직 취미를 묻는 자리에서는 대답을 하나 만들어 낸다.
그 사람은 내릴 때 뜨개질감을 가방에 넣지 않았다. 손에 든 채로 걸어 나갔다.
밑창은 보여 주려고 닳지 않는다.
▷ 오늘 하나만 : 지난 한 주에 시킨 사람 없이 두 번 넘게 한 일 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