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화와 작업복 너머, 한 사람의 하루를 보는 법
병원 출근에 익숙해지면서 길도 정해졌다. 새벽 5시 14분 첫 지하철을 타고 자갈치역에서 내려 5시 35분에 오는 26번 첫 버스로 갈아탔다. 늦어도 여섯 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첫차를 놓치면 출근부터 어긋났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하루는 벌써 분 단위로 움직였다.
오후에 학원으로 향하던 때에는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 시간의 버스에 타고 있었다. 처음에는 빈자리부터 찾았다. 어디에 앉아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는지,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야 병원에 가까운지가 중요했다. 같은 버스를 거듭 타면서부터 좌석보다 그 자리에 앉은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버스에는 지정석이 없는데도 사람마다 제자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니고 좌석에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매일 타다 보면 어느 자리에 누가 앉는지, 어느 정류장에서 누가 타고 내리는지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
내가 즐겨 앉는 곳은 맨 뒷좌석 바로 앞의 혼자 앉는 자리다. 자갈치역에서 버스를 탈 때면 그 자리에는 늘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멘 아저씨가 앉아 있다. 아저씨는 바로 다음 정류장인 남포역에서 내린다. 나는 그 좌석 앞에 서고, 그분이 일어나면 그 자리에 앉는다. 사람이 붐비는 날에도 그렇게 앉아 출근한 날이 많다.
나를 위해 자리를 맡아 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잠시 내 자리를 지켜 주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으면서 새벽마다 은근히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나만 다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루는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와 조금 더 걸은 뒤 자갈치역이 아니라 중앙역에서 버스를 탔다. 문이 열리고 올라서는데 낯익은 아주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왜 거기서 타요?’
내게는 그렇게 묻는 표정으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름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타던 정류장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첫 버스에는 출석부가 없는데도 자리 이동까지 금세 들킨다.
문현사거리에서 늘 타는 아주머니도 있다. 빈자리가 있어도 좀처럼 앉지 않고 기사석 바로 뒤쪽에 서서 간다. 어느 평일 아침, 버스가 문현사거리에 섰는데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안 나오셨나 생각하며 창밖을 보았다. 아주머니가 길 건너편에 서 있었다. 길을 건너는 사이 버스를 놓친 모양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아주머니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그 얼굴이 창밖으로 조금씩 멀어졌다. 다음 차가 언제 오는지, 그분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첫차를 놓친 뒤의 조급함은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여섯 시라는 시각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른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대부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누가 어느 정류장에서 타는지, 어디쯤에서 일어나는지, 오늘 누가 보이지 않는지는 안다.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멀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익숙한 것들이 있다. 자주 마주친다는 사실만으로도 생기는 관계가 있었다.
버스 맨 뒤에는 큰 배낭을 멘 아저씨가 앉는다. 자리에 앉으면 작은 메모장을 펼쳐 무언가를 적는다. 뒷자리가 없어 앞쪽에 앉은 날에도 뒤에 자리가 나면 곧바로 옮겨 간다. 몇 번이나 같은 모습을 보다 보니 이제는 다음 행동이 예상된다. ‘이제 뒤로 가시겠군.’ 그러면 정말 일어나 뒤로 간다.
무엇을 적는지는 모르면서 좌석 취향부터 알아버렸다. 생각해 보면 나도 늘 같은 자리를 찾는다. 다른 사람의 습관을 관찰한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남포역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다.
평일 첫 버스는 유난히 조용하다. 검은 작업복과 회색 점퍼, 낡은 안전화와 얼룩진 장화가 눈에 들어온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장화를 신고 타는 사람들이 있다. 공동어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나는 출근하고 그들은 퇴근한다. 내게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이 남아 있고, 그들에게는 이미 마친 일이 몸에 남아 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같은 좌석에 번갈아 앉는다.
예전 같았으면 장화의 얼룩과 구겨진 옷이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지금도 그것들이 보인다. 다만 거기서 시선이 멈추지는 않는다. 비도 오지 않는데 장화를 신어야 하는 바닥을 생각한다. 내가 잠든 동안 그 장화를 신고 서 있었을 시간을 떠올린다.
내가 그들의 노동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방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다고 해서 어시장의 밤을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일을 마치고 나면 내 옷과 신발에도 하루의 흔적이 남는다. 깨끗한 옷차림에 좋은 직업을, 얼룩진 작업복에 고단한 처지를 곧바로 이어 붙이던 내 기준이 조금씩 불편해졌다. 내가 보는 것은 그 사람이 일을 하며 입은 옷이었다.
어느 날 출근길, 맨 뒤에서 늘 메모하던 아저씨가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었다. 버스가 평소 그가 내리던 정류장을 지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한번 보더니 화들짝 놀라 하차 벨을 눌렀다. 다음 정류장에서 급히 내려 길을 건넜고, 반대편 정류장으로 뛰어가면서 몇 번이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한마디도 나눈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류장 하나만큼 어긋난 그의 하루가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정해진 시각에 시작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날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면서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 버스를 탔을 때라면 졸다가 정류장을 지나친 사람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이제 그는 늘 맨 뒤에서 메모장을 펼치던 아저씨였다. 같은 시간에 같은 얼굴을 마주하는 동안, 한 사람의 작은 실수가 남의 일로만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첫차를 타기 전에도 새벽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 적은 있었다. 누군가 일찍 일어나 도시의 하루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있었다. 지금은 남포역에서 내리고, 기사석 뒤에 서고, 뒷자리를 찾아 옮겨 앉는다. 어떤 날에는 버스를 놓치고 어떤 날에는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다.
그 뒤에도 첫 버스는 같은 길을 달렸다. 문현사거리의 아주머니는 다시 기사석 뒤에 서서 갔고, 맨 뒤의 아저씨는 메모장을 펼쳤다. 남포역에서 모자를 쓴 아저씨가 일어나면 나는 그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여전히 긴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내린 뒤의 하루를 모른다. 어디에서 일하고 누구를 만나며 어떤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늘 타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빈자리를 한 번 더 보게 된다.
오늘도 첫 버스에 오른다. 앉을 자리를 찾다가 익숙한 얼굴들을 살핀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늘도 제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