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으로 이루어진 단맛

양파

by서람


카페에 흐르던 음악을 따라 나도 모르게 입이 먼저 움직였다. 문득, 흥얼거린 이 노래가 왜 머릿속에 남아 있을까를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Song)」였다.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가 작곡한 곡으로, ‘헨리크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Peer Gynt)〉를 위해 만든 극음악이다.

오래전 김윤희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잃어버린 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샘이 뜨겁게 넘친 적이 있다. 그때 그 감동이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당시 읽었던 〈페르 귄트〉의 내용 중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희곡은 주인공 페르 귄트가 환상과 욕망으로 전 세계를 방랑하다가, 결국 고향에서 기다려준 솔베이지의 사랑으로 구원받는 이야기다.

긴 방황 끝에 돌아온 그는 길가에서 양파 한 알을 집어 든다. 그리고 껍질을 하나씩 벗기며 그 껍질에 투영된 자신의 거침없던 지난 삶을 뒤돌아보았다. 금을 캐던 나, 예언자가 되었던 나, 난파선 속의 나 등…. 그러나 한 겹씩 떼어낼수록 손에 남는 건 결국 공허뿐이다. 중심이라 믿었던 알맹이는 보이지 않고, 껍질만 이어졌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절박한 질문 앞에서 양파는 침묵한다.


우리는 흔히 양파를 두고 '까도 까도 끝이 없다'라며 본심을 알 수 없는 존재로 비유하곤 한다. 그런데 이 채소를 자세히 보면, 그 '없음'은 전혀 다른 진실을 드러낸다. 양파는 중심이 따로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다. 중심이라는 알맹이가 애초에 없는 존재, 겹겹이 쌓인 비늘잎들이 서로를 품으며 하나의 온전한 몸체를 이룬다. 이는 인간의 자아와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슬롯적 직함이나 타인의 평가, 자신이 이룬 성취라는 껍질을 하나씩 벗겨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걷어낸 뒤 남는 빈 공간이 사실은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그 겹겹의 시간이 층층이 포개져 ‘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아의 구조는 양파가 몸을 불리는 방식과도 똑 닮았다. 가을에 심은 양파 모종은 겨우내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 은밀하게 단맛을 쌓으며 고난을 견뎌낸다. 봄이 되어 잎이 돋을 때마다 그 안쪽의 비늘잎이 하나씩 겹으로 늘어나며 비로소 비대해진다. 비늘잎 한 장 한 장이 겨울의 기록으로 성장했듯, 우리가 벗겨냈던 그 껍질들도 우리 삶이 쌓아온 결과물인 셈이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경쾌한 도마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익숙한 손놀림이지만, 그 안에는 늘 같은 정성이 담겨 있다. 그 손끝에서 잘게 썰어진 양파는 국물 속으로 들어가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분명히 넣었는데도 완성된 요리 어디에서도 잘 보이지 않아 잠시 어리둥절해지지만, 이내 깨닫는다. 요리의 깊은 맛을 결정짓는 건 결국 제 몸을 녹여 사라진 양파였음을.

양파는 불을 만나면 자신의 매운맛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단맛이 된다. 자신을 녹여 다른 재료와 어울리며 끝내 음식 맛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내 삶에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대가족의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워가며 사는 일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국물 속에 녹아든 양파처럼, 내가 드러나지 않아도 가족의 웃음이 깊어졌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이 빚어낸 가장 정직한 단맛이라는 것을.


양파를 다듬으면 눈이 몹시 맵다. 이때 흐르는 눈물은 단지 매운 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겹겹의 고비를 견디며 둥근 속살을 채운 스스로에게 바치는 뒤늦은 위로일지도 모른다.

중심이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모든 겹이 중심이라는 뜻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삶도 끝내 손에 잡히는 알맹이는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삶은 알맹이를 찾는 여정이 아니다. 겹을 쌓아서 스스로 온전하게 둥글어지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양파는 수선화과(科)이다. 잎의 광합성으로 생산한 에너지(유기물)를 땅속 비늘잎에 저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건 잎의 밑동이 두꺼워진 ‘비늘잎’이다. 수염뿌리가 있고, 그 위의 단단한 밑바닥이 줄기이다.

일본어 '다마네기'라고 부르기도 하며 저장성이 좋은 편이다. 익히면 식감이 미끈거리고 물컹해서 이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1960년대를 거치며 대중화된 계기는 짜장면의 춘장과 양파의 조합이 이루어지면서 볶음요리에 대량으로 쓰이게 되었다. 우리 식탁에 최근에 나타났지만, 오랜 역사의 마늘이나 파보다 더 소비할 만큼 입맛을 사로잡았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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